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시절의 다짐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박제하며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사랑하는 첫째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충치때문에 신체의 일부분을 갈아내는 고통을 부모의 입장으로서 바로 옆에서 손 잡아서 지켜준 날이며, 고통에 몸부림치며 순간의 미션을 완수한 첫째에게 부모로서의 절반인 아빠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보충하기 위해 나의 한계를 느끼고 긴급하게 엄마가 일하는 일터로 쳐들어가 그 부담을 회피한 날이며, 내 인생에서 가장 아끼게 될 브랜드를 알자마자 현장에 방문해서 첫째와 추억을 남긴 날이며, 브랜드의 철학을 내 지갑의 일부로 소비하며 집에서 얌전히 기다린 둘째에게도 함께 나눈 그런 일상의 어느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언제나 마음은 함께 했지만 현장에는 같이 하지 못한 리뷰빙자리뷰의 57번째 이야기에 함께 하게 된 저녁 시간. 육아휴직의 중반기에 접어드는 52개월, 32개월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물리적인 시간이 많더라도 "엄마" 라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이길 수 없는 "아빠" 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시간에서 내가 느끼는 혼란의 지점.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나의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가장 크게 피부로 와 닿는 그런 어떤 하루. 그리고 브런치에 어떤 제안이 들어왔는데 아직은 뭐가 뭔지 모르겠는 그런 하루의 끝에... 나는 그동안의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을 모아 어떤 결심을 했고 아직은 세상에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한 오늘.
어쩌면 지금의 위치에서만 선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의 브런치에 박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리뷰빙자리뷰는 참 어려운 주제 "퍼스널 브랜딩" 에 대한 얘기였다. 평소 참 좋아하던 록담 백영선님이 기획하는 자리에 마음만 함께 하다가 처음 참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친구의 트렌드라는 랜선 친구인 오늘의 "리뷰어" 님의 경험을 들으며 정리되지 않던 또 하나의 지점을 명확하게 정의내리게 된 그런 날이다.
리뷰빙자리뷰는 전체 시간 내 특별한 포맷이 있는데 바로 참석한 자신을 소개하고 오늘의 시간에 대한 기대를 공유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정답만을 찾고 더 빠른 길을 찾는 것에 익숙한 문화에서 자란 한국인들에게는 참 어색한 지점이기도 하지만 주제 때문이었을까? 모두가 자신이 고민하는 지점을 가감 없이 얘기하는 시간으로 시작되었다.
그 시간에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자동차 회사에서 멤버십 제휴를 담당하는 박찬근입니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며 여유를 가진 시간에 더 많은 것들을 배우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특히 오늘의 주제인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최근 분위기를 보며 아쉬운 지점이 있는데,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이 어렵게 들어온 조직을 떠나는 것을 먼저 전제에 두고 이런 고민을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는 것은 내가 아니라 조직의 성과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못하며 그런 반복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가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렵게 들어온 회사인 만큼 저는 지금부터도 10년은 더 다니려고 하는데 내가 누구인지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조직 내에서 버티면서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복직을 하게 되면 사내에서 이런 모임을 운영해서 만들고자 하며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 배우고 싶어 이 자리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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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오글거린다. 진심으로 오글거린다. 비슷한 듯 다른 지점의 고민을 하는 많은 참여자분들이 있었고 그렇게 짧은 듯 긴 120분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나의 필력으로는 온전히 전달하기도 벅찬 이야기들이었기에 여기에 남기지 않음을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사례와 함께 같이 공유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깨달았던 많은 지점들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세부 사례들은 공유하지 않기로 한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들만의 NDA(Non-disclosure agreement)이기 때문이며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리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나의 다짐이기 때문이다.
퍼스널 브랜드를 인정받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만약에 내가 퍼스널 브랜딩에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찾아와서 나의 전문성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랬을 때 나는 경제적 가치로 "얼마" 를 요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합당한 가격이라고 무엇을 근거로 상대방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는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동기부여가이자 저자인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강연을 얼마일까?
모르긴 몰라도 언론에 노출된 기준으로 보면 한국 방문 당시 기준 8억이다.
그의 글을 좋아하지만 나는 이 지점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강연의 기획자가 기가 막힌 마케팅을 통해서 그 자리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이나 기업/조직들의 스폰서를 성공적으로 모았고, 모두가 그에게 감동하여 그 금액에 아무 불만이 없다고 해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은 그 성공이 온전히 그것을 이룩한 프로 혼자만의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정도의 경제적 이익이 개인이나 특정 조직에게 귀속되는 것이 올바르냐는 것이다. 그들이 나누는 무언가는 삶을 직접적으로 바꿔줄 수 있다기보다는 바꿀 수 있는 지점을 "터치" 해주는 것일 뿐 책임져주는 부분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강의로 사람이 100% 바뀐다면 최소한 그런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삶이라도 아름답게 변했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고, 참석여부에 관계없이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되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결국 인생은 자신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전문가인 프로의 시간당 가치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도서, 텍스트, 동영상 등을 통해 소비자가 최소한의 경제적 가치만 부담해도 이러한 콘텐츠에 도달할 수 있게 SNS와 같은 Tool 이 발전하고 트래픽의 결과로 일정한 수익을 전문가로서 궤도에 오르면 안정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실제로도 이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공공의 이익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그러나 여전히 학습자, 꿈꾸는 자들은 이런 전문가들의 실물을 영접(?)하길 바라며, 이러한 동기를 이용하여 때로는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누군가도 세상에 분명히 실존하고 있다(심지어 이미지만 있을 뿐 전문성도 없는 경우는... 할말하않...).
