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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ul 30. 2021

단쓴단쓴

  무더운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시원한 수박주스. 키위주스니 사과주스니 생과일주스의 종류가 많지만 아무래도 나의 원픽은 수박주스다. 푹푹 찌는 여름날 무더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차가운 수박주스가 뒤통수를 세게 치는 느낌이 들 때까지 빨대로 쭈욱 들이마셔야 한다. 그러면 "아-살겠다" 소리가 절로 나온달까.  


  다른 주스도 많은데 유독 수박주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이야기하자면 라오스에서 마신 수박주스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블루라군에서 다이빙을 한참 하다 나와,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주스 집을 향해 달린 뒤, 머리가 바삭해질 때까지 방비엥의 햇살을 그대로 맞으며 마셨던 시럽이 잔뜩 들어간 수박주스를 잊을 수가 없다. 시럽을 정말 잔뜩 넣는 모습을 다 마시고 나서야 보게 됐는데, 건강에는 그리 좋지 않겠지만 인생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으니 그걸로 된 것 아닌가.  


 하지만 바이러스 탓에 라오스로 떠날 수 없으니 동네 쥬시에서 빅사이즈로 (양심상 시럽을 반만 넣어) 주문한 수박주스의 반절을 없애는 걸로 더위를 해소한다. 그렇게 수박주스를 크게 한 모금 빨고 날 때면 바다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음료는 갖췄으나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없어 아쉽다. 해수욕장 선베드에 롤업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누워 수박주스를 한 모금 빨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마스크 없이. 

 

  이렇게 수박주스를 마시며 온갖 즐거운 상상을 잠깐 하고 나면 현실로 돌아온다. 주스의 시원함도 잠시, 수박과 뒤섞인 시럽 탓에 입안이 달달하고 끈적한 것이 뭔가 입 안을 깔끔하게 만들고 싶어 진다.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한 모금 당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박주스를 들고 터덜터덜 걸어온 터,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더 사자니 사치 같기도 하고, 아직 반쯤 남은 수박주스를 바라보니 욕심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혼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수박주스를 둘 다 시킬 수도 없고, 수박주스를 작은 걸 시키자니 양이 적어 아쉽다. 반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작은 사이즈를 시켜도 부족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작은 사이즈란 모름지기 한 모금만 빨면 얼음만 남기 마련이니까. 결국 오늘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수박주스 하나만 시킨다. 


  아, 이럴 때면 1리터 커피 말고, 초대형 주스 말고, 짬짜면이나 복짬면처럼 주스 반, 커피 반 팔면 좋으련만. 내가 만들어야 하나. 수박주스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단쓴단쓴의 조합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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