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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찬선 Jun 22. 2017

느낌이 있는 삶

고요함을 찾아서

고요함을 찾아서     


점심을 먹고 느릿느릿 걸어서 뒷산에 갔다가 봄을 만났다. 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니 길가에는 파릇파릇 새싹들이 줄지어 피어오른다. 담장 밑에서는 이름 모를 꽃들이 수줍은 얼굴을 내밀며 하얗게 웃고 있고, 길게 뻗은 담장 위에는 물기 오른 개나리들이 금방이라도 노란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다.    

 

봄이 오는 길목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어린 시절 봄이 오면 한가하게 늘어서 있는 밭두렁 논두렁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파란 보리밭 길을 조용히 걷노라면 마음에 고요함이 밀려들었다. 난 고요함을 좋아한다.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싫어한다. 고요함 속에 머물면 평안과 기쁨이 샘솟는다.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더 분주하게 움직인다.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니 마음을 살피고 가꿀 시간이 없다. 마음을 살피지 않으니 내면이 약하고 힘이 없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세우는 힘은 마음의 힘이다. 마음 에너지가 풍성한 사람은 항상 따뜻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마음 에너지가 약해지면 범사에 짜증이 많아지고 화를 자주 내게 된다.     

침묵을 통해 내적인 힘을 키워야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면의 고요함이다. 마음이 고요할 때 더 깊이 볼 수 있고 멀리 볼 수 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무무라는 작가가 쓴 「오늘, 뺄셈」 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이런 실화가 소개되어 있다. 미 항공 우주국에서 1970년 4월 11일 세 번째 달 착륙을 목표로 우주선을 쏘아 올렸다. 그런데 32만 1,860km 까지 날아오른 아폴로 13호에 두 개의 산소통 중 하나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더 큰 문제는 나머지 산소통 하나도 폭발할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통신이 두절되고 산소부족을 겪게 된 이 우주선이 엿새 뒤에 극적으로 무사 생환해서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 위기 가운데서도 무사히 귀환을 하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동을 수동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무사 귀환한 우주인은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우주선 기체는 이미 작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단해야 했지요.”     

그들은 미 항공 우주국의 규정과 지시를 어기고 우주선의 모든 불을 꺼버렸다. 이것은 우주국 규정상 엄격하게 금지된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불이 꺼지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불을 끄는 순간 희미하게 보이던 지구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 바다에 비치는 형광 빛 해초 군락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주선 안이 깜깜할수록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땅인지 더욱 분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 덕에 그들은 수동 조작으로 그곳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고 모두가 살아 날 수 있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을 비추는 빛을 끄지 않았다면 정작 자신들이 봐야할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빛을 끄자,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는 빛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침묵에 이르는 훈련을 통해 고요함을 가꾸어야 한다. 내면의 고요함은 우리의 삶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봄은 약동하는 계절이다. 산과 들이 기지개를 커며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나무들도 숲속의 동물들도 더 분주해진다. 농부들의 걸음걸이도 더 빨라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분주해진다. 우리는 봄을 맞이하면서 마음의 힘을 키워야한다. 내면의 힘은 느낌이 있을 때 자란다. 봄을 느끼고 생명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때 키워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세우는 힘은 마음의 힘이다. 마음 에너지가 풍성한 사람은 항상 따뜻하고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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