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엔진 Sep 13. 2019

남성 육아휴직 출사표

굳이 왜 출사표라고 까지 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분위기가 그렇네요

 입사 이후 7년 3개월 동안 열심히 달려왔다. 그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나의 삶에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삶의 가치관과 인생 계획들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그 일환일까? 나는 2019년 9월 17일부터 2020년 9월 15일까지 1년의 육아휴직에 들어간다. (인사명령 덕분에 알았다. 내년이 윤년이라는 것을...)


 사실 계획된 시점은 아니다. 내 원래 계획은 첫째가 7살이 되는 시점에 1년, 둘째가 7살이 되는 시점에 각각 1년을 사용하여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 재무적인 여력이 되면 1명씩 데리고 어학연수 겸 여행을 다녀오는게 목표였다. (물론 그 기회에 나도 영어 공부 좀 제대로 할겸...) 그래서 내가 맡은 업무들을 수행할 때는 언제나 내가 팀의 T/O 를 잡아먹으면서 쉬러 가더라도 남은 동료들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최대한 일을 체계화/자동화하고자 노력해왔다. 언제든 계획한 시점에 육아하러 휴직해야 하니까.


 하지만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만 흘러가는가? 회사에서의 업무는 힘은 들더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하고 성과를 내면서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만족할 수 있는 속도는 아니지만 입사했던 2012년과 비교하면서 조직문화부터 일하는 환경까지 하나씩 개선되는 것들을, 또 직접 개선해가며 조직이 한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가슴 벅찬 일이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대비하지도 못한 순간에 다가오는 가정의 불행은 결코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다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우리 회사는 공식적으로 안식월, 안식년과 같은 제도를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구성원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자녀가 있다면 세 가지 중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닥치고 버티거나, 퇴사하거나, 육아휴직을 사용하거나.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 이 사회에서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공식적인 통계 자료 등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한 이야기의 공통 분모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대화의 흐름은 이렇다.


의문 : "어디 다른데 이직 준비하는거야?", "창업 준비하니?", "공부하러 가?"


나 : 아니라고.... 육아하러 간다고.... 집안 사정이 있긴 하고, 부족한 실무 공부도 하긴 하겠지만, 메인은 육아 맞다고.... 1년 동안 쓸꺼야


기간 : "1년이나 쓴다고???????!!!!!!!!!!!!"


나 : 그럼 고용보험에서 1년은 육아휴직 급여 보장해주는데 1년을 갔다오지 덜 사용은 왜....? 애들 1년만에 다 크는 것도 아니야. 사실 모자라...


걱정 : "돌아와서 적응할 수 있을까? 막상 장려한다고 하지만 사용하면 나중에 인사상의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나 : 물론 빠르게 배운만큼 빠르게 까먹을까봐.... 또 돌아와서 적응하지 못할까봐 불안하기도 하고... 쉬는 기간 동안 다른 동료들이 고생했으니 어느 정도의 불이익이 있는 것은 감수하는게 맞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부당한 대우가 계속 이어진다면 그때는 나 역시 이 조직에 애정하는 마음이 사라질테니 그 시점에 미련없이 떠나면 되지 않을까?  


 

 내가 가진 어려움은 사실 우리 가족에 대한 일이고 그로 인한 나 스스로의 수양 문제이기 때문에 온전하게 육아라는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조직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입사할 때 부터 다짐했던 생각이고, 스타트업의 창업 열풍이 부는 시기에도 이런 생각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 오히려 강화된 것은 대한민국은 "대기업의 변화" 가 우리의 미래에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10년 후에 결정하기로 했던 새로운 길에 대한 선택은 육아휴직을 결심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미리 확정되었고, 나는 복직 후에 아무것도 없는 나를 믿어주고 선발했던 회사에 기여하고 그 결과가 Social Value 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10년은 더 노력해볼 예정이다. (물론, 그 기간 중 둘째에게 좀 더 집중하는 1년의 육아휴직은 더 사용할 예정이다)


 남성 육아휴직자는 분명히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아래 지표를 보더라도 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의 해석은 항상 단순 지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함께 봐야 한다.


