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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Mar 21. 2023

그럴수록 쇼핑은 멈출 수 없다.

"고객님 적금이 만기 되었습니다!"

남편은 내 휴대폰 바탕화면에 유독 많은 은행 앱들을 의아해한다.

소일거리 삼는 은행권 최고금리 혹은 새로 나온 상품 구경의 잔재미를 알지 못한다.


은행 만기안내 메시지


요즘은 3년 만기도 흔치 않다.

재형저축(재산형성저축의 줄임말, 네이밍은 리치한 어감보다는 수전노 느낌이라 별로다. 이 상품은 근로자 대상의 4% 이율로 당시 유행하다 현재 동일한 성격으로는 판매중단된 상태다.)  7년 만기상품이었고 중도해지 손해도 감수해야 했다.


7년 만기 후 1회 연장이 가능하여 총 10년 불입.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년간 불입되는 동안 사는데 큰 지장 없을 만큼 고액이 아니라는 점.

십 년간 손 안 대고 묻어두게 비교적 평온히 지내왔다는 점.

십 년 만기 적금은 만기액 자체보다 묵혀둔 십 년의 인내에 자평하고 축하할 사안이다.




백화점 신상품 출시나 마트 세일기간보다 은행 신규상품이 더 탐나고 궁금하다.

대단한 규모와 액수가 아니어서 도전정신도 딱히 필요 없고 원금보장이란 든든한 장치 덕에 인고의 시간도 참을 만하다.

은행에서 번호표 받고 버리는 시간 없이 손 안의 뱅킹으로 언제 은행 쇼핑이 가능하다는 점.

뱅크런에 일조할 큰손이 아니고  마감이나 조정기에 떨지 않아도 되고 이율 등락좌우되지 않을 액수가 쇼핑 범위이다.

주머닛돈이 쌈짓돈인 단위까지.


주식도 펀드도 코인도 부동산도 보험도.

공부도 실전도 털리기도 봤다.

이젠 쇼핑 주력상품으로 적금에 안착하기로.




반지하에서 안분지족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주변 시세에 맞춰 천만 원 올려달란 포스트잇이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

임대한 내 집인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펑펑 울던 시간.

얼마 안 남은 적금 만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적금담보 대출을 처음 알았다.

그렇게 뚫은 은행 창구에서 신상품 전단도 받고 추천도 받으며 은행 투어에 재미를 붙였다.


출처 픽사베이


매월 붓는 적금은 시간 차를 두고 만기일이 돌아오면 계 타는 즐거움이 반복된다.

필요한 데 쓰고 파킹통장에 모인 것을 예금으로 재예치.

콩알만 한 불입액이 불고 불어 그나마 돈 모양새가 되어가는 과정이란 얼마나 지루한가.

부자들은 한 방에 넣을 액수를 깨알같이 쪼개어 여윳돈을 만들고 이자라고 붙어봐야 쥐꼬리만 한 데 힘이 진다.

거기다 1.25% 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율도 존재했고 네 식구가 탄 배가 한 치 앞을 모르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데 별별 일이 없겠는가.


자, 그럴수록 엄마의 쇼핑은 계속되어야 한다.




굴러다니는 동전도 훑어진 푼돈도 은행 상품이란 하나를 만들어 넣으면 엄연한 저축단위가 된다.

액수도 천 원부터, 기간도 한 달 단기부터 7년 장기까지 다양하다.

모임통장이나 n분의 1로 쪼개는 더치페이에 맞춘 신세대 통장도 속속 나오니.

은행 상품은 계속 진화되고 우리의 쇼핑 니즈는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멀리 보면 연금저축.(가장 후순위가 되는 게 맹점)

큰아이가 면허증 따면 바로 구입하자 약조한 우리 모녀 전용 전기차(그때쯤이면 수소차가 될 수도) 마련 장기적금.

삼 년 뒤 둘째 아이용 해외여행 준비적금.

일 년 뒤 큰아이 대형학원 학비적금.

반년뒤 온 가족 여행적금.

그리고 브런치 데뷔 동기의 아이디어로 일 년짜리  브런치 셀프 인세 자유적금도 재미가 쏠쏠하다.


고픈 건 다 이릉을 갖다 붙이자.

이를테면 <로봇 청소기>라는 통장명으로 삼 년간 매월 삼만 원짜리로 찾아보자.

그전엔 씩씩대며 청소기를 질질 끌고 다니자.

온갖 곳을 쇼핑하여 마음에 드는 상품 픽.

이로써 워너비 목적자금의 첫발은 장전되었다.

변심 시 전액환불.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충동구매도 괜찮다.


건물주나 고급 승용차 마련이 목표가 아니라면.

쏟아붓다 돌려 막는 게 일이 된다면.

외상거래나 부채와 다를  없으니 쇼핑금지.

가족의 근간이 되는 굵직한 투자와 저축은 전문가와 상의해야지 쇼핑의 범주가 아니다.


소시민의 푼돈을 종잣돈으로 모으는 취미생활이자 건강한 문화소비.

내 쇼핑의 즐거움은 고작 그 시점이다.

만기  돈이 만져질 틈도 없이 다시 빠져나가도. 괜찮다.

해냈다는 것. 완주하는 즐거움이면 된다.


돌아올 줄 알면서 떠나는 여행처럼.

중도해지하기도, 모여봐야 14k 커플링 구입조차 빠듯한 물가상승에 김이 빠지더라도.


그럴수록 은행권 적금 쇼핑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린. 소시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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