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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pr 27. 2020

밤하늘만 바라보면 감성적이 되는 당신과 나에게

옥상에 서서 어둡고 꾀죄죄한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저 먼 곳에서 투미하게 빛나는 별을 하나 겨우 찾아내면 괜히 나 같은 기분이 들어 반갑다.


넓은 하늘에 작은 점 같은 것이 남색 천지에서 혼자 노란빛을 내며 자기 존재를 알리려는 것도, 안개가 끼면 희미해지고 구름이 가리면 보이지 않다가도 바람이 그것들을 비껴내면 그 자리에서 유유히 빛나고 있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다.


저렇게 떠 있는 것이 마치 호수 속에서 발을 구르는 백조처럼 남모를 고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기도 하고, 외로운 인생에 말동무해줄 외계인이라도 하나 저 별에 사는지 궁금하다.


작은 별이 구름에 가려 잠시 안 보일 때면 방향을 돌려 커다란 달을 바라본다. 별을 보다가 달을 보면 저렇게나 나와 가까웠나 싶다. 갑자기 쿵하고 우리 집 옥상에 떨어지면 사실 표면은 잘 익은 달걀노른자 같아서 친숙한 느낌이 들 것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달은 별처럼 짙게 빛나진 않는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물에 젖어 수채화처럼 은은히 퍼지고 파스텔 위를 휴지로 문지른 것처럼 하늘 언저리에 번져있다.


그래도 덩치가 커서 그런 탓인지 달을 바라보면 든든한 기분이 든다. 별처럼 쉽게 희미해지거나 가려지지도 않을 것만 같다. 하얀 구름이 앞을 가려도 자세히 보면 그 뒤에서 레이어의 농도를 높인 것처럼 노란빛이 서려 계속 거기 있다는 안정감을 줄 것만 같은 기분이다.


희미해지고 가려지는 것은 꼭 슬픈 일만은 아니다. 가림막 하나 없이 계속해서 빛나려는 일은 피곤한 법이기에 누군가 내 앞을 막아준다면 나는 그 사이에 잠시 휴식을 할 수도, 다른 준비를 할 수도, 혹은 구름을 뚫고 나가려고 안간힘을 써서 한 단계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중에 제일은 건너편 건물 위에 별 하나 더 떠 있는 것이 제일이다. 달처럼 친구 하나 없이 혼자 떠 있는 것보다야 이름은 달라도 비슷한 녀석 하나 바라보며 둘이 떠 있으면 ‘너’라고 부르는 대신 자동으로 ‘나’가 생긴다. 둘이 되면 너와 나라는 이름이 생기고, 너에게는 내가 너이고 나에게는 네가 너이다. 서로를 너라고 부르는 일은 너와 내가 같은 말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너와 내가 존재함으로써 우리라는 말이 생긴다. 너와 나, 우리.

-201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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