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엔진 Dec 19. 2019

소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혁신

우리를 착각하게 만드는 지점들에 대하여

 혁신. 이 좋은 단어가 2019년 하반기 대한민국을 계속해서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누적되는 혁신 갈등의 첨예함은 합의의 지점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가고 있으며, 이제는 합의가 아니라 각자 입장에서의 생존 경쟁의 형태로 가고 있다. 여기에 올라타서 작은 이득이라도 챙기고자 하는 일부 정치인이나 지식소매상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이 지루한 줄다리기는 언제쯤 끝이 날까?


 기본적으로 모든 사회에는 기득권과 이에 도전하는 새로운 세력이 있다. 새로운 세력은 기존 기득권의 잘못된 지점을 공격하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언제나 모든 기득권은 자신들의 권리로 인한 편의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내부에서 계속해서 자라고 있는 자기모순을 개선하려는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고 이를 공격하는 새로운 세력은 언제나 "정의" 의 편에 있는 것처럼 초반에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프레임이다.


 그러나 하나만 더 들어가서 생각해보자. 새로운 기득권을 공격하는 새로운 세력이 결국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명분을 취하더라도 그 끝에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동일하다. 


 새로운 기득권


 기득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새로운 세력은 새로운 기득권이 되기 위한 투쟁을 한다. 그렇기에 그들만의 리그의 경쟁에서 한발 떨어져서 그들 중 누군가를 "선택" 해야 하는 소비자이자 시민으로서는 그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이 맞냐 틀리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럼 무엇으로 바라봐야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는 구조가 결국 내 삶의 오늘과 내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득권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투자한 사람들, 그리고 해당 생태계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가장 좋은 전략은 "소비자 편익, 즉 내 삶의 오늘" 을 공략하는 것이다. 기존 기득권 역시 과거에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고 경쟁 초기에는 "거대한 세력 vs 미약한 세력" 의 구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는 필수 불가결한 선택의 지점이다. 


 같은 배를 타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새로운 세력이 새로운 기득권이 되길 적극 지원하는 투자자본이 있기 때문에 자체적인 매출/이익구조의 지속가능성은 가지지 못할지라도 계획된 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 이러한 초기 상황에서는 소비자 편익을 더더더 강조하고 소비자들은 기존 기득권에게 답답했던 지점들이 해결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이에 환호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카타르시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력이 주장하는 것들에 대하여 어떤 모순이나 취약점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기존 기득권과 경쟁 우위를 가져오기 위해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는 서비스의 경우는 특히 유심히 그 지점을 봐야 한다. 기존 기득권 구조에서는 그것이 "비용" 이 발생할지라도 그런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순화시키면 아래와 같다.


1) 아무 의미 없는 비용이다. 그냥 본인들도 왜 유지하고 있는지, 그런 비용이 나가는지도 모른다. 
  - 이 지점을 개선해서 찾아내는 스타트업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2) 국내 규제 등에 의해서 기업 입장에서는 절감하고 싶지만 유지되는 비용이다.
    대표적으로 고정자산 및 운영비, 인건비 등이다. 
  - 이것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을 시키면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숨기거나 편법적 방식을 택하게 된다. 


 네거티브 규제로 일단 시도는 가능한 미국 시장에서 시도되었던 수많은 공유가치 기반 플랫폼 사업들에 의해서 왜 AB5 법이 논의되고 있는지, 그 핵심에 아래와 같은 원칙을 적용했는지가 기득권과 대항한 새로운 세력이 2)의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러한 것들이 기존 기득권에게는 비용으로 전가되었을지라도 그것은 자본의 탐욕이 통제를 벗어나 반복해서 잘못해왔던 것들은 하나씩 규제하고 공동체의 권리를 쌓아 올려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비용인 경우가 많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낡은 지점이 있다면 개선해나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자본의 탐욕에 의해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사회 공동체의 약자들에 대한 보호"라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또한, 갈등의 첨예함이 극단화되었을 때는 "우리 공동체가 이 서비스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가?"의 원칙에서 출발하여 합의하고 양보하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야 하는 것이 맞다. 

