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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거든.

유성호 저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by 투스칸썬

허진호 감독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영감을 고 김광석 가수의 영정사진에서 받았다고 한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동생이 전화를 해선 부모님 여행지 어디가 좋겠냔다.

퇴직 앞두시고 바람 쐬고 싶어 하신다고.

다른 것도 아니고 여권사진을 최근 찍어두셨다나.




선배가 가족장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부모님 사후를 입밖에 내는 것도 경망한 것 같지만 동생에게 상조 가입을 넌지시 묻자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아버진 오래전부터 바람 따라 날아가게 내 버려 달라셨어."

갑자기 목이 콱 메어왔다.

생전 아끼시는 게 하나 없으신 아버지다우시다.




아이들 여권이 만기 되어 사진관을 찾았다.

그리고 전기가 켜지듯 번쩍 깨달았다.

여권?

아, 영정사진을 준비하신 거구나.

아버지가 나서셨을 리 없고 엄마가 찍자고 아버지를 대동하셨겠지.

그리고서 에둘러 말씀하신 거구나.

왠지 동생에게 바로 말하게 되지 않았다.


세상가장 해맑은 표정으로 사진 찍는 아이들.

불꽃놀이처럼 펑펑, 하는 촬영 소리가 전과 다르게 들렸다.




오래전 할머닌 네 칸짜리 서랍장 중에서 둘째 칸에 당신 사진과 수의를 보관해 두셨다.

누구도 어린 나에게 말해준 적 없어서 어른이 되어서야 할머니의 준비의식을 알게 되었다.

늘 나를 참배 같다 이뻐하신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난 배가 남산만 해 오늘내일하던 시기였다.

아버진 새손님 편히 맞으시려고 서둘러 떠나셨나 보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정성 들여 준비해 두신 서랍장 아래에서 두 번째 서랍칸을 아버지도 알고 계셨을까.




살아생전 한 번도 안 입어본 옷을 왜 죽은 사람에게 입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마뜩잖았다.

그래서 지금 고등학생인 큰아들에게 결혼할 때 집사람이 마련해 준 예복을 입혀달라고 이야기했다. 신발은 마지막에 애장 하던 신발을 신기고 와이셔츠는 단골 와이셔츠 양복점에서 구해서 입히라고 하니 아이는 피식거리면서 웃고 말았다.


p244 유성호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출처 픽사베이


설에도 못 뵀는데

아버지께 아이들 새로 찍은 사진을 좀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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