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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19. 2020

어차피

우리가 고민해봤자 소용없을지도 모르는 일들

이런 일을 해도 될까, 저런 일을 해도 될까 하며 꿈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에게, 어차피 진짜 하고 싶은 건 무조건 언젠가 하게 돼 있고, 어차피 그만 둘 일은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될 것이라고.


마음속에 응어리진 일 중 도저히 참지 못 해서 결국엔 하게 되는 일들을 우리는 하고 살 것이라고. 그것이 직업이 되진 못해도 취미로라도 그 행위를 하고 살 것이니까, 할지 말지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 맞아.라고 대답하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아 소주만 연거푸 들이켜는 친구 앞에 앉아 나도 고민에 빠지곤 했다.


정말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해왔던 일들이 무엇일까.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어서 때려치웠던 일들은 무엇일까.


딱히 떠오르지가 않아서 슬프기도 했다. 인생을 너무 막살았는지 기억에 크게 남아있지 않은 그 일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참고 또 견디며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버텨왔던 그 고통스럽던 날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기 없는 삶의 파편으로 남아있다.


그래, 그만두길 잘했지. 혹은 결국엔 그렇게 해서 좋았지.


시원섭섭한 말투로 뱉어내게 되는 한 마디로 나의 과거는 그대로 지나가게 둘 수 있었다. 내 심장을 쿡쿡 찌르던 그 말랑한 고민들은 굳은살이 박인 큰 개의 발바닥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어쨌든 결국엔, 그런 날들이 있었으니까 현재의 내가 있겠지. 오늘 이 순간은 결국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 없기도 한 그 수많은 시간이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물론 달라졌겠지 하면서도 지금 그 선택을 번복해봤자 그때의 내가 상상하던 인생이 이제야 올 지는 미지수라서 무의미한 상상이었다. 그저 현재의 내가 해나가는 선택에 집중하는 수밖에.


선택에 후회는 없다는 말은 사실은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후회는 하지만 후회한다 한들 소용이 없기 때문에 결국엔 후회보다 그 몫을 감당하고, 감당하면서 다가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극복해 더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후회를 떨치지 않으면 나 자신에 대한 책망이 나를 뒤덮기 때문에.


내기도 걸리지 않은 가위바위보 하나를 해도 이기려는 심리를 지닌 인간이 어찌 성과와 승리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을까. 우리는 패배라는 것 때문에 원래 예정에 없던 승부임에도 상실감을 느끼고, 좌절하고, 아파한다.


그러하니, 침대에 누워 수십 번, 수백 번 성공하는 그림을 그리고 희망하며 잠들었던 애정 어린 일에 실패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리고 다음 날에도 그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또 묵묵히 해나가야 하는 것에 우리는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그 무기력은 희망보다 약해서 무기력함 속에서도 그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성과가 생기지 않는 내 노력에 계속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만 같아 내 꿈에게 단단히 삐쳐 다른 일에 시선을 돌리기도 해 보지만, 결국엔 꿈꾸던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목 끝까지 올라차, 역류하는 위액을 꾸역꾸역 삼키듯 무너지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문다.


이토록 꿈에게 화가 나도 되는 걸까, 열 분이 차올라 딱 한 번만 속 시원히 쥐어패고 싶다는 생각에 한참을 혼자 씩씩대다가, 결국엔 그래도 잘하는 수밖에 없지. 하며 다시 대본을 펼칠 뿐이다. 그래, 잘하는 수밖에 없지.


내가 너 하나를 잘하려고 얼마나 수많은 일을 하고 시간을 쏟고 돈을 버는지 알면 넌 나한테 이렇게 못 해, 하고 서운해하면서도 또 대본을 본다.


그래도 잘하고 싶어서 난 화라서, 적어도 그만두고 싶어서 난 화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토닥이면서, 더 이상 대단해 보이거나 괜찮아 보이려고 하지 않고, 글 속에서라도 나약하고 솔직한 인간이 되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삶을 향해서 노력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려고, 괜한 투정을 부려본다.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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