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스칸썬 Dec 06. 2022

헤어지자, 여보


개팅 첫날 말주변 없는 남편은 안경 쓰지 않으셔서 좋네요,라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께서 눈만큼은 좋은 상대를 만났으면 한다고 마음을 에둘러 말했지만 첫 만남이라 유심히 듣지 않았다.

이후 “우리 집은 다 안경을 써서 맨눈으로 본다는 게 상상이 안돼. 안경이 내 눈이고 눈은 그냥 피부 같아.”하는 소리도 아이가 있기 전에는 흘려버릴 말이었다.


한창 꾸밀 나이에 심한 안구 건조로 렌즈 착용에 애를 먹던 나는 아홉 살부터 안경잡이라고 놀림받았다.

그때만 해도 으레 얼굴 반은 차지하는 범생이 같이 답답한 큰 동그라미 안경테뿐이었다. 요즘처럼 패션 소품일 수 없는, 필요에 의한 피하고 싶은 용품, 안경.

민속촌으로 소풍 가서 사진마다 안경을 벗고 찍느라 결국 베 짜는 아낙네 모형 뒤에 안경을 놓고 오는 바람에 한동안 뿌옇고 흐린 세상을 기꺼이 참고 지냈다.

시력이 많이 안 좋아 안경알이 압축도 안된 유리 재질이었다. 두툼한 무게이다 보니 콧날엔 안경 자국이 항상 남고 콧등은 더 낮아졌다.


시력교정술로 라식수술이 나온 초창기, 검증이 많이 안 됐다는 염려에도 바로 시내에 있는 안과로 달려가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 잡아주세요.”하고 광명을 찾은 지 오래.

그땐 그렇게 헤어졌다, 안경과.







아이들이 “엄마, 칠판이 안 보여요.” 하는대도 버틸 때까지 버티다 안과에 방문하였다.

두 달 만에 급속히 시력이 떨어졌고 아이들에겐 흔한 일이라며 둘 다 시력교정이 필요하다고 담당의는 말했다.

그렇게 아이들도 안경의 힘을 빌기 시작했다.

땀나도 불편, 김이 서려도 불편, 뛰어놀아도 불편한 안경잡이가 된 아이들.

“얼마나 불편한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요? 엄만 안경도 안 쓰면서.”

노안으로 돋보기를 쓴 첫날.

“엄마도 어두운 데에서 나쁜 자세로 책 본 거예요? 이제 우리 집은 안경 가족이네.”


아직도 우리 가족은 엄마는 타고난 시력은 좋은데 눈이 나빠진 줄만 안다.

(쉿!)


출처 : 픽사베이

 

아이들이 사촌동생 네에서 닌텐도 게임에 홀딱 반했다.

눈 나빠진다고 영상매체 멀리하는 걸 익히 아는 동생이  닌텐도에서 나오는 스포츠 게임을 아이들에게 틀어주었다.

이후 3주 내내 모든 보상으로 오직 닌텐도만을 달라, 고 궐기하는 아이들.

닌텐도를 뛰어넘는 온몸에서 신이 나는 뭐가 없을까? 하던 차에 동네 사거리에서 볼링핀 간판을 보고 바로 그 주말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볼링장은 컵라면, 냉동만두, 아이스크림 등의 먹거리부터 코인 노래방, 보드게임, 농구 슈팅 기계까지 갖출 것은 다 갖춘 멀티 문화 공간이었다.

오전이라 할인가도 적용되고 공이 도랑으로 빠지든 떠나가라 함성을 치든 우리 맘이었다.

닌텐도 볼링 게임으로 대부분의 룰을 익힌 데다 승부욕 강한 둘째는 생수병을 늘어놓고 공으로 맞추는 모의연습도 실시한 후였다.


출처 : 픽사베이



닌텐도 내에서 스트라이크가 우습던 큰아이는 실전에선 동생보다 못한 스코어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가 처음부터 잘하겠어? 오늘 처음 온 거잖아.”하고 웃고 마는데 불쑥 큰애가 하는 말.

“엄만 잘하지? 엄마가 폼 보여줘. 따라 하면 잘할 것 같아.”

“맞아, 엄만 아는 게 많으니까 점수도 잘 나오겠다. 엄마, 보여줘! 보여줘! “


(얘들아, 미안. 실은 엄마 대학 때 서너 번 간 게 전부야. 미안하다, 사랑한다. 쉿!)

 





 

 

월드컵 국가별 경기마다 남편의 훈수는 국가대표 출신 저리 가라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필드에서 직접 땀 흘리고 뛰어본 자만이 알고 있는 현장감 있는 아빠표 해설이라나. 

"저거 저거, 저럴 때는, 아니죠. 뒤로 살짝 빼는 척하다 바로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욕심내는 거 아니죠."

"또, 또, 9번. 안되죠. 저럴 땐 좌우 눈치 보지 말고 무조건 돌파해야죠. 말씀드리는 순간 주춤하니까 골, 골! 아, 아쉽습니다."

축구 좀 조용히 볼 수 없냐고 아이들은 아빠를 쳐다보나 남편은 자기 해설에 무아지경.


"아빠, 손홍민 선수는 일주에 3억 번대요. 한국에선 아빠 같은 부장 되면 얼마 받아요?"

"아빠가 계속 공만 찼으면 모르지, 3억. 잠깐, 저 봐라, 봐라, 9번! 아빠가 측면 패스 주의하라 했는데."

말 돌리며 찔끔하는 남편이 웃기기도 딱하기도 하다.


"너네 아빠가 계속 공 찼으면 지금 어찌 됐을지 모른다."

학생 때 축구선수였다고 시어머니는 지금도 아이들 앞에서 남편을 추켜세우신다.


”아빠는 언제까지 축구한 거예요? 대학 가기 직전에 바꾼 거예요? “ 진로 고민이 많은 큰애가 묻는다.

”아빠? 초등학교 2학년까지. 학교 축구부 했지. 그때도 축구부 들어가기 힘들었어. “

나를 포함한 아이들,  뭐래? 하며 기가 찬 눈빛들.

 

출처 : 구글 이마트몰


그만하자, 여보. 새뻘간 거짓말.

뻥도 너무 튀기면 아이들도 귀신같이 알 나이라고.

아이들도 아빠 엄마가 천재도 부자도 아닌 거 알고 다 이해한다고.



축구는 전반전이 한창인데 치킨 무만 그대로 남고 치킨 세 마리는 동 난 지 오래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가면 저절로 블라블라 된다고?(전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