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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Mar 27. 2023

배웅하자 화가 난 남자들.


중학생이 된 딸아이가 외출을 했다.

주말에 친구와 약속 잡아도 되냐길래 흔쾌히 승낙했다.

흐드러진 벚꽃길을 지나고 부서지는 햇살도 맞고 음료 마시며 신변잡기에 깔깔대다 오라고 보냈다.

아이처럼 사랑스러운 봄날이다.


며칠 여행 간 것도 아니고 오밤중 데이트도 아닌

새 학교에서 친해진 친구와  시간 놀러 간 것뿐인데 온 식구가 어제부터 긴장상태다.

6학년이 되어 친구들과 처음 놀이공원에 다.

노선부터 먹거리, 소지할 현금 액수, 가지고 다닐 물품에 복장, 놀이기구 선정까지.

가족회사 창립이라도 앞둔 양 시나리오를 짜듯 진지하길래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첫아이의 작은 독립에 대한 반응이 이런 건가 보다.


코로나로 바깥 활동을 덜아이들끼리 따로 만나는 기회가 많지 않 큰아이는.

어렵사리 놀이동산을 뚫고 나서는

간간히 친구들과 마라탕을 먹거나 다이소, 아트박스, 교보문고, 로드샵이나 코인 노래방 투어 후 인생 네 컷과 젤리를 기념품으로 가져오곤 했다.




중학생이 되어 긴장도 하고 힘도 든 3월이었다.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들이 쏟아지면서.

몸이 힘든 부모 역할보다 보듯 안 보듯 거리감 유지하며 지켜보는 부모 자리가 만만치 않았다.

내 품에 끼고 수유와 이유기 텀과 기저귀 떼기의 고군분투를 직접 하는 고단함보다

생활습관, 학습 습관 자리 잡게 기다려주기가 품이 더 드는 것과 비슷했다.


소아과 문턱 지난 기억도 없던 아이가 2주 동안 감기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실한 어린이가 되다가 이번 주말.

오전 가족운동을 마치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


남편은 화가 나있고 둘째 아이는 말이 없다.

큰애는 신이 났고 엄마는.

다시 돌아온 알쏭달쏭 분위기가 새삼스럽다.

 첫아이 외출 앞에서 우리 가족은 4인 4색인가.




외출 준비를 하며 딸아이는

크로스백에 넣을 품목들을 즐겁게 고심한다.

교복을 매우 사랑하는 아이라 오늘도 교복 후드를 걸치고 머리는 툭툭 넘기고 나이키를 꺼내 신는다.


현금을 종류별로 나눠 가져가면 편하다는 말.

(결국 친구도 현금 없어 엄마 말 듣기 잘했다고.)

깔맞춤 한 사복 차림을 친구는 원할 것 같다는 말.

(결국 외출 직전 블루블랙 코디 제안한 친구전화)

길에서 사탕이라도 하나씩 나눠먹으라는 말.

(결국 간식거리는 요긴했고 껍질만 돌아왔다.)


안중에도 없이 한마디로 퉁 받아친다.

"내가 알아서 할게."


언제 이리 컸나 엄마는 함박웃음이다.




어제부터 우리 집 남자들이 수상하다.

아빠는 화가 나있다.

내내 심통이다.

감추려 해도 안되나 보다.

버스 정류장 노선을 건성으로 듣는 것에도,

오락실 방향을 제대로 아는 것 같지 않다고,

친구가 정한 방향으로 무조건 맞춰주는 것도.

모두 아빠가 화날 일들이다.

안다.

화를 내는 모양새일 뿐, 속내는 섭섭함임을.

특별한 딸아이 짝사랑꾼 아빠만의 문화임을.




잦은 야근으로 늦을 때남편은 우리 회사 앞에서 아기띠를 메고 딸애와 기다려주곤 했다.

어느 아빠인들 딸에게 눈이 멀지 않겠냐만.

딸바보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남편은 아이가 열 살이 넘으면서 독립적으로 커가는 것이,

품 안에서 하루가 다르게 벗어나는 것이. 속상하다.

가르쳐 주기도 전에 알고 있거나 알고 있어서 들으려 안 하는 것이 서운하다.

그래서 화가 난 듯 딱딱하게 굴지만 잠시만 눈에서 벗어나도 더 주고 싶고 다 해주고 싶은 마음.

커가는 것이 장하고 대견한 만큼 아빠만이 세상 전부가 아닌 것에. 화가 나나보다.




길에서 엄마 손보다 누나 손부터 찾고

집에서도 누나 옆자리에서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하는 둘째도. 화나있는 건 비슷하다.

어제부터 계속 누나는 어디 가냐. 왜 가냐. 언제 오냐. 뻔히 알고 하나마나인 질문을 반복한다.

만남의 장소 코앞까지 기어코 누나 옆에 찰싹 붙어있더니.

친구를 보자마자 달려가는 누나 뒷모습을 야속하게 쏘아보다 터덜터덜 에게 오는데.

시무룩하니 말 시키지 말란 표정으로 꽉 차있다.

내 누나이고만 싶고 친구들과 하하 호호 누나가 섭섭한, 누나바라기 동생이다.


어스름한 집 앞도 완전체가 아니니 쓸쓸해 보이나.



화가 나있는, 실은 못 말릴 서운함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두 부자와 맥도널드에 갔다.

별생각 없이 콜라를 쭉 던 둘째가 빨대에서 급히 입을 떼며 찡그린다.

"콜라 아닌데? 커피인데?"

이런.

화풀이 대상이 필요하던 남편이 주문서와 콜라를 들고 씩씩대며 카운터로 간다.




집안은 조용하다.

뭘 먹재도 싫다 하고 뭘 하재도 싫다 하고.

요즘 많이 쓰는 '완전체'라는 말을 굳이 붙이긴 좀 그렇지만.

완전체 한 조각 빠진 집은 무용지물이 된 모양새다.

딸애의 외출 세 시간 동안 뭘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에 난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유학이나 분가라도 시킨 분위기다.

남편은 거실 구석에서 뉴스를 틀어놓고 먼산을 보는 눈치고.

둘째 일기숙제 제목은 '누나 배웅'이다.




중학교 담임선생님께 제출할 자기소개서에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강도를 일일이 표시하는 란이 있다

동생과는 최상. 아빠와는 중에 동그라미를 치고 엄마도 중. 에 당첨된 걸 보고 한참 섭섭했다.

상, 정도 등극 안될까? 미련을 못 버려 물으니

 "요즘 말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맞잖아?" 일초의 망설임이 없다.


아이는 이 순간도, 일초도 허비 없이 자라고 있다.




한쪽 볼에 깊은 보조개가 이며 아이가 돌아왔다.

쫑알대고 노래 부르고 투정하고 시비 는.

시끄럽고 정신없는 세 시간 전으로 돌아갔으나.

어쩐지 아주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우리 부부의 둥지 떠나보내기 훈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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