부끄러워서. 남 보기 부끄러워서.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하는데 기자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어떻게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남들 다 보는 책에 글로 쓸 수가 있냐고. 그러면서 저보고 진짜로 친구가 몇 명이 있냐고 슬쩍 물어보시더라고요. 얼마나 없길래 친구가 '없다'라고 말하는 건지 남의 기준이 궁금했던 것이죠.
웃긴 건 뭔지 아세요? 이미 책에다 나 친구 없다고 다 써놓고선, 막상 누가 앞에서 물어보니까 약간 망설이다가 제가 친구 숫자를 불려 말합니다. 왜 그랬겠어요?
부끄러워서. 남 보기 부끄러워서.
이석원 작가의 글이다. 솔직함에 실소가 나왔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쓰면 될 일을 이렇게 풀었다. 부끄러운 고백을 덤덤하게 쓰는 태도가 대단했다. 책을 덮고 물 한 모금 마실 즈음에 떠올랐다. '아, 이게 진정성이구나.'
진정성은 마이너스의 성질을 가진 것 같다. 무엇을 벗고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진정성이 더해진다. 이석원 작가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말하며 꺼풀을 벗었다. 그런 솔직함이 사람을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진정성 있는 사람인가.'
글을 한창 쓸 작년만 해도 이런 고민을 일주일에 서너 번은 했다. 진정성이 있든 없든 고민 자체가 닻이 되었다. 중심이 잡히니 고요했다.
이런 고민의 빈도는 이번에 학교에 들어가면서 줄었다. 게으름이란 핑계로 닻을 거뒀다. 졸업까지 절반 정도가 남았을 때 생활에 적응했고 고개를 돌려 내가 어디에 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부끄러웠다. 너무 많이 떠밀려 온 것이다.
남의 시선에 휩쓸렸고 말 한마디에 휘청댔다. 진실한 사람이 되자는 다짐은 바랬다. 맡은 직책이나 나이가 대단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무엇보다 말과 행동을 쉽게 했다.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다.
나는 무엇을 벗고 얼마나 덜어야 할까. 앞으로 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할까. 지금이라도 붕 뜬 것들을 가라앉히자.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조용한 방에서 나는 무엇 때문에 가벼워졌을까를 생각했다. 답이 나오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겉으로 꺼내기 부끄러워 생각하지 않으려 한 것뿐이다. 가벼워진 이유는 간단했다.
잘 보이고 싶어서. 남에게 정말 잘 보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