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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pr 07. 2021

주간 화이트벨트

#주짓수의 시작

  때는 2018년 가을,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체육관을 찾았다. 헬스엔 도무지 흥미가 없는 나는 안전하면서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워낙 달리는 걸 좋아하지만 달리기는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때 주로 하는 운동이었고, 누군가와 부딪혀가며 보다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다니던 헬스장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체육관을 지날 때마다 발걸음을 멈췄다. 체육관을 고르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는데, 첫째로 간판이 오래되고 허름한가, 합격. 둘째는 관장님이 본인의 이름을 직접 걸고 하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체육관인가. '최정규 종합격투기' 합격. 셋째, 내려가는 계단에서 묵은 땀냄새가 나는가. 합격. 


 어려서부터 만화책을 많이 본 탓에 체육관에 대한 좋은 기준은 항상 신식보다는 구식이었다. 사업가가 투자자로 붙어있는 지상 2,3층에 통유리로 된 다이어트를 권유하는 대형 체육관 말고 전통과 신념을 갖고 운동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가르치는 곳. <더 파이팅>의 일보도 <코히나타 미노루>의 미노루도 그런 곳에서 컸다. 선수를 돈으로 보지 않고 자식으로 키우는 곳. 회원을 제품처럼 여기지 않고 제자로 받아들이는 곳. 우리 체육관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격투기 선수를 할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걸 안다. 육상을 했을 때 마지막 바퀴에서 떠오르던 마음을 기억한다.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내 심장이 멈추겠다', '여기서 더 빨리 뛰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죽지 않았고 항상 결승선을 통과했다. 마음이 주는 공포를 극복하고 신체의 한계를 한 번 더 뛰어넘었을 때의 그 기쁨. 내가 전보다 더 발전한 사람이 된 기분. 혹은 속도를 줄이고 순위권 밖으로 들어왔을 때 금세 회복되는 내 호흡에 최선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은 실망감까지. 그런 것들을 극한으로 느껴가며 살았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기에 굳이 종합격투기 체육관을 고른 것이다. 


'이곳이라면 나를 강하게 키워줄 수 있다'


  자신감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있어서 등록을 하는데 조금 망설였다. 사실 체육관에 들어갔다가 겁먹고 나올까 싶어 무턱대고 회비부터 입금했다. 상담까지 받고 돌아서는 패배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회비를 입금한 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으며 체육관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들은 운동을 하고 있었고 앳되 보이는 사범 한 분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제자리에 서서 체육관을 훑어보는데 관장님이 나오셨고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느꼈다. 


'아, 진짜다. 여기. 이 분 앞에서 핑계나 엄살은 무리다.' 


아니나 다를까 도복을 한 벌 꺼내 주시더니 '오늘부터 할 거야?'라고 하시는 바람에 도복을 입고 운동을 시작했고, 운동이 끝나고 '내일 와'라는 말에 다음 날도 나갔다. 와, 좋다. 나 왜 이렇게 복종을 잘하지. 


그렇게 나의 주짓수는 시작되었다. 중간에 손가락 골절을 겪으며 휴식했고, 2년이 지난 2020년 다시 체육관을 등록했다. 그리고 2021년 4월 5일. 화이트벨트 4 그라우가 됐다. 블루벨트가 되기 전까지 화이트벨트로서의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그 마지막 단계에 섰다. 그래서 결심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열심히 하려면 글을 쓰자. 주짓수에 대해 글을 써가며 그 즐거움을 두 배로 만끽하자. 


앞으로 <주간 화이트벨트>라는 제목으로 주마다 한 번 씩 화이트벨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비단 주짓수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주짓수와 삶의 연관성까지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다루고 싶다. 주짓수에 대해서는 아직 초보 수준이기 때문에 주짓수를 잘하는 방법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함부로 서술하기 어렵다. 그러니 수많은 주짓떼로와 주짓떼라 들은 화이트벨트가 해석하는 주짓수에 오류가 있어도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주짓수든 인생이든 서툴지만 꾸준히 살아가는 세상의 수많은 화이트벨트들. 아직 갈 길이 멀다. 블루벨트 너머 퍼플, 브라운, 블랙까지. 가야 할 길이 꽤나 길다는 걸 알면 지금 하는 실수들은 별 것 아니다. 그러니 겁먹지 말자. 어제보다 오늘 발버둥 한 번 더 친다는 생각으로 살자. 발버둥이 이스케이프가 되고 이스케이프가 서브미션이 되고 끝내 탭을 받는 그 날까지!  


<주간 화이트벨트>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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