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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Jan 18. 2016

엄마 육아 책임론 다시 생각하기 - 2

"공동체 육아 책임론" 을 위해 지금 당장 이런 것들을 해보면 어떨까?

 


 SBS 다큐스페셜 엄마의 전쟁을 2부까지 보고나서 그동안 생각해왔던 육아에 대한 사회적인 생각과 현실로 닥친 육아 초보 아빠의 입장에서 개인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카카오톡 채널에 잠시 노출되면서 나도 모르게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또 다른 생각의 가지치기를 해볼 수 있었다. (그 부분은 다른 글을 통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짧은 생각이였는데, 많은 분들이 들어와주셔서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게 된 2016년 1월의 어느 하루

 신년부터 육아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내며 (대부분 여성들의 분노와 함께) SBS 엄마의 전쟁 3부작이 끝났다. 좋은 화두를 던지면서 시작하는가 싶더니, 3번째 이야기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조금은 독특한 케이스를 가지고 내용을 접근하다 보니, 1~2부작에서 말하고자 했던 내용과 개연성이 떨어지며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다고 생각한다. (극단적 상황 속의 다양한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모두의 참여와 이해가 중요하다" 라는 메세지를 주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편집은 아니라는 개인적인 생각)




 지난 글을 통해서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육아를 "엄마의 전쟁" 으로 만들어버렸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이제라도 육아는 "공동체의 전쟁" 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늘은 공동체의 전쟁이 되기 위해서 리 마음 속에 있는 당연하게 인정받아야하는 선택들을 "당연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을 때 진정한 육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지난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이어서 적어보려고 한다.


 많은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은 제도적인 지원을 통해 육아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예산" 은 언제나 한정적이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도는 현실에서 운영되는데 한계가 있다. 또한 인구 절벽을 통해 심각한 위기가 눈 앞에 오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의 육아 대책은 우선 순위에서 뒤에 설 수 밖에 없다. 또한, 육아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현재 많은 젊은 세대들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누리 과정 예산은 없지만... 겨울철이 되면 공사는 언제나 ing...
언제쯤 예산의 우선 순위에서 우리는 "미래와 교육"을 얘기할 수 있을까?

 

 지난 2015년 10월 31일, 아이를 출산하면서 "출산 자체" 에 부담한 비용은 약 50만원 수준이다. (산후 조리원은 대한민국의 특별한 문화이자 개인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 1인실 2박 사용 비용 + 아기의 장애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파고드는 산후 장애 검사 몇 가지(난청검사, 선천성 대사 질환 검사)가 포함되었기 때문인데, 만약 자연분만의 기준에서 표준병실을 사용하고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실제로 부담하는 금액은 "2만원" 이였다. 나머지는 전부 의료보험에서 전액 부담을 했기 때문이다.

 출생신고를 등록한 이후 부터는 육아지원금으로 1년간 매월 20만원이 지급되는데 기저귀 값과 분유 값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모유 수유를 하면 분유 값도 절감되고 기저귀도 생각하는 것만큼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부분들 이외에도 돈이 들어가는 부분은 많지만, 그것들은 부모의 마음에서 선택적으로 하는 영역이 많을 뿐 이것 저것 다 포기하고 "출산" 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만 생각해보자면 비용적으로 그리 많은 부담이 있는 수준은 아닌 상황이다.

 막연하게 아이 1명 나으면 키우는데 대학 졸업까지 평균 3억 정도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 역시도 부모의 욕심에 의해 과다한 교육비 지출 등을 줄이고 등록금은 "니가 벌어 가라" 라고 하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나온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육아" 라는 경험해보지 못한, 또는 경험하고 있는 영역에 대해서 우리는 왜 그렇게 겁먹고 두려워 하는 걸까? 정말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책이 심각하게 아무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단순히 "돈" 만의 문제인걸까?


 감당할 수 없는 집값, 불투명한 미래, 자기애가 높아지는 시대의 변화 등 다양하게 얽힌 문제들이 많고 이것들은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이슈는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문제로 다루기로 하고, 육아가 공동체의 전쟁이 되기 위해서 "마인드" 만 바꾸면 당장 해결될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1. "있는 제도와 권리를 사용하는데 눈치가 보여서는 안된다"


 세종대왕이 스물아홉 살때 당시 궁중에서 일하는 노비가 해산을 하면 휴가로 열흘을 줬다. 이를 다시 생각해본 세종대왕은 “노비도 사람이니 애를 낳은 뒤 100일을 쉬게 하고 애를 낳기 전 한 달을 쉬게 하라.” 라고 지시한다. 산전·산후 유급 휴가 제도를 만든 것이다. 4년 뒤에 세종은 남성 육아휴직까지 만들었다. “아이를 낳은 산모는 중환자이니 그 남편도 휴가를 받아서 산모를 간호해야 한다.” 라는 너무나 상식적인 말과 함께.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세종대왕의 통제력이 미치는 영역의 관노들은 당연히 저런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의 관노들이나 사노비들에게 이런 혜택이 정상적으로 운용되었을까? 왕명이자 하나의 제도라고 해도 노비가 자신의 입장에서 맘편히 풀타임으로 꽉 채워가며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까? 언제나 법과 제도는 "있었다"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법 취지대로 정확히 운용되고 있는가?" 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법으로 보장된 연차를 쓰는데도 "많은 눈치" 를 감수해야한다. 고작 하루 휴가를 가는데도 말이다. 분명히 법정 노동 시간은 정해져있고, 근로 계약서가 작성되어 있음에도 30분~1시간 일찍 출근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야근은 당연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초과 근무 수당을 올리는 것이 생각 없는 행동으로 낙인 찍히고, 특정한 상황 때문에 야간이나 새벽에 해야하는 작업을 실시하는 경우 필연적인 근무를 하게 되더라도 좋은 상사를 만나지 못하는 이상 오전 비번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 성별 관계 없이 (예비) 일하는 아빠/엄마들의 현실이다.


