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지는 이중적 감정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SK 텔레콤에서 하는 대학생 사회봉사단 Sunny 를 하던 시절, 활동에 앞서 사회공헌 전문가의 강연 시간이 있었고, 그 강연에 나온 질문은 나눔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철학을 바꾸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왜 나눔을 하는 것인가?
결론을 바로 얘기하면 결국은 "내가 좋으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이야기? 실제로 봉사활동이나 기부를 계속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위에는 나의 만족감이 가장 크게 녹아들어 가 있다는 것이다. 통계자료를 떠나서 그 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니 결국 이런 모든 활동은 나의 삶을 충실하게 하는 감정적 이익이 나의 행위로 인해 도움받는 누군가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나눔에 대해서 결코 누군가를 돕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행위 자체가 나의 삶을 파괴할 수준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국 나를 돕는 행위이다.
육아휴직을 하기 이전에도 나는 평일에 전혀 아이들을 케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말에는 되도록 아이들과 다양한 곳을 경험하고 놀아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실 그 시간들을 온전하게 즐기지는 못했다. 해야 할 것들이 계속 쌓여만 가고 나의 부족함은 계속 나를 괴롭혔으며,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체력은 나이가 들어감이 체감될 정도로 안 좋아졌다. 같이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야 함에도 오히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얼마나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충실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사실 스스로에게 50점 이상은 주기 어려울 것 같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하게 된 육아휴직을 30일 넘게 지나가며 여전히 벌려놓았던 것들로 인해 100%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관점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들이 결코 나의 잘못이 아니야"
첫째, 내가 이 세상에 데려온 천사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온전히 바로설 수 있을 때까지 챙겨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 역시 이번 생에서는 어떤 책들을 참고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공유하며,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다고 해도 나의 아이들과 있는 모든 일들은 처음이며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둘째, 부모의 의무가 물론 중요하지만 나의 역량이 부족하여 아이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준, 또는 시스템은 도와주지 않으면서 세상이 알게 모르게 절대적으로 강요하는 육아의 기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 나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어린이집에서 가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아이에 대한 폭력행위가 일어나면 육아를 하는 많은 부모님들은 이중적 감정을 갖게 된다. 사회적 자아는 이런 일을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개인적 자아는 내 자식에게도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소리치고, 궁디 팡팡을 하고 싶은 일이 벌어지는데...라는 용납될 수 없는 공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도덕적 기준이 평소에 높았던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흠칫 놀랄지도 모른다.
(물론 유아동에 대한 폭력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신의진 박사님이 쓰신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동네 놀이터에서 둘째 아이를 잠깐 잃어버렸어요... (중략) 불과 3~4분 동안이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다행히 아이가 지하 주차장에서 울면서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잠시 가만히 있더니 어렵게 입을 뗐다. 두 눈은 벌써 눈물로 그렁그렁했다.
"저 정말 잠깐 동안 1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지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에 아이가 없어지면 슬프기는 하겠지만 이 힘든 건 끝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스스로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세상에 고정 불변하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에는 좋은 사람이라도, 상황이 변하면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는 게 또 사람이라는 존재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너무 엄격한 기준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집단에게도 강요하며 그 기준에 맞지 않았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진영으로 갈라져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너무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자신의 감정에 있는 그대로 충실할 것. 나쁜 생각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인정. 그 감정에 순간적으로 굴복하는 자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관용과 스스로의 포옹을 통해 반성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이 길의 끝에서 나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그런 것들을 통해 오늘도 나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성장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친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조차 그녀의 행위를 공격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그 의도가 무엇이든...) 인생의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는 말하고 싶다.
나는 세상 착한 첫째와 세상 예쁜 둘째만큼 나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