1) 1년을 Full 로 채워서 사용하는 육아휴직자의 비중은?

2) 육아휴직 이후 복직하여 6개월을 만근하고 사후지급분인 25% 를 지급받는 비중은?


 실제로 아이러니한 것이 멤버십 제휴업무 등을 위해 스타트업 네트워킹 모임 등에 가보면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시는 분들이 꼭 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위해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ㅇㅇ 소속 ㅇㅇㅇ 입니다"


 뭐 능력이 되서 육아도 잘하고,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창업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면 베스트겠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내가 능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육아휴직에 대한 현재 시점의 지원제도를 알고 싶다면? - 아빠넷!!>


 어쨌든, 출사표라고 적었으니 몇 가지 다짐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첫째,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에 충실하기 위해 아이들과의 시간과 이를 위해서 필요한 집안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 할 것이다.


 대충 예상되는 하루 일과는 크게 3등분이 될 것 같다.


1) 기상 ~ 10시 : 아침준비, 아이들 등원가방 챙기기, 아침체조시키기, 세수 및 옷입혀서 등원

2) 10시 20분 ~ 오후 3시 40분 : 집안일(빨래, 청소, 장보기, 기타 등등)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자유시간

3) 오후 4시 ~ 10시 : 하원, 아빠랑 놀이 교육, 저녁준비, 목욕, 재우기


그리고, 이 중에서도 평일의 주 2 일은 아이 1명씩 어린이집을 땡땡이 치고 아이들에게 좋은 곳들을 찾아다닐 예정이다. (나는 2명은 동시에 못 데리고 다니겠음....) 보통 월요일이 휴관인 시설들이 많아서 매주 화, 목을 정기적으로 땡땡이날로 지정하되 어린이집 행사나 주요 프로그램 등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며, 다양한 교통수단을 같이 경험하며 다양한 모빌리티에 대한 체험도 같이 시켜볼 예정!


첫번째 땡땡이날 방문장소는 서울숲에 있는 브릭캠퍼스 서울!

 이렇게 되면 나의 자유시간의 최대 확보를 위해서 조금 더 일찍 일어나기, 아이들 어린이집 간 시간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안일 처리하기가 필요하다. 어쨌든 빠른 시간에 최적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둘째, 육아휴직 중에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실무적인 감각이나 네트워킹을 통한 시장 환경 파악은 지속적으로 해나갈 예정이다. 그동안 열심히 쟁여(?) 놓았던 Fastcampus 온라인 강의, 스피킹맥스 강의, 거실 서재에 수많은 책들이 대기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적극 활용하여 런치 미팅이나 클래스 참여 등은 지속할 예정이며, 저녁에 외출이 필요한 경우는 와이프가 퇴근한 조금 늦게 또는 친어머니 찬스를...

와이프가 타인의 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을 싫어하여 단계적으로 육아시터 서비스 적응해나갈 예정...


 셋째, 나 스스로를 건강하고 발전시키는 시간으로 잘 활용할 것이다.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면 결코 아이들이 행복할 수 없다. 그렇기에 되도록 나는 육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을 통해서 "희생" 의 관점보다는 "나 스스로의 개인" 에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많은 부모들이 힘든 지점이 바로 이 부분 아닐까? 날 희생해서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도 부담이고 사실 자연스럽게 보상 심리가 따라올 수 밖에 없다.