 여성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인원 편제" 문제 때문에 자신의 일을 구성원들이 추가인원이 없는 상태에서 나눠가져야 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일하는 엄마는 스트레스다. 그런데 임신 시기가 평가 시즌과 맞물리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고과를 양보해야 함은 물론이고, 복직 이후에도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이런 구조적인 상황을 만들어놓고 "업무에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 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일을 해도" 임신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같은 수준의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게 사회가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면서 여성들에게 어떻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능력을 발휘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있는 제도와 권리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 그런 당연한 선택에 의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될 때 육아는 엄마의 전쟁이 아닌 우리 모두의 전쟁이 되는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2. "노동 형태에 대한 명확한 고민이 필요하다. 파트타임 정규직이 어쩌면 해답일 수 있다."


 갈등의 축이 단 하나라고 가정하면 그 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쉬운 예가 "남과 북". 이렇게 프레임이 극단화되어 갈등이 극대화되면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의 축은 다변화되어 있는 것이 좋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시간은 오래 걸려도 "해결의 가능성" 을 가지고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좋다. 그래서 사회에는 목표가 명확한 부자와 빈자로 양극화되는 것보다 목표가 다변화되어 있는 중산층이 건강하게 존재해야 그 사회의 헤게모니가 건강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명확히 갈등하면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노동형태에 대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만 구분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마치 정규직은 "위대한 승리자" 인 것처럼, 비정규직은 "패배자" 인 것처럼 구분지어 버린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정규직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미명하에" 그저 열심히 일한다. 끝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사내정치에 몰두하거나 패거리를 형성하고 프리라이더의 행태를 보이며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사람들이 사회 속에 의외로 많다. 그래도 정규직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것 같다. 비정규직은 매일이 불안하다. 실수할까봐 두렵고 회사에서 언제 나를 정리할지 모르겠다. 더 치열하게 살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정규직들보다 대우도 못받고 언제 정규직이 될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이런 굴레 속에서 모든 근로자는 승리자가 없이 모두 패자가 되는 길을 걷고 있다. 이런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성공한 사람은 그 열매를 크게 수확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그런 굴레 자체가 없는 세상일 것이다.


정직원되셔도 3년 연속 부진 대상에 속하면 나가시면 됩니다. 우리는 이걸 노동 개혁이라고 하네요..

※ 참고 : https://brunch.co.kr/@davidyoon/9 - 브런치 작가 데이빗님이 쓰신 노동 개혁 법안 내용 (쉽고 깔끔한 정리로 추천)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어차피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모든 조직은 "삼각형" 의 구조로 인적자원을 구성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양질의 자리"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고 경쟁에서는 지는 사람은 하위 구조에서 계속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목숨걸고 일만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안정성" 이 담보되기만 한다면 그 수준에 맞춰서 자격있고 성실하게 일을 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그런 일자리가 우리 사회에 거의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자리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겠지만, 사원/대리급에서 충분히 분할해서 처리 가능한 수준의 업무들은 "파트타임 정규직"으로 구분하여 운영해도 대부분의 조직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중간관리자들이나 회사는 분명 피곤해지겠지만...)


어차피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임원이 모든 사람의 인생 목표의 끝은 아니지 않는가?


 최근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성들도 "경제적으로 보탬" 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여성들도 엄마라는 이름과 더불어 여성 스스로의 꿈과 비전을 펼치고 싶은 바램을 가지고 있다. 육아 휴직으로 무조건적으로 쉬는 것이 아니라 파트타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경력의 연속성도 이어주고, 남은 시간 까지 일을 할만큼 인력이 필요하다면 빈 시간 만큼의 파트타임 정규직을 고용하여 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단기 성과성을 위한 "시간제 계약직" 확충이나, 비정규직 2년에서 4년으로 연장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런 대책으로는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지금은 스스로 성장하여 어느 세대의 여성들보다 우수하게 성장한 대한민국 여성 인력들이 "출산 포기" 를 선언하든, "경력 포기" 를 선언하든 누구도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없으며, 이 자체가 우리 사회에 너무나 심각한 손실이다.


 역시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고도 성장기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가는지 올바른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이다. "치고 나가려는자,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자" 모두가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며 안정되고 만족할 수 있는 노동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 파트타임 정규직의 적극적 검토가 이 문제를 상당히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키가 될 수도 있다.

우리 나라 여성 최초 주재원 타이틀을 가진 인재를... 우리는 네덜란드에 빼앗기고 말았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너무나도 많다. 위에서 말한 2가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8시까지 출근하는 엄마들은 어린이집 하나 찾기가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다. 막상 구했다쳐도 등원/하원시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아빠는 "남자가 능력 하나 제대로 없어서 내 여자를 고생시키고 내 자식을 고생시켜야 하는가?" 라는 수컷의 본질적 자괴감을, 엄마는 "회사일도, 육아도 모두 제대로 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나 힘에 겨워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 혼자만의 고군분투를, 아이들은 가장 중요한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충분한 추억과 소통없이 자라나게 되는 대한민국의 구조적 현실을 이제는 "엄마의 전쟁, 가족의 전쟁" 으로만 지켜봐서는 안된다.


 기업의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인 변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지만, 바른 변화라면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면서 조금 더 빠르게 정책적으로 속도를 내고 공동체가 함께 방향을 공유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꿈과 행복을 논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올바른 방향성을 공동체 모두가 고민하며 "나만 아니면 돼!" 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돼!" 라고 외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그래서 내 아들이 지금의 내 나이 34살이 되어 있을 때 결코 이 땅에 "헬조선" 이라는 말이 없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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