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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Mar 16. 2023

이 하나에 추억과, 이 하나에 사랑과,

해마다 겨울방학 첫날 아이들 정기검진을 받았다.

작년 검진에서 생각지도 못한 소아교정 권유를 받았다.

세상 제일 사랑스러운 세모나고 네모나서 도란도란 앉아있는 치아를 가진 둘째 아이가 교정 권유를 받자 엄마로서의 무지에 미안해서 혼났다.




우리 부부가 충치 하나 없어 오복 중 적어도 하나는 있다고 자부했다.

세수는 건너뛰어도 양치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쓱쓱 하건만.

둘째 아이 문제는 칫솔이 삼사일을 못 넘기고 망가진다는 데 있었다.


영아기부터 아이들을 쭉 봐오신 치과 선생님은 칫솔 물고 있어 그런 거라며 별거 아니라셨다.

"칫솔질, 하기만 하면 합격 주세요. 요즘은 돌쟁이 걸음걸이 모양까지 이렇네 저렇네 하신다면서요

양치도 어릴 땐 거르지 않고 하기만 하 거예요. 잘하고 못하고. 없습니다. "




깜짝 놀랄 만큼 사랑스러운 치아를 자랑하던 아이가 실은 위아랫 이를 맞물리지 못하는 부정교합이라서 소아교정 할 지경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매일같이 양치 후 아래윗니를 맞붙여 치아상태를 확인할 때 왜 그 입모양을 못하는지 의아했다.

아랫니들이 보이지 않게 입을 벌리는 것을 아이의 무성의한 태도로 알았다.

특히 이를 흔드는 기간에는 아랫니 드러나게  앙 무는 모양을 대체 왜 못하냐 호통도 쳤다.

아이는 되지도 않는 걸 강요하는 엄마 요구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선생님 소견서로 교정 전문의를 찾고 착용 10개월.

엄마 욕심에 학교에도 교정기하고 보내지 말라고.

급식실에서 빼놓고 버려진 교정기 여럿 나온다셨다.

우려와 달리 분실도, 안 하겠단 투정 한 번도 없이 착실히 착용하더니 소아교정 조기졸업.


일 년간 고생한 교정치아 상태를 동네 치과 선생님도 흡족히 바라보시며 유치가 왼쪽 아래 몇 개 안 남았으니.

이 역시 졸업이 얼마 안 남았다 하셨다.


헌데 유치얼마 남지 않은 게.

후련함 보다 아쉬움인 이 기분은 뭐지?




미혼 때 초등시절로 돌아가면 뭘 하겠냐는 질문에

"다시 이 빼야 하잖아. 싫어. 안 돌아갈래." 단호히 답했던 기억이 난다.


막무가내로 흔들리는 이에 쫑쫑 실을 매어둔 채,  딴청 하게 해 놓고 뒤통수 때리던 어머니의 이 빼기 기술은 초등 기억 속 최악이다.

그 순식간이 공포스러워 흔들리는 이를 말 안 하고 있다가 지금도 아랫니에 고개 든 덧니를 달고 다.

큰아이는 모든 이를 치과에서 뺐다.

마지막 유치를 빼러 동네치과에 갔을 때 과잉진료 1이 없으신 선생님은 그러셨다.

"이는 흔들리다 저절로 빠질 때가 옵니다.  정기검진 때 보면 되고 흔들려서 빠질만하면 빠지니까 억지로 힘줘 흔드실 필요 없어요. 지켜보시다 집에서 빼셔도 되고. 치과 찾으셔도 되고. 아이 선택에 맡겨주세요."


출처 픽사베이


그 조언에 힘입어 둘째 이는 모두 집에서 내가 빼주고 있다.

빼준다는 표현맞지 않다.

흔들림 감지후 거의 꺼내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빠지고 있고 모두 고른 상태로 영구치가 올라왔다.

오랜만에 급작스레 흔들리는 이로 아무것도 못 먹겠다 울쌍이더니.

오늘 쑤욱 빠진 이.


치아보관함에 빈자리가 겨우 넉 자리 남았다.

이야 , 이야, 천천히 빠지렴.

흔들리는 이를 감지하면 양치까지 마친 아이는 내 품을 파고들어 하늘 올려다보는 자세를 취한다.

살살 이를 흔드는 시간.

손발톱 깎이는 시간.

뒤통수나 손발 주물러주는 시간.

이보다 더 고요하고 평온한, 세상이 멈춘 시간이 또 있을까.

세상천지가 들썩여도 나와 무관할 것만 같은.

이 흔들며 살살 눈 껌뻑이는 노곤한 우리만의 온유한 문화를 공유하는 시간.


Tooth Fairy(치아요정) 든 까치든.

이는 꼭 챙겨줄 테니 천천히 천천히 하자.

그리고

꽃들아, 마음대로 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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