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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18. 2020

내 이름이 뭔가요

직업이 없다고 내 이름도 없는 건 아니잖아요

연기가 아니면 안 돼, 연기만 하고 살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살던 이십 대의 나와 현재의 나는 많이도 변했다.


용돈과 월세, 학비를 받아가며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던(심지어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으면 하지 않던) 때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하고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별 수가 없는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과거에는 아르바이트도 끌리는 것만 했다면 이제는 돈만 된다면 뭐든지 해야 할 때도 있고, 그래야만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벌어 조금이라도 더 연기를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다.


해서 배우로서 연기활동을 하는 것 외에 주제넘게 레슨을 해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고, 형의 일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스튜디오에서 돈을 타 쓰기도 하고, 뮤지션들의 공연이나 결혼식 사회자를 맡기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자존심만 치켜세워 가난한 척도, 힘든 척도 하기 싫어 도움을 받고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 살던 옛날에 비해 그런 부끄러움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척하는 일이 많이 사라졌고,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빚지고만 살고 싶지는 않기에 어딘가에 가서는 베풀기도, 나서서 내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기에 도움을 받는 일이 더 잦을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손을 다치고 나서, 깁스한 역할이 아니고서는 일이 들어와도 몇 주 간은 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 그간 미뤄왔던 글을 써서 연말에 공연을 올릴 계획을 짜거나 단편영화를 만들어 연출할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됐는데, 글을 쓰면서도 필요한 세트나 장비를 떠올리면 썼던 글을 지우고 간소화된 배경으로 다시 적게 되는 나를 보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일단 돈을 얻거나 벌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말이 떠올랐다.


물론 높은 제작비가 무조건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걸림돌이 없어야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좋은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데(예전엔 빈 무대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우겼으나 그건 글 잘 쓰고 연출 잘하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란 것을 쓰고 나서 깨달았다), 직접 쓰다 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을 하는 것과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일이지만 같이 진행되어야만 예술을 ‘잘’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엔 적은 시간을 들이면서도 이윤을 낼 수 있고 동시에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일을 동료 몇몇과 도모하고 있다. 그것이 독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루에 아홉 시간씩 주 육일을 서빙하며 남는 시간에 연기를 하는 것보다는, 연기를 하면서 도움이 되게 사용될 수 있는 일로 만들고자 하는 데에 뜻을 두고 준비하고 있다.


자꾸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 나의 삼십 대에 너무 집중이 분산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이도 으레 많겠지만, 배우를 왜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일정기간에 집중해서 타자(다른 이)의 삶을 탐구하고 관조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곧 내 삶을 더 폭넓고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나의 인터뷰를 돌아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같은 길 위에 존재하고 있는 선택들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될지 모르는 내 앞 날의 여러 직업들이 각자 다양한 측면으로 발달돼, 내가 되고자 했던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는 데에 이바지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엔 적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냈다는 말이 담겨 있길 바란다.


내가 되려고 했던 건 직업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간 누군가이기에.




-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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