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다고 해서 없던 일로 하긴 어렵습니다.
당신과 함께 왔던 바다는 조금 더 따뜻하고 햇빛이 높았습니다. 신발을 벗고 잠시 발을 담가도 괜찮은 계절이었습니다. 당신이 잡은 숙소는 땅끝에 있었습니다. 우리 앞엔 바다 말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좁은 집에서 자취를 오래 한 나는 커다란 욕조만 보면 꼭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당신은 바다가 쳐다보는 욕조 안에서 거품이 묻은 발가락으로 자꾸 내 볼을 건드렸습니다. 입에 들은 와인을 내 얼굴에 물총처럼 쏘아 욕조는 보라색이 되기도 했습니다. 밤이 되자 조금 추웠지만 당신은 내가 고기를 다 구울 때까지 참아줬습니다. 불 앞에 있던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때는 차가 없어 삼십 분이나 시내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당신은 나와 재미있게 놀려고 얼마나 최선을 다 한 건지 시내버스에서도 고속버스에서도 내내 잠이 들었습니다. 바다를 본 날도 여행을 간 날도 그때가 처음이 아닌데 우리가 갔던 그 날의 바다가 유독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글을 쓰는 남자는 미래에 만날 여자에게 항상 과거에 대해 추궁받습니다. 하지만 떠났다고 해서 없던 일로 하긴 어렵습니다. 그리움을 썰물에 얹어보지만 당신의 바다는 여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