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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엄마처럼
미국 가면 저절로 블라블라 된다고?(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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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스칸썬
Dec 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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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면 저절로 블라블라 된다고?
내 수학 실력은 불어처럼 부진하지 않다는 걸 눈치챈 짝은 매주 월요일 아침, 나의 책상으로 자기 시험지를 걸쳐놓고 시험을 보았다.
대놓고 베끼라는, 그리고 상부상조하자는 취지였다.
두 번쯤 그 아이 필기체를 흉내 내다 말았다.
무슈가 방조하는 커닝, 미덥지 않은 답안.
난 외국어를 못하는 거지 눈치가 없는 아이가 아니었고 지나치게 자의식이 높았다.
그게 문제였다.
내 또래만
옆에 있으면 킬킬댈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당장은 교실에서 망신을 당해도 뒤돌면 그렇게 군 선생님을 흉보거나 그림을 그려 엑스자를 크게 그으면 분이 풀리는 아이가 못되었다.
요즘의 아이들처럼 모든 것은 교실 사물함에 두어 빈 책가방을 들고 다니고 숙제도 없고 오픈북 테스트가 일상인 선진 아이들은 영민하게 발표도 잘하고 칠판 앞에서 문제도 줄줄 잘 풀고 딱히 눈에 띄는 문제아가 없이 돌아갔다.
자유로움과 알아서 관심사를 공부하기가 자리 잡힌 7학년 들.
놀려서 부끄럽거나 무시해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보다 그냥 내버려 두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속상했던 날들.
네이티브를
떠나서 망가진 정서는 어쩌고?
직장인 불어 회화 수업을 저녁 늦게 들었다.
열 살, 스무 살 많은 직장인들이 텍스트를 두세 번 청취한 후 회사 내, 데이트 상황, 여행지 생활 불어를 주로 옆사람과 짝을 이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수업방식이었다.
나에겐 승급 테스트 기회도 없었고 토킹 할 짝도 없었다. 도강하듯 기본 회화반의 교탁과 함께 쭉 그 반에 있을 뿐이었다. 학교에서와 다름없이.
지금도 누가 툭 치면 마드모아젤 싸 봐? 메르시, 무슈, 부 자베 말? 위, 제 말. 주 베 아벡 부,
학원 텍스트가 술술 나온다.
귀는 트인 것이다.
여전히 발음도 좋다.
프랑스에 갖다 놔도 기본은 하고 돌아올 자신이 있다.
그렇다고 어린애를 인정사정없이 물속에 빠뜨려 생존수영을 가르치라 권하지 않겠다.
모든 사자는 밀림의 왕자가 꿈이 아니니까.
겨울방학이 다가온다.
코로나로 묶여 몇 년 뜸했던 만큼 해외연수, 겨울 영어캠프, 온갖 글로벌한 영어 배우기 봇물이 터졌다.
밀림의 왕자가 될 성싶은 아이라면 조기유학이나 해외연수가 가능한 세상이다.
그저 보통의 아이나 나 같은 예외적인 아이라면 다를 수 있다.
엄마 욕심에 물가에 따라갔거나 절벽으로 쫓아갔을 뿐인데.
할 수 있다고, 혼자 하라고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원어민 같은 발음과 언어 습득으로 아이의 학업에 혹은
커리어를 열어주려는 마음은 알지만.
그게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소외로 도약 대신 좌절을 얻을 수도 있다.
프랑스와 프랑스어를 몹시 사랑하지만,
나의 7학년문화는 깡그리 delete 하고 싶은 아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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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스칸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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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학을 열망하는 에세이를 씁니다. 신간과 신제품 시음을 지나치지 못하면서 올드 정서가 좋은 마릴라 엄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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