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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Nov 12. 2022

11월의 단상들

1


고난과 역경이 다가올 때마다 내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상상을 한다. 어느 작품이건 주인공에게는 시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천천히 다가오기도 하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치기도 한다. 무슨 일이든 주인공은 그 시련을 헤쳐 나가야 하는 운명처럼 이야기는 짜여 있고 쉴 새 없이 고군분투하던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을 비참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난다. 누군가는 중도 포기할 문제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사건에 무모한 오기를 부린다.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위험한 순간을 경험하지만 마침내 승리한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희생과 상실이 있지만 그것 또한 성장의 씨앗이 된다. 그렇게 또 험난한 미래가 올 것을 알고도 다음 미션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바로 주인공이다. 


2


타인이 지닌 슬픔을 여실히 느껴보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이다. 떠나간 이들의 가족, 친구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아득하다. 그래서 다시 아파보려 하지만 역시나 내 가족 먹고 살 걱정이 다시 떠오른다. 어쩌면 이제 해야 할 일은 슬픈 사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방지하되 남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밝혀야 할 것이 많겠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각자의 삶은 각자의 몫으로 분리해서 진행하지 않으면 슬픔이 더 큰 슬픔으로 전이될까 두렵다. 


3


생존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번다. 경제적 자유까진 아니더라도 경제적 결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다른 자유도 얻기가 어렵다. 돈을 쓰지 않으려면 스스로 해야 하고 스스로 하는 동안 시간은 소요된다. 그 과정에서 절약되는 돈도 있겠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활동이라면 그 생활은 무한히 반복된다. 그러니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한다. 본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투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조차 없다면 삶은 점점 피폐해진다. 돈 없이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람이 구질구질한 연애에 이별하는 과정도, 김밥만 먹어도 행복할 수 있다던 사람이 과식증에 걸리는 모습도 봤다. 개인의 다양한 경험을 높은 가치로 두는 세상이다. 경험을 하는 데에도 돈이 필요하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4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지 않는다. 자신이 간 곳을 알리고, 그곳이 누구나 와보고 싶어 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행복한 하루를 보낸 것처럼 포장하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여기 어디야?', '와, 여기 가보고 싶었는데... 어때?' 같은 질문으로 연결되어 그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까지 즐긴다. 이제 평범한 식사는 대충 때운 한 끼가 되어가는 세상이다. 


5


길바닥에 나앉을 만큼도 아닌데 자꾸 돈 걱정을 하는 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언제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무리 없이 대응할 수 있는지 걱정하는 것이다. 나는 급하게 진행됐던 결혼이나 반려견의 수술비 등의 과정을 겪었기에 걱정을 떼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돈에 집착하다 보면 삶이 단조로워지고 우울해지는 게 당연지사다. 

그럴 때면 역시 예술을 찾게 된다. 감명 깊었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이나 마음속에 새겨진 소설 속의 한 구절 등이 절실하다.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것이 생명을 존속한다.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무슨 일이든 오래 할 수 있다. 


6


SNS나 톡으로 소통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점점 음성으로 하는 소통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준비된 멘트가 아니면 실수를 할까 두려워 전화통화보다는 문자 메시지를 여러 번 수정해가며 말을 전달하기도 하고, 긴 통화가 부담스러워 일부러 문자를 남겨놓으면 회신하겠다 말하기도 한다. SNS 업로드는 하면서 지인의 연락에는 답장하지 않기도 한다. 본인이 알리는 일방적 소통에는 관심이 있지만 원하지 않는 소통은 사전에 차단하는 뻔뻔함이 생긴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실망과 깨지는 신뢰로 우리는 SNS에서 유명해지고 실제로는 외로워진다. 


7


그래서 그런지 라디오를 자주 듣는다. 내가 대답해주지 않아도 DJ가 알아서 적절히 따뜻한 말을 던져주고 노래를 틀어준다. 나는 DJ가 듣지도 못할 혼잣말로 대답을 하기도 한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서 흥얼거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가 나오면 주파수를 바꿔 버린다.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순 없지만 다른 방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원하는 것이라도 얻지 않으면 삶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만큼 빡빡해진 세상 탓일지도 모른다. 세상 탓이라는 게 남 탓은 아니고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개개인의 욕심이 뭉쳐져 낳은 결과물이 현재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소외될 것 같은 낮은 자존감이 굳게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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