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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Sep 28. 2019

아빠육아휴직 10일차

나에게 생긴 작은 권력에 대한 단상

 와이프 덕분에 알게된 드리마 '멜로가체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갑자기 편성이 변경되어 모든 것이 급박한 상황. 감독인 범수는 이 멘붕인 상황에서 각 실무자들의 제안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해줘야 한다.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 같은 순간의 결정들을 들여다보면 어떤 결정은 클리어하지만, 여전히 어떤 결정은 디테일이 없고, 어떤 결정은 결정 자체를 남에게 떠맡기기도 한다. 결정을 해야하는 중요도에 따른 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저 이 상황은 권한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멘붕이라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의사결정권자가 된다는 것은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리의 삶의 많은 순간들은 얼마나 결정을 준비된 상태에서 맞이하고 있을까? 조금 더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 우리 모두 매일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지만 막상 정해지는 그 순간 속에서 얼마나 만족할만한 결정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면서 살고 있을까? 당장 "뭐 먹고 싶어?" 라는 말에 "그냥 아무거나" 또는 "난 다 잘먹어. 너 먹고 싶은거 먹어" 라고 귀여운(?) 책임 회피를 하면서 사는게 우리의 일상 아닐까?


 육아휴직을 한지 10일차, 모든 것이 새롭다.


 온전히 주어진 나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대응해야 하는 상황들 속에서 세상에 대해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존재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내 인생의 지침서 중 하나인 행복의 정복에서 버트란드 러셀은 이렇게 말한다.

 

 새로 태어난 생명은 무력하므로, 부모의 마음속에는 새 생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이 충동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만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부모의 권력욕까지 만족시켜준다. 갓난 아이를 무력한 존재로 여기면서 기울이는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연약한 일부분을 보호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부모의 권력욕은 이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갈등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폭군 행세를 계속 하다가 자녀들에게 반발을 사는 부모도 있고, 이러한 갈등을 의식하고 자신이 이렇게 모순된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부모도 있다. 이러한 갈등을 겪는 순간 부모는 자녀를 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는 순간, 부모의 마음 속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워낙 밥을 잘 먹지 않은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린이집 등원할때마다 매일 물었던 질문이 "아이들이 여기서는 밥을 잘 먹나요?" 라는 질문이다. 그러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하원할 때 인사하시면서 충격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지섭이가 어린이집에서는 밥을 참 잘먹어요. 반에서도 거의 제일 잘 먹는 편입니다. 그런데 나는 원래 천천히 먹는데 아빠가 집에서 빨리 먹으라고 해서 속상하다고 하네요"


 등원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먹을 때 흘리면 치워야 한다는 이유로 나는 내 관점에서만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는지... 왜 혼자서 잘 먹던 아이가 갑자기 "아빠가 먹여줘" 라고 생떼를 쓰는지에 대해서 내 잘못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은 제대로 가지고 있었는지... 나에게 생긴 작은 권력에 취해 내가 옳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 휘두르고 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너에게 권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너로 인해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항상 알려줄 수 있도록...

 아이를 키운다는 말 자체가 가지는 권력의 위계를 보면 나는 위에 있고, 아이들은 아래에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바꾸려고 한다.


 아이와 함께 자란다


 아빠가 너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관계로서 정의하고 그 가운데서 아이들이 주는 행복과 깨달음을 통해 아빠도 더 나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일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에서 그저 같이 자랄 뿐이다.


 나와 누군가의 관계를 강자와 약자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서로가 주고 받음이 있는 관계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하게. 갑에게는 '을' 을 대하는 것처럼, 을에게는 '' 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는 마음의 여유와 실력을 갖추는 사람이 될 것. 그리고 세상을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조금 더 수평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할 것.


  아이들과의 시간의 밀도가 깊어지는 시간을 보내며 다시 한번 강하게 다짐하게 되는 삶의 가치관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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