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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Dec 22. 2022

님아, 사춘기를 부탁해.


가만 관찰하니 일주에 한두 번 오시던 그분이

하루 이틀에 한 번씩.

오셔서 머무는 시간도 차츰 길어진다.


오늘 그분의 꼬투리 잡기

펌프 웨딩크래셔 6단계 하드에서 S가 안 나온 이유.

신고 간 신발이 무거웠고, 중간에 엄마가 말을 시켜서이다.

누구 탓을 하거나 변명이 통했다 싶으면 한결 구김살이 펴지고 마음이 풀어져선 "내 방에 들어갈게."

아이를 점령해 가는 그분의 매뉴얼은 그런 식이다.






불과 어젯밤.

침대 네 모서리를 뱅글뱅글 돌 신이 난 아이는 말문이 터졌다.

그분이 저 멀리 가신 본연의 내 아이다.

 "엄마, 더 얘기하자. 더하자." 야단 났다. 

설렁탕을 오밤중 뚝딱하고도 얼굴에서 상냥 상냥이 가실 줄 모른다. 

엄마에겐 둘도 없이 금쪽같은 새끼다.

그러나 삽시간이다.

준비할 새도 없이 사과 한쪽을 입에 물다가,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자고 눈 뜨자마자 덜컥.

그분이 오신다.






일어난 직후에 거울 속 노화가 더욱 눈에 띈다.

보톡스도 필러도 완벽하지 않다.

나도 이런데 아이 성장통은 무슨 수로 막으랴.

공연한 생떼를 부리며 "좀 내버려 둬." 해놓곤 모른척하면 무관심하냔다.

이래도 저래도 그 문화권에 들어서면 매사에 반박이고 어차피 타박이다.

사춘기 관장하는 그분의 농간이니 내 아이에게 너무 노여워 말자.


출처:픽사베이


적금 하나를 가입했다.

둥지증후군 극복축하금. 거창하게 이름 붙였다.

독립하면 기다렸다는 듯 쌩까고 룰루랄라 놀러 갈 내 돈 셀프마련이랄까.

수시로 그분이 들락날락해서 신경이 거슬리지만.

정작 가시면

빈둥지를 보며 허전하지 않기를.

분노유발자가 내 집안에서 문 닫고 들어가는 편이.

아예 현관문 밖으로 나가버린 것보단 나은 것을 기억하길.

"엄마가 뭘 알아?" 하는 편이 "늦을 거니까 나 기다리지 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아직은 그분이 내 아이를 점령하고 휘둘러서 샘나지만 내 품 안에 있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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