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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y 31. 2020

존재

타인에 의해 존재하지 말고 타인을 통해 나로 존재하기

눈을 뜨면 때를 가리지 않고 글을 끄적이는 것을 보니 마음 한편이 공허한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소통할 대상의 결핍으로 인해 나의 존재를 알릴 곳이 없으니 나 대신 문장들이 아침저녁으로 쓰였다 지워지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적어서라도 무언가를 남기는 이유는 어떤 인간이든 존재 증명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이 어떤 존재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가려 노력하다가 혼자 힘으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판단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말 한마디에 며칠간 쌓인 체증이 내려가기도 하고, 경사 날에도 기분이 상하곤 하니 소통에 의한 인생이란 참 아름답기도 하고 덧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짐승의 몸에도 눈과 귀, 입과 코, 피부와 털 같이 감각을 느끼는 것들이 붙어있으니 우리는 태생의 역사가 만물과 접촉하고 교류하도록 태어난 것이다.


게다가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 습득해버린 인간들은 소통을 더 구체화시킴으로써 상상했던 표현을 타인에게서 얻으려 하게 됐으니 스스로 외로워지기를 자처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만든 소통 방식에 얽매여 고작 몇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 하나에도 쉬이 흔들리며 위태로운 자존감을 부여잡고 타인을 원망하게 된 것이다.


명사들은 강단에 올라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타인의 말이나 평가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고 하는 조언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순이 함께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말은 상대방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학생의 질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입니까?라고 답변하는 명사는 과연 주변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자신 근처에 서식하는 존재들을 곁에 두고 있을까.


위로의 한 마디 정도로 받아들이면 그만이긴 하지만, 희망의 지푸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또 다른 희망 고문이 될 뿐이다.


“모두가 당신을 사랑할 순 없습니다. 본인의 현재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하세요.”


맞는 말이지만 문제는 현재 모습이 사랑받지 못할만한 상태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 먼저 돌아가야 한다. 타인들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일삼으면서 “나는 원래 이래. 이런 내가 싫으면 빨리 내 곁에서 떠나버려” 같은 마음을 갖고 상대방이 그대로를 사랑해주길 원한다면 그건 자만과 욕심에 불과하다.


이것은 성격이나 취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이 타인을 괴롭히거나 피해를 주는 사람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한 치도 변할 생각이 없으면서 속세에서는 사람들과 어우러지고 싶다면 소통과 관계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타인에 의해 존재하는 삶과 타인을 통해 나를 점검하는 삶은 다르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제대로 모른 채 타인들의 반응에 쉽게 흔들리고 반항 의식과 쓸데없는 고집을 앞세워 그것을 자아로 삼아 온 사람과, 타인들의 반응을 모아 담아 자신이 얻어갈 것이 무엇인지, 버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여 걸러낸 뒤 그것들을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아 자아를 굳건히 하려는 삶은 다른 것이다.


인정받으려 애쓰는 삶보다는 인정받았을 때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미안하지만 미안하기 싫은 것보다는 사과를 하고 다음 날 더 좋을 하루를 생각하는 것이, 사랑받으려고 베푸는 것보다는 베푸는 것이 좋아 사랑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 존재는 고독할 수 있지만 혼자로 존재할 순 없다. 그것은 세상에 태어난 순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다. 우리는 무한한 세상 안에서 유한한 생을 보내며 뜻 깊은 삶을 이룩하고자 한다. 그런 뜻을 이룬 날에 축하해줄 이 하나 없다면 과연 당신은 이룬만큼 행복할까.


존재에 관하여.

-201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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