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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Apr 22. 2023

마지막 붕어빵을 공짜로 먹는 방법

지하철역 가판대 이웃 할아버님


옷차림들이 얇아졌다. 더러 소매를 걷거나 하늘하늘한 원피스도 등장했다. 영락없는 봄이다.

아이와 만남의 장소는 지하철역 입구 제일 안쪽가판대 앞.

볕이 적당히 내리는 오후.




어느 날부터 의식이 되었다.

가판대 주인이 대각선으로 바로 보이는 지하철 1번 출구 앞의 엄마를, 아이를, 우리 둘을 유심히 지켜보 것.


나란히 있는 세 군데 가판대중에서 가장 안쪽 가판대에 사람이 가장 복작였다.

계절이나 유행에 맞춰 도화지에 강냉이, 옥수수, 김이나 국수 등 이것저것 새로운 품목을 매직으로 써붙여 아래 선반에 매대처리를 해놓았다.

다른 가판대처럼 이것저것 팔지만 하단 매대에 그때그때 바뀌는 품목을 지나는 주부들이 발을 멈추고 들춰보게 부추겼다

판매와 재고관리에 부지런하문닫힌 것을 본 적이 없는 장사 참 잘하는 사장님 같았다

역세권에 정형외과와 약국 스트리트라서 목발과 깁스한 환자들을 비롯해서 지나는 사람이 많은 지점의, 품목만 안 겹치면 뭐든 내다 파는 가장 안쪽 가판대였.


돋보기 밑으로 눈을 바짝 대고 내다보는 모습이.

거북했다.

시간대와 아이 학교와 다음 노정을 빤히 들여다보는 낯선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 아이를, 우리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

한 술 더 떠 눈을 마주치려는 노력이 틈틈이 느껴졌다.

부분 부분 흰머리에 단정한 와인빛 조끼를 걸치고 토시에 목장갑을 끼고 제품을 다루는 정갈한 모습이.

아저씨와 할아버지 사이의 그분이 우릴 눈여겨본다는 걸 의식한 이후부터는 몽땅 불쾌해졌다.




나른해지는 볕 아래에서 넋 놓고 멍하니 있는데 "아이고, 안녕하세요 사모님." 누군가 코앞에서 말을 걸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에 가판대를 가리키신다.

웃을 수도 모른척할 수도 없는 사이. 중년여성들이 가판대 아랫매대를 들여다보자 가판대 주인이 목례를 하고 급히 자리를 뜨셨다.


후 그 앞을 지나기 더 멋쩍었다.

엄마가 먼저 아이 팔짱을 끼며 속닥였다.

"어쩌지? 저기 할아버지가 자꾸 우릴 보셔. 매번 보고 계셔".

아이는 "그래? 괜찮아." 하고 끝.




가판대 옆문이 닫혀있다.

닫혀서 측면 쪽에선 내가 안 보이니 안심.


"아이고 사모님, 오늘도 뵈네요."

화들짝.

"잠시만 저 좀 보고 가세요. 잠시면 돼요. 오세요."

서둘러 가판대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종이봉투를 꺼내신다.


"꼭 한번 먹이고 싶었어요."

"?"

"장사하고 있으면 아이가 인사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는데. 저렇게 표정 밝고 싹싹한 아이가 또 있을까. 볼 때마저희 어빵 하나 먹이고 싶었어요. 혹시 사모님이 안 좋아하실까 봐 어머니 허락받고 먹이려고 한 번도 못 줬어요.


그런데요. 붕어빵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내일부터는 옥수수 내놓을 거예요.

봄 되어 오늘까지만 팔아요. 아이 줘도 괜찮으세요? 저희 손주한테도 저리 이쁜 인사 못 받아요. 매일 제가 장사할 힘이 나요. 저 아이 지나갈 때마다.

붕어빵 마지막이라 꼭 한 번 먹이고 싶어 오늘은 기다렸어요. 괜찮으시겠어요?"




색안경 까맣게 끼고 우리 집에 숨겨둔 천만금 노리는 악당이라도 되는 양 경계하는 사이.

아이는 그 길을 매일 지나며 어느 날부터 눈이 마주친 동네 어르신에게 인사를 드린 모양이다.

가판대 주인 할아버지도 우리 아이를 살피시고 예뻐해 주신 것뿐이다.

동네 사람들끼리 모른 체 지나는 게 더 편해지고 못 본 척하는 게 에티켓 같은 세상에.

동네 할아버지와 아이의 조그만 우정을, 오고 가는 길목에서 쌓인 정다운 눈인사를.

엄마는 의심했다. 조심시켰다.

어린 왕자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설레는 여우 같은 붕어빵 할아버지의 마음.

붕어빵을 뒤집으며 할아버지는 다정한 아이에게 당신의 선물을 꾸준히 주고 싶으셨다.

의심병 엄마만 낯선 사람의 시선을 그릇된 선입견으로 피했다. 막았다.


출처 픽사베이


귀가하자마자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먹는 아이.

먹구름이 잔뜩 끼어 붕어빵에 안성맞춤인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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