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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Jul 10. 2023

부드러운 남자

미용실 디자이너

동생은 집에 오는 길에 크림이 듬뿍 들어간 빵을 사 오곤 했다.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눈여겨봤다가 불쑥 지나가는 소리로 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을 말없이 택배로 보냈다.

동생의 초등생 시절부터 보아온 친구 K는 지금도 한 번씩 묻는다.

부드러운 남자, 잘 있냐고.


출처 픽사베이


부드러운 남자를 만났다.

코로나로 집콕일 때 머리 산발을 못 참겠어서 현관에 붙은 전단지 보고 찾아간 곳.

이후 이사 하고도 온 가족이 '부드러운 남자' 손에 머리를 맡기고 있다.

 


미용실 디자이너는 머리만 디자인하는 아니다.

끊임없이 아이컨텍을 하며 고객의 요구나 질문에 공감해 주는 고갯짓, 상냥한 응대.

헤어 디자인뿐 아니라 날씨이야기, 휴가이야기, 연애나 정치, 세계뉴스까지. 고객의 관심사에 장단 맞춘 서비스가 미용실의 필수요건.

어색해도 부지런히 눈을 맞춰 손님의 의견이 옳다 편을 들어주고 한발 먼저 고객 니즈를 눈치채야 한다.

시빗거리가 되고 분쟁이 되므로 머리 길이 1mm 커트도 확인에 확인을 하고 가위질을 하는 직업.

모델 사진과 똑같은 펌 모양이 나온다고 장담은 못함을 어설픈 동의라도 받고 손을 대야 프로다.


전문가의 손길은 특별하다.

언짢은 손님의 고성에 달려온 부드러운 남자는 그런 상황에서도  톤이 올라가거나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다.

결국 비용을 못 내겠다고 한 건지 다음번에 서비스 1회를 추가하는 것으로 일단락난 건지 모르지만 낯빛이 차분해져 손님도 뒷손질을 받고 덜덜 떨던 보조직원도 안정을 찾아간다.

그게 부드러운 남자의 진가를 목도한 첫인상이었다.




손님들 비위를 맞춤형으로 받아주고 보조직원에게도 청유형을 쓰는 부드러운 남자.

"사진처럼 너도 배우나 가수 같은 비주얼 될 리 없는 거. 알지?"를 부드러움으로 이해시킨 후, 남의 털끝 하나 손 못 댈 것 같던 포스에서 무장해제된다.


미용실 하면 여성지와 커피 서비스!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보조 디자이너들이 부드러운 남자 가까이 가서 귀를 쫑긋하는지 이내 이해했다.

거의 입 모양만 달싹거릴 뿐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의사소통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미용실 안에서 그들의 소통문화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입만 조금 들썩일 뿐인데도 몇 호 염색약으로 몇 번에 앉아계신 손님에게 몇 분을 노출시켜야 하는지를 귀신같이 알아듣고 빠르게 움직이는 스텝들.




아이들 머리 손질을 끝마치고 계산을 하면서 엄마는 매번 같은 질문을 하고 만다.

"화내실 일은 그동안에도 없으셨, 선생님?"


"화낼 일이... 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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