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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an 25. 2021

창작에 대하여

  손재주가 없어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서툴렀다. 종이접기라던가 레고, 장난감 로봇, 조립형 선반이나 책상을 앞에 두고 한참을 고생했다. 설명서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데 유난히 이해도가 떨어지는 탓에 멋대로 조립해놓고 '쓰러지진 않겠네'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무언가를 만드는 데 젬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던 중 연기에 흥미를 느꼈고, 글 속에 적혀있는 인물을 직접 연기하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탄생한다는 것에 감탄했다. 이것이야말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 아닌가. 작가나 연출가가 글 속의 단서나 의도를 통해 대략적인 설명서를 제안 하긴 하지만 순전히 내 목소리, 내 몸짓, 내 분석과 생각이 침투해 생성되는 일, 같은 설명서로 만들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완성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작품,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생경하면서도 창조에 대한 의지가 불끈 타올랐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꾸준히 작품을 하지 않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꽤나 많은 직업이었다. 꾸준히 작품에 참여하더라도 주요 역할이 아닌 경우에는 촬영장에서 온종일 대기하다가 정작 촬영은 삼십 분이면 끝나는 날도 많았다. 선배들은 기다리는 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배우가 가져야 할 능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입듯이 나와 결이 맞는 연출, 역할을 만나는 기회가 올 때까지 갈고닦으며 기다려야 한다고. 

  이런저런 특기를 배워보고 유명 작품이나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습해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해 봤지만 창작에 대한 결핍은 기다림을 극복하기 버거웠다. 나는 정말 누군가가 불러주지 않으면 능력을 발휘할 곳 없는 존재인가. 2차 창작자로서 머물러야 하는 것이 배우의 숙명인가. 그래서 은인과도 같은 작품을 만나면 평생 그 작품에 은혜를 갚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대배우가 되기 전까진 한 번만 믿고 써달라고 허리를 숙여야만 하는 팔자인가.

  물론 허리 좀 굽히는 일이야 수백 번 해도 돈 한 푼 들지 않으니 상관없다만, 계속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찜찜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신세 한탄을 하는 것도 지겨웠다. 겸손이 미덕이라지만 오랜 시간 무명으로 보낸 배우들이 시상식에서 눈물을 쏟으며 감사한 사람들을 호명하다 제대로 된 소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내려가는 것이 아쉬웠다. 감사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 아니라 그간 일궈 온 노력과 과정에 대해서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한두 개쯤은 있을 텐데, 그렇다면 내가 선택받지 못했다고 해서 자존감이 추락하거나 지치는 일 없이 더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연극을 만들자, 영화를 만들자. 왜 우리라고 못할까. 그간 겪어 온 현장이 몇 갠데. 한 명 당 나간 현장만 백 곳이 넘는데 여덟 명의 경험을 합치면 팔백 곳의 현장이다. 능력이 부족한 분야는 전문가를 섭외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도 1차 창작자로서의 느낌을 경험해보자.           

  그렇게 해서 총 두 편의 연극과 한 편의 낭독극, 단편영화 두 편의 기획부터 출연까지 도맡았다. 한 편의 단편영화를 빼고는 극작과 연출도 했고 내친김에 그간 써온 글로 에세이도 한 권 냈다.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내거나 할 만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어떤 작품은 하루만 공연하기에 아까웠고, 어떤 작품은 외장 하드에 파묻혀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작품의 흥망성쇠를 떠나 창작에 임할 때의 그 짜릿함, 창작물을 통해 사람들과 협업하는 연대감,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시선을 통해 수정되어가는 나의 편협함, 그리고 마침내 완성시켰을 때의 쾌감과 홀가분함. 작품이 공개되었을 때 돌아오는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까지. 그런 것들이 나를 창작의 열정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창작의 열정에 빠져 주변에 그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창작에 목말라있다. 속으로는 타오르는 열정을 지니고 있음에도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것을 알기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요즘은 그런 사람들을 한둘 모아 작품을 조립하려고 준비 중이다.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막상 포장지를 뜯으면 다들 달려들어 미친듯이 조립할 것을 안다. 자리가 없을 뿐 열정이 없진 않은 사람들이니까.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재미있을 수도, 별 것 아닐수도. 설명서 만큼 완벽한 작품이 되진 않겠지만, '쓰러지진 않겠는데?' 싶은 일들을 계속하는 것이 내가 살아 숨 쉬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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