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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Apr 20. 2023

이별연습

범인은 엄마다.


첫아이를 쫓아다니다 보면 둘째 아이는 엄마의 단짝이자 영상매체의 주 고객이 되어있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하는 말과 함께 울락 말락 하는 표정을 보면.

자리를 뜨면서 번쩍이는 화면을 대체물로 쥐어주고 만다.





초등 내내 큰아이가 너튜브나 까똑 없이 잘 커줘서

조금씩 대체물에 젖어가는 둘째에게 안일했다.

세상의 많은 둘째 아이처럼 끼고 앉아 책을 읽히고 산보하며 누나를 기다리던 한세월동안.

하나만 알고 둘은 까맣게 모른 사이.

둘째 아이의 생활의 벗인 영상물이, 전자기기가,

어마어마한 괴물로 커가는 것을 놓쳤다.

엄마가 쏟은 시간만 보였지 사이를 메우기 위한 중독성 강한 대체물의 급부상을 방관했다.

열과 성을 다해 사랑한 애착인형이, 아이가 커서 더는 흥미를 보이지 않자 혼이 생겨 아이에게 들러붙었던 어릴 적 본 잔혹동화 못지않은 존재감.


백 퍼센트 엄마의 불찰이다.




등하굣길 잠시도 쉬지 않고

잘한 정보와 해외토픽, 최신이슈를 재잘대면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들은 건지, 너튜브 소식통인지 확인부터 하는 방식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 깨알상식은 못 당한다고 피식 웃기도 했다

뉴스 좋아하는 엄마가 뉴스 화면도 안 보는 노력에 모이 물어다 주는 제비 같은 역할을, 아이가 했다.

사랑은 풍덩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물들어간다는 <미술관 옆 동물원> 대사를 간과했다.

아이는 사이버 문화 속에서도 무럭무럭 커가고 있었다.




다이어트와 공부의 공통점.

내일부터 시작하려다 망한다.

사이버중독도 내일이면 늦는다.


가장 원하는 걸 써보라 했다.

뭐라도 좋다고. 

그리고 백일 후 달성하면 바로 하는 거라고.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듯해야 따라온다. 그런 간절함이어야 한다. 엄만 한다.

달력에 디데이 동그라미를 그렸다.

아이에게 사이버공간은.

양말을 벗고 손발을 싹싹 비벼 닦고 식기를 싱크대 안에 놓고 앉은자리 의자를 제자리에 두는.

그런 시답잖은 잔일 따위는 없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줄줄이 연산이나 지긋 지근한 영어단어는 온데간데없다.

유토피아다.

넋을 놓게 하는 속사포 너튜버들의 놀라운 이야기와 힘 하나 안 들이고 공격만 쏴대면 득점으로 즉각 연결되는 쾌감.

서서히 물들어 퐁당 빠져버린 유토피아와 헤어지려니 놀이동산이나 보드게임, 현금으로도 눈이 돌려질 리가. 더구나 엄마의 폭풍뽀뽀나 궁둥이 팡팡은 화를 낼 지경으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물며 운동, 악기, 공부. 어림도 없고 스트레스 지수가 천정부지 오를 뿐이다.


거기다 아이가 어렵게 결단을 해도 가족에게 큰 고비가 시작된다.

금단현상. 온갖 짜증 받아주기.

그럼에도 내 죄다.

이별은 단번에, 바로 지금 시작하는 것. 감수하자.

사랑해 죽고 못 사는 맺어줄 수 없는 연인을 떼어내는 막장맘의 심장이다.



영상매체와 전자기기와 담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통사고가 무섭다고 차를 안탈 수는 없다.

통제할 힘을 키울 방법을 일러주고 이별연습할 시간을 함께할 밖에.

상상보다도 어려울 것이다. 마음 단단히 먹자.


금연을 위해 껌이나 단 것을 대체물로 입에 달고 시름을 달래듯. 대체물을 고심했다.

방울토마토에 이름을 붙이킥복싱에서 샌드백을 두드리고 줄넘기로 땀에 젖었다.

우리 의지로 안되면 바로 상담을 받자고 했다.

겨우 열 살 넘은 아이다.


번쩍번쩍하고 시끌시끌한 인위적인 헛것이 눈에 밟힐 것이다.

다 필요 없고 그 세계를 달라는 뇌의 폭풍 같은 요구에 아이도 가족도 백기 들고 싶을 것이다.

태산같이 쌓인 할 일을 놔두고 가장 평온한 목소리로 세상에 단둘만 있듯 토닥이다가 노기가 치밀 것이다.

세상 제일 싫은 공부가 더 싫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래도 한다.

미치게 보고 싶어도 이별은 받아들여야 한다.



출처 픽사베이


오늘밤에도 엄마를 등지고 모로 눕겠지. 팔로 머리를 괴고 눈을 안 감으려 버티겠지.

입이 댓 발 나온 채 "흥, 안 할 거야." 투덜대겠지.

하품 참느라 기지개를 켜고 몸을 뒤척이면서도 쉽게 잠드는 건 어쩐지 자존심 상하겠지.

오늘을 마감해야 내일을 맞는 인과관계를 알 바 아니니 화났다는 파업을 이어 나고 싶겠지.


마냥 하루가 끝나는 게 아쉬운 아이.

단짝 전자기기까지 깊이 잠들어 이별을 받아들이기 참으로 괴로운 밤에.

다정한 내 아이 건강을 위해서라면 밤의 밤을 새워서라도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주물러줄 거야.

잘 자라 아가.


잠시인데 뭐 어떻겠어, 하고 엄마가 건넨 방심이

건강할 아이 성장 호르몬에 빨간불을 켜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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