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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y 30. 2020

독서

쇼핑몰이 망하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

24시간을 내내 홍보해도 모자란 쇼핑몰 오픈 이후로 어딘가 한 군데에 집중을 할 수가 없어 통 독서를 하지 못 하다, 어제저녁부터 나에게 주는 독서시간을 정해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읽다 만 세 권의 책을 허겁지겁 읽어치웠다.

오래도록 남아있던 뒷부분을 읽으며 앞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은 책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결국 세 권을 모두 처음부터 읽어야 해서 꾹 참고 남은 부분을 꾸역꾸역 읽어냈다.


장르는 다르지만 여러 권의 책을 번갈아가며 동시에 읽는 스타일이다 보니 완독 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주로 시집, 에세이, 소설, 시나리오, 전문서적 등으로 나눠 읽는 편이다.


그중 독서량이 부족해진 것 같아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땐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폭식하듯이 읽어댄다. 온건한 독서법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나를 구원해줄 어떤 구절이나 표현이 빨리 나의 허기를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어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페이지를 넘기고 만다.


처음 한 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 뒷 표지를 보게 되면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이 생긴다. 작가의 노력이나 좋은 글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급하게 책을 덮어버린 데에 다음에 다시 읽겠다는 반성의 마음을 잠시 갖고, 이제는 조금 천천히 다음 책을 음미하며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때가 되면 소설을 집어 든다.


소설은 직접적이지가 않다. 에세이는 작가가 화자가 되어 독자에게 다소 직접적으로 표현이 전달되는 반면, 소설은 그 주체와 대상이 제각각이라 나름대로 입장을 정해 읽어나갈 수가 있다. 이 편이 되었다가 저 편이 되어 반대로도 생각해보면서 여러 시점으로 접근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특히나 좋은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낸 것 같은 소설보다는 전체의 내용이 하나의 의미를 통찰하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는다.


시나리오 같은 경우는 특성상 단숨에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시나리오 같은 경우에는(SF 액션 블록버스터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실제 배우들이 모여 리딩을 해도 영화로 완성되었을 때의 러닝타임과 비슷하게 나오는데, 아무래도 영화로 만들어질 그림을 상상하면서 읽다 보면 단숨에 읽어야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시집이야말로 해치우듯이 읽어선 안 될 일이다. 한 줄, 한 글자의 의미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시의 경우에는, 별로 와 닿지 않는 시는 빠르게 넘기고, 내 마음을 울리거나 페이지를 넘기려는 손을 멈추게 하는 무언가가 등장하면 문제를 맞히기라도 하는 듯이 팔짱을 끼고 오랫동안 곰곰이 지켜보게 된다. 그런 시는 페이지를 접어놓고 나중에 우연히 꺼내서 읽게 되는데, ‘아 역시 내 스타일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왜 이 시를 좋다고 생각했지?’ 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서적 같은 경우는 사실 지식을 얻고 싶다고 느낄 때 몇 페이지씩 읽는 편이다. 어제 있었던 모임에서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거나 특정 분야에 문외한이라 대화에 끼지 못 하는 순간이 오면, 다음 날 어김없이 중고서점에 가서 관련된 책을 사 와서 읽는다. 그 자리에서는 “난 진짜 그런 거 몰라”하고 쿨 한 척을 해놓고도, 침대에 누우면 괜히 분해져서 다음 날 수박 겉핥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소중하게 쓰인 글들을 이런 식으로 난폭하게 읽는 것이 나에게도 독서습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해 자꾸 잡생각이 들 때면 이렇게 해서라도 위안을 삼곤 한다. 이렇게 읽어대다 마음에 쏙 드는 부분이나 구절이라도 하나 얻으면 마치 내 영혼이 따뜻해진 것 같아 괜스레 행복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있는 곳에 나도 가보고 싶고, 에세이의 작가가 겪은 일이 궁금해지고, 시집 속의 표현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시나리오를 읽으며 부러워하고, 전문서적에서 써먹을 만한 부분을 노트에 적으며 만족해한다.


이제 막 페이지를 펼친 책들이 또 세 권 있다. 언제쯤 이 책들의 끝을 볼 수 있을까.


-201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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