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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찬선 Jun 03. 2017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마음의 등불을 켜라 - 따뜻한 밥상

 따뜻한 밥상     


사람의 음은 정성을 다해 차려진  따뜻한 밥상 앞에서 활짝열려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부터 집안에 좋은 일이 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서 지인들을 초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밥상앞에서 마음이 열려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가끔 회식을 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는 분들은 대부분이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옆에서 챙겨줘도 잘 먹지 못하고 대충 떼우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영 불균형이 오기 때문에 슬픈 마음에서 헤어 나오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나를 위해서 따뜻한 밥상을 준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게 되면 마음에 등불이 환하게 켜지고 따뜻함과 여유로움까지 생깁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도시에 나와 자취를 했는데 외롭고 힘든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쌀이 떨어질 때도 있고 반찬이 떨어져 심심치 않게 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의 부탁도 있고 해서 같은 도시에 사는 외삼촌 집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외삼촌은 돌아가셨고 숙모 혼자서 아이들 셋을 키우면서 힘겹게 살고 있었습니다. 숙모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시고 이내 부엌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준비하시더니 정성이 가득 담긴 따뜻한 밥상을 차려 오셨습니다.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지 그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습니다. 지금은 그때 먹었던 반찬도 국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때 받은 감동은 내 영혼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은 음식을 함께 먹고 나눌 때 마음이 열립니다. 밤새 부부 싸움을 했다고 하더라도 아침에 아내가 정성을 다해 차려온 밥상은 섭섭했던 마음을 눈 녹듯이 녹게 하고 훈훈한 사랑으로 온 집안을 가득 채워줍니다.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베트의 만찬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유명한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작품으로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노르웨이의 외딴 시골에 루터교회의 금욕주의 신도들의 모여 사는 작은 동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자신들을 구별시키기 위해 항상 경건한 삶을 살았고, 주말에는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천국을 사모하며 예배드렸습니다. 나이 드신 목사님에게 마르린느와 필리파라는 두 딸이 있었습니다. 그중 동생인 필리파는 마을로 요양 온 프랑스의 오페라 가수인 파팽을 만나 노래를 배우게 되었는데 노래에 탁월한 재능을 발견하게 됩니다. 파팽은 필리파의 재능을 보고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를 만들어 주겠다고 함께 파리로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비롯해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은 필리파가 세속적인 쾌락에 물들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필리파는 파팽과 헤어지게 됩니다.

그 후 15년이 흐르는 사이 아버지는 죽었고, 교회 교우들의 관계는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교우들끼리 사업상의 문제로 서로 앙심을 품게 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어떤 성도는 지난 30년 동안 저질러 온 불륜의 관계가 드러났고, 또 한 동네에 살면서 10년 넘게 서로 말을 안 하고 틀어진 노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교인들 대부분은 동네를 떠났고, 남은 분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예배도 찬양도 생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인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마르틴느와 필리파를 찾아왔습니다. 여인의 이름이 바베트였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오페라 가수인 파팽의 메모를 가지고 왔는데, 그 메모엔 “바베트는 요리를 할 줄 압니다.”라고만 쓰여 있었습니다.      

프랑스 내전으로 인해 남편과 아이들을 잃고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지자 노르웨이의 외딴 마을로 파팽이 준 메모 한 장을 들고 피신 온 것입니다. 바베트는 필리파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교회 일을 도우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2년이 지나던 어느 날 바베트가 프랑스에서 온 편지를 받고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합니다. 그동안 프랑스에 있는 친구를 통해 복권을 샀는데 그것이 당첨되어 1만 프랑의 거금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르틴느와 필리파는 부자가 된 바베트가 곧 프랑스로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편 교회에서는 고인이 된 목사님의 추도 예배 준비로 어수선하고 바베트는 목사님 추도 예배의 저녁 식사를 직접 준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12년 만에 처음 있는 부탁이라 마르틴느와 필리파는 거절하지 못하고 허락해 줍니다.      

바베트가 주문한 음식재로 들이 몇 주에 걸쳐 배로 운송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바베트가 부엌으로 옮겨가는 음식 재료들을 보면서 경악했습니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에 대지 않던 샴페인을 시작으로 소머리, 꿩을 비롯한 갖가지 작은 새들, 그리고 커다란 거북이와 이상한 바다 생물들까지, 마을 사람들은 식재료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악마들의 잔치를 위한 것이지 어떻게 성스런 추도 예배의 만찬용 식재료가 될 수 있느냐! 혀는 찬송과 감사하는데 쓰라고 있는 것이지 외국산 음식이나 탐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심히 못마땅해했습니다.      

