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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pr 30. 2020

매일매일

꾸준히 하면 뭐가 달라지긴 하나요?

나는 '꾸준히'와 '성실하게'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간 헬스장 거울 앞에 벌거벗고 선 나의 몸 앞에서 그 말의 의미가 무색해졌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예를 들며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매직넘버'를 제시한다.


책에는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틴이 '어느 분야에서건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 간 연습하면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될 수 있다.'라고 한 말이 적혀 있는데, 책이 발간되고 나서 논쟁의 여지가 많아 문제가 되기도 해, 이 이론에 관련한 논문을 발표했던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 박사가 '무조건 오랜 시간을 열심히'가 아니라 '올바른 방법으로 인간의 적응력과 성취감을 적극 활용해서'라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오해를 바로 잡고자 나서기도 했다.


노력을 통해 성공하는 방법이야 분야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격, 가치관, 사고방식 등에 따라 제각각 다를 테고, 재능 없는 사람의 피나는 노력으로는 타고난 천재의 작은 노력조차 앞지를 수 없다는 말도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나 또한 재능이라는 것을 높이 사며 그것은 개인에게 매우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단순히 우리 모두 1만 시간을 투자해 노력으로 재능을 이겨보자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꾸준히 운동을 했을 때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왜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 해야 하는 것, 하겠다고 한 것들에 대해 이렇게나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다.


이 와중에 잠시 나를 변호하고자 내 나름대로 유지하고 있는 '꾸준한' 노력을 얘기하자면, 나는 평소 특별한 스케줄이 있지 않다면 '연기와 관련된' 활동으로 하루에 8시간 정도를 보낸다.


생각하고 판단하기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영화나 연극을 보고, 대본을 구해 연습해본다거나, 혹은 미술 작품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거나, 다큐멘터리 사진 속에 찍힌 피사체의 눈빛과 표정을 살피거나,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특징을 관찰하는 등등 다양한 활동들이 그 범주에 속한다(물론 매우 집중하고 고찰하며 활동한 것들만을 포함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것만 해서는 좋은 배우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내가 가장 문제가 된다고 느낀 것은, 어느 순간 '편한 훈련'만 '원하는 만큼' 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위의 활동들도 나의 오감을 자극하고 마음을 두드리고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지만,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귀찮은 훈련들, 연기를 처음 공부했을 때부터 했던 신체훈련이나 움직임, 소리 훈련 등등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십 년 간 기본적으로 '꾸준히' 해왔던 훈련 등을 어느 날부터 놓아버린 것이다.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편하고 내가 잘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는 게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을 감추는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한다면 다행이겠지만, 반대로 나 스스로 점점 나 자신을 정해진 작은 틀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얘기하는 게 팔불출 같고 부끄럽지만 나에게 쓴소리 하는 걸 굳이 만천하에 알려 재무장을 해야 그나마 다시 '꾸준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렇게 자기 성찰의 글을 남기는 바이다.


성실하게 지켜왔던 '나만의' 노력.



그걸 놓아버리고는 다른 핑계를 대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깊은 반성을 하게 되는 귀갓길, 집으로 가던 버스에서 내려 이 생각 저 생각에 비를 맞으면서도 한참을 걸었다.

-201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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