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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Nov 28. 2022

분주함의 즐거움

숨통을 조여 오는 바쁨이 좋다. 쌓여있는 업무, 재촉하는 연락, 짬 내서 부려보는 게으름, 바쁘다는 투정, 마감 앞의 결정의 순간들, 다가오는 책임. 그리고 해결 후에 덮쳐오는 쾌감. 

  촬영장에 가 있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게 느껴졌던 방구석의 잉여인간이 암막 커튼을 걷어내고 조심스레 빛줄기에 손을 얹던 그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쿵쾅거리던 심장 소리가 작아지고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내 몸에 전율처럼 퍼질 때를 기억한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 쓸모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을 기다리며 가슴을 졸이던 순간들이 지나고 온전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한 줄에 세워놓은 채 스스로의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쟁취하는 삶,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일을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삶, 때로는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을 묵묵하게 수행하는 삶, 그 와중에 피어오르는 꿈에 대한 열망을 실천하는 일 같은 것들이 똘똘 뭉쳐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여전히 무엇 하나 대단한 능력이라곤 없지만, 할 수 없다고 뒷걸음질 치던 때와 다르게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성장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실패가 죽음처럼 느껴지던 때와 달리 도전하는 과정에 걸쳐진 하나의 계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을 때, 그 계단이 무섭다고 등 돌려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전 계단에 서서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두려움이 사라졌다. 

 결국엔 철저히 대비하고 공부하는 일, 성공이 결고 쉽지 않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품으며 고통을 껴안는 각오, 타인의 잣대보다 마음이 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자세가 나를 우뚝 세운다. 우뚝 솟은 마음으로 가슴을 펴고 하루를 시작한다. 잘 될 거라고, 곧 지나갈 거라고.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별 것 아닌 일이라 웃음만 나올 거라고. 

  그러니 오늘도 바쁘게 산다. 정신이 없어도 가끔씩 웃고 시간을 쪼개 할 일을 두루 마치며. 쌓여있는 숙제를 모두 해치우고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는 날을 그리며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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