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마치 엄마처럼
구르프 왜 마냐고 물으신다면.
by
투스칸썬
Jul 12. 2023
아래로
앞머리에 구르프를 말고 활보하는 여성들.
시간에 쫓겨 구르프를 만 채 나가려다 어이쿠 하고 말린 구르프를 팽개치던 세대라.
참 신기한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 집 차례가 왔다.
엄마는 기분이 묘하다.
구르프가 필요한 나이. 해야 하는 세대.
대단한 헤어 발명품 중 하나가 롤러, 일명 구르프이다.
웨이브가 필요한 만큼만 딱 잡아 머리카락 끝을 김밥 말듯 돌돌 말아 시간 보내면 끝.
적당한 컬이 완성된다.
꾸미고 가꾸는 것은 본인과 다르고 거리가 멀며 좋아하지 않는 형태라고 굳게 믿던 보이쉬한 아이는.
사춘기의 파도에 풍덩 빠지며 숨 가쁘게 달라져간다.
거울 보느라 옷 고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꾸미는데 관심 없는 줄!"
"내가 언제? 외모가 경쟁력 시대야, 엄마" 발뺌이다.
어차피 올 사춘기라면 늦기 전에 후딱 왔다 대충 하고 가라,
이렇게
한 수 접고 받아들이다가도
.
하룻밤새 강도가 두 배, 세배가 아닌 제곱에 거듭제곱을 거듭하니 정신이 없다.
이번 여행만큼은 노, 이민가방!
가볍게 가서 되는대로 현지인 버전으로 있다 오기, 로 약속해 놓곤 구르프를 비롯한 헤어손질도구를 넣다 뺐다 야단이다.
사춘기생
목표 중 하나는 엄마에 대해 반기 들기.
엄마가 뒷목 잡을 때 고점을 치고 엄마가 한 풀 꺾이면 아이는 목표달성을 싱겁게 마치고 하산한다.
꽃길만 걷게 하고픈 불가능한 도전은 사춘기 문화 앞에선 백전백패다.
도무지 정상적인 대화가 이뤄지지를 않는다.
오늘은 뭘 가지고 트집 잡힐까?
구르프이다.
좀 더 일찍 말았어야 간지가 살 텐데 이건 너무 두꺼워 없어 보이니 여행지에선 다른 두께의 구르프가 필요한데 언제 사줄 거냐.
아침 댓바람부터 강력한 주장이다.
후드점퍼로 상의를 온통 감싸고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구르프의 힘으로 앞머리 커튼을 드리워 우리 딸을 알아보기 몹시 힘든데 어쩌지?
엄마는 딴청 끝에 서둘러 아이 등을 떠민다.
내팽겨진 머리 브러시빗과 구르프 뒷정리를 하며 한발 늦게 등교하는 작은 녀석을 붙들고 이어간다.
"아무리 봐도 '사'자로 시작되는 반항(사춘기) 맞지? 저 수준은 당연한 '사'지? 우리 둘째 강아지도 저렇게 할 거?"
"그럼 엄마. 남들 하는 건 다 해보라 했잖아, 엄마
가
."
그렇네, 그렇네.
우리 딸이 구르프를 마는 이유가 딱 그거네.
하지 말란 건 하기 싫고 반대로만 하고 싶어서.
구르프는 집에서만 할 거지?
입 밖으로 이 소리 꺼내면
다음날 파리바게뜨 안에서 구르프 만 딸 만나는 거, 맞지?
keyword
머리
사춘기
엄마
37
댓글
7
댓글
7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투스칸썬
직업
에세이스트
문화와 문학을 열망하는 에세이를 씁니다. 신간과 신제품 시음을 지나치지 못하면서 올드 정서가 좋은 마릴라 엄마에요.
구독자
188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하세요.
님아, 사춘기를 부탁해.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