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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pr 23. 2020

쓸모없는 일

백수로 지내면서도 느끼는 것이 있다면

1.


긴 시간 백수로 지내다 보니 나도 몰랐던 특이한 능력을 발견하곤 하는데, 할 일 없는 아침, 옥상 소파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능력이 십분 발휘된다.


옆 골목 공사장 소리와 큰길 도로 위의 경적 소리, 그리고 내가 틀어놓은 활기찬 음악이 엇갈려 들리고, 높고 파란 하늘과 그 사이에 차갑게 서 있는 아파트들, 그리고 또 그 앞을 삐죽삐죽 가리고 있는 빨랫줄과 그 위에서 흔들리는 빨래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다소 어지러운 풍경 속에 매일같이 앉아있다 보니 듣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자체적으로 볼륨과 시야를 조절해가면서 나름의 조화를 만들 수 있어, 더 이상 시끄럽거나 지저분하다고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어디에 집중하느냐의 차이로 원하는 것들은 가까이 느끼고, 불필요한 것들은 멀리 둘 수 있지 않을까.



2.


주짓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나는 평소와 다른 사람처럼 조용해진다. 묵묵히 시키는 것들을 따라 하고, 가르쳐주는 이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모르는 사람의 질문엔 묻는 것에만 답하고, 대전 연습을 할 때는 예의를 갖추되 최선을 다 한다.


흰띠인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나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나는 이랬던 것이다.


새로운 익힘 앞에서는 일정의 시간과 꾸준한 노력으로 인해 생긴 실력과 관계가 당당함을 만들 수 있다고.



3.


청소년과 청년층을 위한 공연을 만들어볼까 해서 SNS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쓰고 있다.


쓰면서 평소에 문제라고 생각했던 SNS의 성질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본인이 하는 일에 동참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하는 일들이다.


동참해주지 않아도 응원해주는 이가 있으며, 응원해주지 않아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이가 있는 것이다.


행여 팔로우나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고 하여 그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실제의 관계가 멀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SNS의 폐해일 것이다.


SNS라는 것이 내 주변 대부분의 일상을 알면서도 정작 당장 커피 한 잔 하자는 전화 한 통 하기가 어려운 사이들 아닌가.


그런 것들을 모두 떠나, 스스로의 존재는 항상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며, 테이블 위에 놓인 손등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친구와 함께, 각자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갖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제일인 것이다.



4.


내가 경험한 것들 안에서만 판단하려고 하다 보니 오해를 많이 산다.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타인의 가십거리로 이야기가 이루어질 때, 적어도 그것과 나 사이에서 경험한 것 안에서만 입 밖으로 뱉어내려니 특정 집단에서 그 편이 되어주지 못해 자주 소외되거나 차가운 인간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때로는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른 척을 하고, 험담든 앞담화든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그 사람과 똑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한들 절대 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5.


쓸모 있는 일, 사랑받는 일, 행복해지는 연습만 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부쩍 늘어 쓸모없는 일, 사랑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불행해도 살아갈 수 있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실로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비루하고 징그러운가. 나태하고 지저분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하며 궁상을 떠는 것도 우리의 인생임에도 현대인들은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실패라는 잣대 앞에 너무 많이 위축되어 있다.


그저 이것도 인생, 저것도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훗날 나의 일기장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꽤 많은 시간을 살아왔다 할 수 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1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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