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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Jun 29. 2023

체육선생님

체육 하나보고 학교 가는 장난꾸러기가 요즘 속상하다.

어디 붙었는지 모르겠는 체육중고등학교 진학이 꿈인 아이가 요즘 체육시간에 평균대 수업을 한다.


출처 동아전과 예체능 p65


아이도 안다.

체육시간도 수업 목표와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것.

한 주 내 내 기다리는 체육시간에 비틀 히어로가 된 이후 체육시간이 즐겁지 않다.

태권도 발차기도 한참 했고 최근 필라테스도 다녔다.

열과 성을 다한 체육시간의 뜀틀 수업에 이은 평균대에서 굳건하게 지탱 못한 자신의 균형감각실망한 모양이다.

타고난 운동감각이 아님에도 운동천재라고 온 가족이 속이다 보니 아이는 체육시간만큼은 진심이다.

게다가 단짝친구는 체조를 배워 유연성과 밸런스 그 자체.


양치질하면서도 받아쓰기 준비를 하면서도

비행기 날개처럼 양옆으로 팔을 쭈욱 벌리고 평균대 위에서 균형 잡고 나아가다 비틀기도 쿨하게 하고 뒤로 쌈빡한 턴 1회전, 제자리에서 폴짝 뛰기 기술까지.

자세 연구에 골몰한 모습이 엄마 눈에는 얼마나 진지해 보이는지 모른다.




평균대, 하면 나의 개인 연관검색어로 떠오르는,

체육선생님.



출처 픽사베이


지금도 성함 석자가 또렷한 체육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커트머리에 소녀 같은 인상, 그리고 자칭 밤톨 같은 체구와 통통 튀는 미소.

하지만 교실에서 자기소개 후 운동장에서 만난 선생님은 소녀도 밤톨도 아닌 교사봉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시며 교사봉 휘두를 구석을 찾느라 혈안으로 보이는 험한 선생님 중 하나셨다.




평균대 수업시간이었다.

체육선생님은 원더우먼처럼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호루라기를 입에서 완전히 떼지 않은 채 특유의 빽빽대는 신경질 섞인 혼잣말을 하셨다.

"이해가 안 가, 이해가. 몸으로 안 되는 것들이 무슨 머리 쓰는 공부를 한다고..."

킥킥거리며 급히 평균대를 지나다 몇 걸음 못 가서 양쪽으로 두두둑 떨어지는 우리, 거의 끝까지 가다 어어? 하며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우리, 안경을 추켜 쓰거나 머리칼 넘기는 사이 추락하는 우리.

우리의 체육시간은 점수 걱정이 덜한 유일하게 숨 쉬는 시간이었다.

물론 주요 과목에서 밀려난 교사들의 입장이야  이해하지만 그런 사안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몇 살 많지 않으니 밖에서는 막내이모라고 부르라던 원피스 차림의 상큼한 미소, 선한 입가의 그분이 아니었다.

평균대 다음 차례를 기다리다 선생님 혼잣말을 듣고 균형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우스울 만큼 두 팔을 경직되게 벌리고 훅 하고 숨을 들이마시고 출발했다.

평균대를 지나는 걸음걸음에는 한시바삐 선생님 곁을 벗어나고픈 마음뿐이었다.




체육시간만큼은 전교생 표정이 환하면 좋겠다.

체육 과목을 하대한 리 없다. 그보다 더 아이들을 행복하게 건강하게 만들 과목이 있으랴.

언제라도 준비된 체육인이고자 365일 트레이닝복으로 등교하는 아이.

새 학기 희망 도우미가 체육시간에 라인 벗어나거나 파울난 피구공 주워오는 역할인 아이.

체육시간 문화는 온 나라 어린이들의 가슴이 무조건 활짝 펴지게 채워지면 좋겠다.


오늘 같이 장맛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얼마든지 맘껏 뛸 체육관이 많은 학교면 좋겠다.

몸치더라도 평균대 석 걸음을 못 가도 뜀틀 맨뒤에 엉덩방아를 찍어웃어버릴 수 있는 시간.

어린이는 무조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아시는 선생님들만 가득하면 좋겠다.

그런 학교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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