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해주는 시간들
10일마다 육아휴직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총 30가지 정도를 적어보려는 목표를 세웠다. 육아휴직을 하자마자 10일 차에 느꼈던 가장 큰 생각은 "키운다가 아니라 나 역시 자란다"는 생각.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가 주변에서 접하던 것들, 가지고 있는 것들, 그리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던 세상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된다. 이를 거창하게 부모의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런 오버스러운 생각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부모의 왜곡된 행동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금만 자성하면서 돌아보면 자신의 만족을 위해 했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전적으로 아이를 위해서 했던 행동인 것처럼 정신승리를 하는 것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그것을 가장 통렬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아이들의 다양한 관점이다.
어린이집 등원 길에 갑자기 첫째가 손가락으로 계속 무언가를 가르치며 가까이 가서 보여달라고 한다.
뭔데??
가까이 가서 보니까 "거미집"이다. (눈도 좋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구먼...) 약 30 미터가 되는 화단에 그렇게 많은 거미집들이 있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거미는 상당히 크게 커있고, 집도 멋있게 만들어놨다. 그 집에는 걸려있는 벌레들도 있고 그것을 이미 도망가지 못하게 칭칭 감아놓은 것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거미도 있었다.
가까이 가서 같이 보면서 거미에 대한 몇 가지 대화를 나누고 다시 등원 길을 재촉하니, 어릴 때 흥얼거리던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옵니다~"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이들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2가지의 역설적인 충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첫째, 아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에 무한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24개월 정도가 지나는 아이들은 무조건 신기해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자신의 선호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만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 깊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계속 좋아하고 발전시킬지 기피할지 빠르게 분류하면서 성장한다.
둘째, 제한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어른들은 사회화라는 과정과 스스로 인생에서 만들어온 수많은 스테레오 타입에 의하여 스스로의 제한점을 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정해버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이 없다. 일단 시도하고 스스로 제한점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다시 시도하고 또 하고... 또 한다... (그래서 부모들이 힘들다...)
어른이 된 세계에서 아는 것이 없는데 제한점까지 모르는 사람은 일반적으로는 배척의 대상이 되기 쉽다. 개념이 없다거나 관리하기 어려운 대상이라고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세상은 자신들이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어떤 제한점을 만들어내는 "기득권"과 그 세상이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해도 제한점을 두지 않고 도전하는 "새로운 세력"에 의해 변해왔다. 에디슨이 그랬고, 아인슈타인이 그랬고, 스티븐 잡스, 마윈이 그래 왔음을 역사적 사례로도 많이 보며 이를 배우고자 하지만 막상 나는, 내 자식에게는, 내 가족에게는, 내 친구에게는, 내 상사에게는, 내 동료에게는 그래도 그건 너무 힘든 길이며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서로 독려(?)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된다.
프립 소셜클럽에서 같이 읽고 있는 "슈독"이라는 책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 책을 보면 나이키가 대체 어떻게 이런 회사가 됐을지 초창기 시절은 진짜 심각한 수준이다... 좌충우돌... 그러나 그들은 아는 것이 없었고, 제한점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지금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데 집중했고 지금 세계를 석권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여전히 나이키에 살아서 흐르고 있다.
오니쓰카는 우리에게 이 신발의 상표명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바우어만 코치는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축원하는 의미에서 '아즈텍"을 제안했다.
(중략)
그런데 아디다스가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했다. 아디다스는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겨냥해 트랙 스파이크의 일종인 "아즈테카 골드"라는 신제품을 출시한 터였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중략)
"아즈텍을 정복한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지?" "코르테즈라고 하던데요." 그러자 바우어만 코치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좋아, 이번 제품은 코르테즈라고 하지"
신입사원 시절 모른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른다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모른다는 것에서 포기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나 자신의 태도를 조우할 때 그것이 부끄럽다.
대리가 되고 나서 그래도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고 스스로 천장을 정해놓고 그것이 안정감 있게 일하는 것이라고 착각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리스크나 리소스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성은 오히려 더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안된다" 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제한점을 가지고 했던 판단과 결정들이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더 우리 회사를 안 좋은 길로 이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지점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아이들과의 시간은 결코 아이들과의 추억만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결코 아니다. 내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 아닐까. 그것이 인정되고 장려되는 사회 분위기가 한층 더 성숙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