 빨래 개면서 오디오클립으로 듣고 싶은 것도 듣고, 설거지 하면서 유튜브도 보고, 집안일과 육아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알아보는 경험들과 지식, 주변 사람들의 상황을 나의 라이프 스테이지에 있는 고객들과 연결지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보기, 이런 것들을 콘텐츠를 남겨서 누적시키는 노력하기 등 모든 과정에서 나의 발전과 내가 행복한 것을 같이 추구하면 굳이 육아휴직 기간을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아이들 덕분에 생긴 나의 행복 충전 기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내가 가장 하고 싶던 휴직 방식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이다. 하지만 사실 이건 나에게 선택할 용기가 없었다. 우리 회사는 2019년 현재로만 보면 유연근로제가 완벽히 정착한 회사가 아니며, 하루 4시간만 일하고 중간에 이탈하는 실무자에게 명확한 R&R 이 부여되어 업무를 추진하기 쉬운 환경은 우리 회사만이 아니라 사실 대부분의 회사에 잘 갖춰져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원을 바라보는 조직의 시선이라는 것은 어떤 "공기" 를 만들어내고 그 공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런 것을 조직문화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질식과도 같은 고통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의 시간 조정할 때마다 "제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 중이라서 특정 시간대는 회의가 불가능합니다" 라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시대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둘째로 인해 주어진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는 (아마 3~4년 후가 되지 않을까?)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나는 결혼하지 않은 후배들에게는 지금같이 싱글들이 천국인 세상에 결혼을 꼭 해야하는지, 결혼한 후배에게는 아이키우기 이렇게 어려운 세상에 굳이 아이를 낳아야하는지, 낳더라도 1명과 2명은 천지차이라는 것에 대해서 항상 얘기한다. 그 이유는 딱 하나다. 최소한 아래의 질문에 한번 정도는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져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 선택을 할 것이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겠어?"


 물론 그 친구들은 "자기는 다 해놓고서 뭘 그런 소리를...." 이라며 꼰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성장과정과 교육과정에서 생각보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대부분 도시전설이나 구전 전래 동화급의 이야기들이 서로 공유되며 너무 과장된 행복 또는 막연한 불안감들이 넘쳐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들이 자꾸 다른 핑계들을 만들어내며,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사회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어쨌든 이제는 진짜 실전이다. 이제 시작하는 1년을 나, 우리 가족,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사회에 조금 더 의미있는 작은 움직임이 될 수 있도록 적극 활용해봐야겠다.


 아래 내용은 예전에 브런치에 남겼던 글이며, 그 글들을 현실 속에서 나 스스로의 족쇄 삼아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시길...^^;;




<나는 여전히 육아는 사회 공동체의 동시 책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2016년 1월 13일

SBS 스페셜이 앞으로 남은 3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방향으로 우리 사회에 이슈를 제기할지는 관심있게 지켜보겠지만 도대체 왜 엄마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는지, 육아는 왜 "엄마의 전쟁" 이 되어버리고, "딸과 엄마의 전쟁" 되어 버렸는지에 대해서 우리 먼저 스스로 고민하고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별 가정에서 "육아에 대한 책임이 아빠에게도 있다" 라는 변화는 당연한 영역이고, 우리가 얘기해야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책임을 기존의 "가족공동체" 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부모" 에게만 한정짓는데서 이야기가 끝나서는 결코 안된다.

 이렇게 말해놓고, 너는 휴직, 나는 돈을 벌어오고 5세 이하의 자녀에게는 아빠보다는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하다며 "내가 시간이 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와이프에게 독박 육아를 맡겼으니... 이제 첫째가 실제로 5세가 되었고, 10월 31일이 지나면 49개월차에 접어드는 "진성 5세" 가 되는 만큼 글에 책임을 지고 더 열심히 육아에 참여하는 걸로!


<육아휴직을 사용하고자 하는 예비 엄마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됐던 글> - 2016년 2월 2일

1. 예비 엄마의 경우 - 육아휴직을 당당히 사용한다. 팀의 상황을 고려하여 들어가는 시점 등을 일부 고려할 수는 있는 센스는 필요하겠지만,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가족의 행복이나 전체적인 사회 구조를 위해서도 올바른 육아환경은 반드시 담보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다만 회사에서도 인력의 공백이 생기는 리스크가 생기고, 개인적으로도 업무의 단절이 생기는 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역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휴직 기간 동안 육아 및 재충전, 역량의 추가 개발을 위한 균형 잡힌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했던 얘기를 내가 지키러 떠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