물론 참여자가 만족했다면 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던 시절 전문가라고 인정받는 프로들이 챌린저였던 시절 꿈꿨던 세상의 초심이냐고 반대로 묻고 싶다.
아직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그렇기에 미리 선언할 수 있는) 내가 꿈꾸는 성공한 삶의 공식이 그들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내가 지금보다 한 걸음씩 나아가서 누군가가 나를 이 정도 인정해줬다고 했을 때 내가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경제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나는 내가 취하는 경제적 가치를 현재의 고정 가격을 정하고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수준으로만 인상하며 그 이상은 오직 사회적 가치를 위해 나눌 것이며, 그것을 PPS 의 원칙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쉬운 계산법이다.
(P)ersonal Income = (P)ayment - (S)hare Value ▶ 요약하면 P = P-S, PPS의 원칙!
(P)ersonal Income : 이를 통해 내가 취하는 경제적 가치이며, 최대값은 1시간당 2020년 물가 기준 50만원
(P)ayment : 누군가 나에게 지불하고자 하는 경제적 가치, 크면 클수록 좋다
(S)hare Value : (P)ayment 를 제공하는 사람과 합의된 Social Value 를 위해 합의된 기부금
즉, 예를 들어 누가 나에게 1시간의 강의를 해주시면 1억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제의하고 (생각만 해도 행복하구만...) 그 시점에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문제가 A 라고 했을 때, 나는 그 시간을 충분히 프로페셔널하게 진행한 이후 2020년 기준 50만원을 개인으로서 수취하고 (물가상승률은 고려하는 걸로...) 나머지 금액 9천 9백 50만원은 A를 가장 잘하는 누군가 또는 비영리단체에게 요청하는 쪽에서 직접 기부하며 진행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할 것이다. 이 경우 이 강의를 진행하는 업체나 조직은 법인의 기부금 처리가 가능하여 매출액 대비 세액공제까지 받을 수 있으니 모두가 해피해지는 길 아닐까. 그리고 전문가로 인정받은 개인이 불필요한 과욕과 치장, 무리수를 두지 않게 되는 구조적 프로세스일지도 모른다는 아무것도 없는 자의 아주 나이브한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는 단기간에 휘발되는 짧은 강의라는 콘텐츠에 대한 단순 가정적 원칙일 뿐, 저작권이나 기타 다른 지적 재산권에 대한 귀속 수준은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베스트셀러는 1권이고 이게 전업인데 월 50만원에 고정하면 이건 기준이 잘못된 것이겠죠...? 디테일은 극단적인 예로 설정한 나만의 기준이며, 나누고 싶은 지점은 아래의 질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투자할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좋은 일을 하더라도 왜 꼭 굳이 나의 재산으로 귀속시킨 다음 해야 하는가?
지구상 절반은 굶어 죽어가고 충치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발생하지도 않는 질병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당장 내 옆의 이웃이 여전히 어려움을 당하는 소식을 접하고 점점 양극화되는 세상에 대한 불안감을 매일 조우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OECD 자살률은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는 슬픈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노력이 충분했고 세상의 도움은 거의 없이 고되었더라도 충분히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준에 도달했을 때를 없는 시절부터 고민하지 않으면 풍족해진 시점에 결코 쉽게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미 이 정도 수준에 올랐다면 무리한 소비를 하지 않았던 이상 적정한 재산은 형성했을 것이며, 충분한 저작권이나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 기반 수익들이 생겨있다는 것을, 또는 창업으로 성공했거나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Main Job의 수입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밝힌다. 집에서 아이가 굶고 있는데 이런 성인군자 같은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것은 개인의 가치관 차이일 뿐이며, 이익의 많은 부분을 개인 스스로에게 귀속시키고 즐기는 것 역시 나는 충분히 응원한다.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진행한 범죄행위가 아닌 이상 해당 개인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 역시 충분히 공감하며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 이 불편한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 있다면 이것은 그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대답일 뿐이라는 점을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제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자인 빌 게이츠가 한 때는 독점적 지위를 가장 잘 활용하며 자신의 기업과 지분가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또 다른 일면이 있다는 것을... 126조원을 가지고 있는 그가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백신 개발에 기부한 금액이 1,186억원이지만 재산의 0.1% 라는 것을 감안하면 2019년 기준 한국의 국민들이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소득 수준인 월 400~500만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월 4~5천원 / 연간 약 5~6만원 기부해도 우리는 충분히 빌게이츠만큼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틀어서 이해했으면 좋겠다.
아마 이 글은 서두에 밝힌 것처럼 내가 2020년 현재 아무것도 없는 시점에 밝힌 다짐이다.
잠시 후에 아이들이 일어나면 또 새로운 행복하면서도 고된 하루가 시작될 것이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계속 고민하는 평범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비틀어서 생각하는 것은 계속할 것이며, 이런 가치를 나의 아이들에게도 일관되게 가르치며 지금보다 더 나은 인정을 받아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나만의 제약을 걸어보기 위한 그런 글을 소중했던 리뷰빙자리뷰 시간 이후 조금은 두서없이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