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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Sep 11. 2023

맨들맨들살 준비됐나요?

이달이 추석이다.

제모기를 정리할 시기다.

다리털 제모에 쓰는 제모기는 아무리 봐도 정말 잘 샀다.

몇 년 전 신상품으로 나온 제모기를 냉큼 장바구니에 넣으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칼날이 너무 날카롭거나 금방 무뎌지거나 각도가 마땅치 않거나 깎고 나서 잔털이 남는 둥

반복 사용할 제모기를 만나보지 못했었다.

이 제품은 리필용 칼날을 둘러싼 비누로 샤워 시 한방에 제모 해결이 되고 피부 자극이 거의 없으며 제모기 청소도 수월하다. 꽂이도 있어 고정해 둘 수 있고 무엇보다 샤워실의 습도와 물때도 끄떡없어 귀차니즘에게 그만이다.

소모 속도도 늦어 차후에 아이의 첫 제모기로 권할만하다.




틴에이저 아이의 소매를 통해 아이 성장의 사생활을 우연히 엿보았다.

엄마면 안다.

첫니나 첫걸음마, 첫 말 트임과 이유기, 기저귀 떼기나 어린이집 입소에 비해서

2차 성징 자녀의 '처음'을 바라보는 엄마 기분은 영유아의 '처음'을 볼 때와  다르다.

반가움과 대견함에서 한걸음 나아가 기특함에 염려와 천천히 자랐음 싶은 욕심이 뒤섞인다.




내년 초여름에는 제모기를 청소년 아이에게 소개해야겠다.

스스로 손톱 깎거나 귀소지게를 쓰는 것처럼 간단하고 안전하니 필요하면 쓰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야겠다.






귀차니즘은 부지런을 재촉한다.

귀찮음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귀찮은 게 누구보다 싫으니 미루지 않고 미리 해치운다.

귀차니즘에 빠지기 위해 귀찮을 예감이 드는 일을 최우선으로 끝낸다.

데오드란트도 낯설고 겨드랑이털 제모 시술도 겁나기만 하던 라테시절.

바로 피부과에 가서 5회 시술을 끊었다.

뷰티에 남다른 관심? 놉! , 바캉스 준비? 놉!

귀차니즘이라 귀찮음을 없애고 귀차니즘을 만끽하기 위해 발 빠르게 낸 용기였다.

소매가 뚫리는 계절이면 매일같이 겨드랑이와 다리에 제모기를 들이대는 귀찮음이 질색이었다.

전기 제모기나 자동형은 말끔하지 않았고 수동형은 피부 자극에 손이 가지지 않았다.

직장에서 점심시간마다 들러 5회 시술을 마치던 날, 피부에서 온갖 광이란 광은 몽땅 당겨 빛을 내던 실장님은 퇴근 후 아르바이트할 의향이 없냐고 했다.

알바 내용인 즉 다른 시술을 위해 방문한 고객에게 겨드랑이 해방에 관해 추천하라는.

온라인 광고글이 아니라 내방고객에게 직접 체험담을 전하는 세상가장 쉬운 알바. 단 취향에 맞아야 하는데 5회 지켜보니 잘할 것 같단다.

그간 무슨 소릴 내가 그리 보였을지 모르지만 귀차니즘의 알바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다음 해 여름 그곳은 중화요릿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귀차니즘은 여전하니 부지런도 여전히 떤다.

눈썹정리할 시기가 목전에  게 귀찮아서 아직 시기가 남아도 눈썹칼을 빼든다.

여행지에도 귀찮음을 토끼 간처럼 빼놓고 가지 못하니 눈썹칼부터 사놨다.



아침저녁 서늘하다고 제모기를 정리했는데 여전히

반바지만 입게 된다.

땀도 송골송골하게 소매를 적시는 낮기온 30도.



가을 대비를 하기에는 태양은 박력이 넘치는,

바깥은 여름.





* 커버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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