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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Jul 11. 2023

냉장고 파먹긴 싫지만 청소보다는 나아.

여행준비 하면서 냉장고는 당연히 청소해야지, 야무진 꿈을 꾸었다.

날 잡아 전기코드 뽑고 양문형 활짝 개방한 채 알코올과 식초 스프레이 쫙쫙 분사하고 오만가지 싹 꺼내어 박박 닦고 환기하고.

그렇게 하기 싫은  엄마의 냉장고 청소다.




냉장고 청소는 미루고 싶다.

냉장고는 그저 먹기 전에 보관해 두는 온도유지가 되는 공간일 뿐.

오히려 팬트리에 새로 나온 쿠키, 초콜릿, 뜯지 않은 수분크림과 럭셔리 탈모샴푸 샘플이 있어 날 기쁘게 한다.

냉장고나 냉동실을 여는 건 "뭘 해 먹나?" 하는 과제를 안겨줄 뿐 요리가 괴로우니 냉장고도 데면데면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파먹어 텅 비우기로, 굳이 내용물 꺼내지 않고 비워서 치우는 방법으로 도전!




여름이라 데운 국이나 찌개도 가스레인지 위에 오래 둘 수 없다.

식은 밥도. 조금 후에 먹으려고 자연해동 하는 것도 모두 조심스러운 한여름 장마철이다.

환율 숫자만큼 냉장고 온도와 집안 습도에 예민해져 있다.

냄새를 빼기 위해 김치 종류부터 집중공략하였다.

드디어 시어 빠진 배추김치만 락앤락 두 통만큼 남아서 어제부턴 역시 남아도는 두툼한 어묵과 함께 볶음김치와 김치볶음밥을 한솥 해놨다.


파먹기로 작심하니 쟁여둔 냉동식품이 먼저 동났고 과일이 비워졌고 계절식품인 냉면과 안줏거리 순으로 끝이 났다.

유효기간이 충분한 일부 냉동식품과 바로 계속 먹을 아이들 갼식, 얼려둔 식자재들을 제외하니.

아침상부터 참 구색이 안 맞다.

파먹는 게 이리 골치 아프다니.

과일 채소야 그렇다 쳐도 조금씩 계속 채워대니 텅 비우는 건. 요원해 보인다.

결국 냉장고 청소 문화는 엄마로서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아침에 국물요리를 한여름에도 좋아들 해서 있는 재료를 긁어모아 떡국 내지 만둣국을 순위에 올린다.

찬이 김치면 대충 되니까.

온라인 새벽배송에 도전하려면 분명 충동구매로 이거 저거 살 테니 당분간 동네 슈퍼를 이용하자.

과도한 소스류. 잼, 아이들과 데코레이션 한다고 유통기한 길다고 쟁여둔 것들도.

이 기회에 솎아내니 냉장고 날개가 시원해졌다.

냉장고 다이어트.



지인찬스 여행은 믿는 구석이 있어 참으로 굼뜨다.

준비하게 되질 않는다.

여행을 위한 냉장고 파먹기인지.

초복더위 늘어짐인지.

곰곰이 생각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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