(A) 회사의 지휘와 통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Is free from the control and direction of the company in performing work, both practically and in the contractual agreement between the parties; and

(B) 회사의 주요 사업이 아닌 부분에서 일을 해야 한다.
Performs work that is outside the usual course of the company’s business; and

(C) 회사의 업무와 독립적인 직업 또는 사업에 종사해야 한다.
Is customarily engaged in an independently established trade, occupation, or business of the same nature as the work performed for the company.   




 <바이라인 네트워크는 언제나 생각하기 좋은 기사들을 제공해준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소비자의 편익 관점에서 어떤 서비스를 격하게 응원하고 있다면 반대로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다 맞는 것이고 나에게 이런 상황이 생겨도 격하게 동의한다고 말이다. 나는 결코 그렇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우리 회사가 갑자기 나한테 소속을 인력파견업체로 바꾸라고 하고, 일은 내가 편한 시간에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회사가 너의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보장해주지는 않을 것이나 일은 최대한 많이 할 수 있도록 중개는 열심히 해줄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결정이 반가운가?
 우리 회사가 갑자기 나한테 컴퓨터를 사 오라고 한다. 우리는 컴퓨터를 1대도 보유하지 않으면서 생산성을 개선하는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려고 하니 일하고 싶은 사람은 직접 컴퓨터를 들고 오라는 것이다. 그 컴퓨터의 OS 나 소프트웨어도 다 본인이 직접 구입해야 한다고 한다. 일은 최대한 많이 할 수 있도록 중개는 열심히 해줄 것이라고 한다. 만약에 컴퓨터를 살 돈이 없으면 그 컴퓨터를 살 수 있게 금융 프로그램을 지원해주겠다고 한다. 나는 이 결정이 반가운가?
 우리 회사가 갑자기 내가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프로모션 때문에 고객한테 가격을 다르게 받을 것이라서 월급을 변동시킨다고 한다. 근데 이것도 매번 다르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변동을 시키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받는 월급이 얼마인지 나도 그 기준을 알 수 없게 돼버렸다. 나는 이 결정이 반가운가?

 사회 속의 구성원은 "소비자" 라는 역할로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근로자" 라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병행된다. 이러한 구조가 내일의 나에게 갑자기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혁신은 결코 응원해서는 안 되는 혁신도 존재하고, 반대로 기득권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개선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하는 "시민" 으로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나의 오늘의 편의가 내일의 편의를 결코 담보할 수 없다. 아니. 오늘의 편의를 위한 나의 어떤 선택은 반드시 나의 내일의 편의를 파괴하는 길을 향해 차근차근 전진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 중 하나인 정관정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옛날 순임금은 칠기를 만들었고, 우임금은 제기인 조에 조각을 하였소. 당시 이 두 가지 일 때문에 순과 우에게 간언 하는 자가 십여 명 있었소. 식기에 장식을 하는 하찮은 일까지 고달프게 간언 할 필요가 있소? 

저수량이 답했다.

그릇에 조각을 해 세공하는 것은 농사를 방해하는 것이고, 아름다운 허리띠를 만드는 것은 부녀자들의 생산활동을 망치는 것으로 먼저 사치스러운 기풍을 제창한 것이니, 이것은 나라가 위급해지고 멸망하게 되는 시작인 것입니다. 칠기에 만족하지 못하면 반드시 금으로 만들게 되고, 금으로 만든 그릇에 만족하지 못하면 반드시 옥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강직한 신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막도록 권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정점까지 이르게 되면 다시 간언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혁신이라고 말하며 그 초심의 순수성이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그 열정과 용기는 응원한다. 하지만 그 순수성의 결과가 우리가 그동안 짧은 산업화 시대를 통해서 어렵게 만들어온 가치를 파괴하고 있는 일이라면 그 도전은 결코 응원할 수 없다. 이런 초기의 태클들이 아직은 그 도전이 어떤 빛도 보지 못한 상태라서 억울한 감정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나는 결코 당신을 응원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 솔직히 근로자와 시민이라는 역할을 동시에 가진 소비자로서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의 직언이자 간언일 수밖에 없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어떤 단계를 통해서 거기까지 도달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우리도 어쩌면 자연스럽게 그 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사 버드(베르데) 국립공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