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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Apr 04. 2023

무다리가 닮았다.

여고 때까지야 교복 입으니 별 생각이 없었다.

이후 돌아온 생일에 미니스커트를 선물 받았다.

허리도 길이도 무던했는데 문제는.

그때까지도 다리가 날렵하지 않다는 정도야 알았지만 말로만 듣던 무다리인 줄 몰랐다.

교복 스커트보다 한층 올라간 민트색 스커트의 걸을 때마다 사부작 거리고 골반을 스치는 느낌이 좋아서 교복처럼 매일 입었다.

불쑥 쇼윈도를 통해 저 자리 누구 다리? 저 다리 무다리.라는 깨달음을 띵, 얻었다.




아들이 무다리인 것이 남자라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신경 전혀 안 쓰는 아무 생각 없는 씩씩한 남아니까.

아침마다 쭉쭉이를 해주거나 자기 전에 엄마 다리 위에 몸을 실을 때마다.

미안해 이 무를 어쩔. 소리를 속으로 삭인다.

퉁퉁하게 살집 잡히는 발등까지 외할아버지, 엄마인 나, 그리고 아들 줄줄이 닮았다.

생전 남의 발등 볼 일 없다가 오동통 발등이 표준형이 아닌 것을 큰딸 키우며 알았다.

살집 없이 쫙 뻗고 늘씬한 발모양을 물려받지 못한 아들은. 당연히, 다행히도, 1도 신경 안 쓴다.


모든 부모야 유전적으로 이쁘고 나은 것만 쏙쏙 뽑아주고 싶다.

피하고 감추고 가리고픈 유전자들이 하나둘 눈에 뜨이면 엄마는 미안하다.

이기적 유전자 같으니.

천재성이나 탁월한 부모 피와는 무관한 것들 좀 타고났으면.

안 되겠니?




신발도 옷도 여자누나를 무섭게 따라잡는 남자동생.

그러게 엄마가 뭐랬수.

발차기하고 작다고 만만히 굴었다가 남자 성장세는 역전당하고 바로 복수 하이킥 돌려받는다고.

하물며 아빠가 아들 상체를 툭 치려는 바로 그 순간, 건장한 아들이 힘 빠져가는 아빠 팔목을 탁 낚아채며 걸쭉한 톤으로

"말로 하시죠." 하는 순간도 곧들이닥칠 듯.


출처 픽사베이


투명한 솜털난 아기 피부로 엄마 껌딱지던 아들이 열 살 넘으며 주장이 세지고 자기 문화가 생긴다.

무다리 세트를 쭉 뻗고 티브이를 나란히 보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내 입에서 둘째를 부를 땐 아직도 '우리 아가'다.

무든 뭐든 아가, 각선미 뽐낼 일은 가급적 줄이며 삼춘기 지나도 쭉쭉 잘 지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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