드디어 추도일이 되었습니다. 두 자매는 그날 만찬에 아버지와 깊은 친분이 있었던 로펜헬름 장군이 참석한다는 소식에 기뻐합니다. 식사가 시작되자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침묵하면서 음식을 맛보았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로펜헬름 장군뿐이었습니다.

“아몬 틸라도 와인이군요.”

그는 첫 잔을 마시며 감탄했습니다.

“여태껏 마셔 본 것 중 최고입니다.”

이어 수프 맛을 본 그는 대번에 그것이 거북이 수프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인들은 여전히 그 진귀한 요리들을 아무런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먹었습니다. 장군 외엔 어느 누구도 음식이나 술에 대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녁 만찬은 점점 냉랭했던 교인들의 마음을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분위기가 점점 훈훈해지면서 교인들은 목사님 생전에 좋았던 이야기도 하고, 작년에 유난히 추웠던 크리스마스 애기도 꺼냅니다. 그리고 사업상의 계약을 했을 때 사기를 쳤던 남자 성도는 상대에게 잘못을 빌었고, 원수같이 지내던 두 노파도 서로 화해했습니다. 한 할머니가 음식을 먹다가 트림을 하자 옆 자리 할아버지는 대뜸 “할렐루야”로 받아줍니다.      

마지막으로 바베트가 메추라기 새끼 요리를 내 오자 장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요리는 유럽에서 딱 한 군데, 한 때 여자 주방장의 명성이 높았던 파리에서 유명한 ‘카페 앙글레’라는 식당에서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열한 명 남짓한 교회 노인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 우물가에 둘러 모입니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손을 잡고 평소 함께 부르던 찬송을 부르면서 춤을 춥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두 자매는 바베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정말 훌륭한 식사였어요.”

그때 바베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한때 파리에 있는 ‘카페 앙글레’의 요리를 맡았었어요.”

옆에 섰던 마르틴느가 ‘이제 파리로 돌아가셔도 오늘 저녁은 잊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하자 바베트는 ‘아니요. 파리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행여 돌아가고 싶다 해도 돌아갈 여비가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깜짝 놀란 자매가 ‘복권에 당첨된 만 프랑이 있잖아요?’  

‘방금 전 만찬에 저의 만 프랑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써버렸어요. 놀라지 마세요. 카페 앙글레에서는 열두 명이 제대로 먹는데 그만큼 돈이 들어요.’라고 바베트가 대답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 복권에 당첨되어 받은 1만 프랑을 다 투자해서 최고의 만찬을 준비해 대접했던 바베트는 금욕주의 신앙으로 마음이 닫혀 있었던 마을 사람의 마음을 열게 만들었고 그들의 마음에 사랑을 빛을 심어주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마음과 낙하산은 펴져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김소운 님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가난한 신혼부부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남편이 직장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였다. 남편은 실직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을 했다.

“어떻게든지 변통을 해서 점심을 지어 놓을 테니, 그때까지만 참으오.”

출근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어서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보이지 않고, 방안에는 신문지로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신문지를 걷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쌀은 어떻게 구했지만, 찬까지는 마련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 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낯익은 남편의 글씨였다. 순간, 아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왕후가 된 것보다도 행복했다.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밥상은 우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위로를 줍니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모임에서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을 만나 힘들고 우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은 위로를 해주는데 하나도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손을 잡더니 ‘우리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하면서 좋은 식당에 데려가 정말 맛있는 음식을 사주었는데 그것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어두울 때 정성을 다해 차려준 음식은 큰 위로가 되고 마음의 등불을 환하게 밝혀 줍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지쳐 있는 이들에게  큰 힘을 준다. 슬픔에 싸여 있거나 마음이 우울하고 의욕을 잃어 쓰러져 있는 이들에게 또 시험에 실패해서 낙심한 자녀에게 엄마가 질팍한 뚝배기에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이고 뜨끈뜨끈한 하얀 쌀밥을 퍼서 차려주면 먹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주게 됩니다.      

요즘 아침 밥상이 사라진 집이 많다고 합니다. 수많은 경쟁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시간에 쫓기다 보니 그러겠지만 조금만 더 깊고 넓게 생각해 보면 가족들이 따뜻한 밥상 앞에 오손도손 둘러앉아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식사할 때 더 큰 성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욕을 잃고 쓰러져 있는 이들에게 질팍한 뚝배기에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이고 뜨끈뜨끈한  쌀밥지어 차려주면 먹는 이들이 큰 감동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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