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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an 31. 2021

일기가 변화시키는 삶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지만, 한 때는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벅찼다. 뭘 해도 뜻대로 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적도, 걱정 없이 잠에 들어본 적도 거의 없다. 기상 시간으로 흘러가는 시계를 붙들고 다가오는 내일을 걱정하며 불안과 동거했다. 

  그나마 다행은 그 걱정의 깊이가 얕아 다음 날이면 별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깊이가 얕다기보다 망각을 자주 했다고 해야 할까.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났던 대신 먼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변화 없는 삶 속에서 먼 훗날을 상상하자니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하루살이처럼 연명하며 꾸역꾸역 살아냈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도 알 수 없이 몇 달, 몇 년이 순식간에 흘렀다. 

  지나치는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일기를 쓰는 일이었다. 여전히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오늘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록하기 시작했고, 처음엔 마음을 어떤 식으로 기록해야 할지 잘 몰라 그 날 한 일을 목록처럼 적어놓았다. 그러던 중 마음을 동요케 하는 일이 일어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나 차마 누군가의 앞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적어냈다.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이야기 들을 흰 종이 위에 배설했다. 

  묵직하게 쌓여있던 마음을 풀어내니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 정작 대상에게는 전달되지 못한 말이지만 나에게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 순간이 주는 해소만으로도 충분했다. 종이 위에 글로 사정을 토로한다고 현실에 변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변화가 있었다. 마치 체중에는 크게 변화가 없지만 땀을 흠뻑 쏟아낸 후의 샤워처럼 개운했다. 

  그 후로는 힘든 날이라고 해서 술을 진탕 마시고 뻗거나 친구를 불러놓고 어설프게 나를 포장하며 신세한탄하는 일이 줄었다. 차라리 제대로 아픔을 마주하고, 시간이 걸려도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의 시간이 나았다. 외면해봤자 다시 반복될 슬픔의 무게를 해치우려면 정면으로 걷는 수밖에 없었다.  

  아픔을 잠시 보류하는 일은 상처가 난 걸 모른 척하고 지내는 일이다. 아픔을 대면하지 못하고 취기로 잊거나 다른 이야기로 덮어버리는 일은, 상처에 연고를 바르지 않고 대충 보이지 않게 천으로 덮어놓는 일과 같다. 죽을 만큼의 상처는 아니기에 모른 척 살다 보면 언젠가 고통은 사라져 있을지 모르지만, 제대로 처방을 하지 않은 탓에 흉이 지거나 못나게 아문 상처를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 년째 계속해서 일기를 쓰고 있다. 하루를 잠시 멈추고 지나간 오늘을 곱씹으며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일. 일기는 켜켜이 쌓여 한 권의 책이 되었고, 금세 시들시들해졌지만 기대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주었다. 무엇보다 뿌듯한 순간은, 내 책을 읽고 후기를 남겨주는 사람들이 대부분 본인의 일기를 적어내듯 글을 써주는 순간이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개인의 삶을 투영하며 솔직한 마음을 기록한다. 

  기록하고, 다듬고, 보살피는 일은 별 볼 일 없는 하루를 뜻깊게 만드는 일이다. 보통의 하루도 특별한 하루가 될 수 있으며, 특별한 하루들이 모여 또다시 보통의 나날이 되기도 하는 일. 그렇게 나의 보통이 보다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 잡는 일. 스스로에게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일. 내가 삶의 주인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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