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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pr 22. 2020

잡인

장인에서 잡인이 되기까지

장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잡인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나오는 몇십 년째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장인들을 보며, 그 깊이가 대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세상의 다양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아마도 장인이 된다는 건 쉼 없이 같은 직장에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에 가까운 것일 텐데 나 같은 경우는 집중력이 부족해 딴짓을 많이 하고 한 곳에 진득하게 붙어있질 못 해 아무래도 장인 비슷한 사람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비슷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매일 다른 음악을 듣거나, 다른 책을 읽고, 하루는 하늘을 관찰하기도, 하루는 사무실 벽의 타일 구조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커다란 범주 안에서 아주 작은 변화를 줌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색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인데, 그렇지 못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삶에 지치는 이유는 작은 것에 마음을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높은 성공이나 커다란 행복에 너무 집중해 쉴 틈 없이 달려가다 보니,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그늘에서 쉬고 있는 친구들이나 옥요한 땅 위의 다양한 산물들을 옆에 두고도 지나치는 바람에 빈손으로 도착해버려, 원하는 것을 얻고도 공허함에 가득 차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결과로 보이고 증명해내야 하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나는 살아가는 과정을 소중히 하겠다고 매번 다짐한다.


큰 성과를 얻어냈으므로 과정이 생략되어도 좋다면 이 땅 위의 위인전은 모두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세상에나, 어느 국가에나, 어느 사회에나, 어느 사상에나, 어느 가정에나, 어느 인간에나, 심지어 어느 사물에게도 어두운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두운 부분이 단 하나 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 어두운 부분보다 밝은 부분이 더 많은 삶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어두운 부분이 많은 인간이어도 큰 문제는 없겠다. 어두움은 어두운 나름으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니까.
우리는 그런 밝고 어두운 여러 상황에 끊임없이 직면해 뭉쳐지고 일그러지며 하나의 개성 어린 개체가 된다. 시간을 멈추거나 세상에서 잠시 떠나 있을 수도 없다. 세상의 굴레 속에서 나름대로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은 인간의 버릴 수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저 유지하는 것으로도 그것은 희망이다. 서서 버티는 것은 고이는 것과는 달리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잡인처럼 살아가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깊이 있는 하나가 몇 씩 발전할 때에 내 주변에 서식하는 여럿이 하나씩 발전해 그것이 합쳐지는 것으로도 몇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기에.

잡상인이나 골동품점이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큰 도움과 필요가 되는 여느 게임처럼, 잡인으로 살아가는 순례자의 삶이 그 긴 순례로 인해 장인이 되어 있는 날을 그린다.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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