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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찬선 May 24. 2017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의식과 비의식의 세계

의식과 비의식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인식하는 의식의 세계와 내면 깊이 숨어 있는 비 의식의 세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는 인간의 마음을 빙산에 비유했습니다. 빙산은 수면 위에 보이는 부분이 있고 수면 아래 깊이 잠겨 있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수면 위에 떠 있는 부분을 의식으로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는 부분을 비 의식으로 비유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우주만큼이나 넓고 바다처럼 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식하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래서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마음은 비 의식 속에 저장되어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 마음 나도 잘 몰라  


특별히 마음에 고통을 주는 감정들이나 굉장한 충격을 받았던 사건들이 비 의식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비슷한 사건이나 환경, 그리고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다든지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게 됩니다.      


교회 청년부에 J라 불리는 청년이 있습니다. 교회 수련회에 함께 갔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물가에서 발을 담그고 물속에 들어가 신나게 노는데 그 청년은 물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J의 이름을 부르면서 물에서 함께 놀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청년은 물이 무섭다면서 아주 얕은 물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의 부모를 통해 들었는데 이 청년이 아주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 기억이 비 의식 속에 두려움과 공포로 저장되어 있어 물을 볼 때 마음이 먼저 반응해 물 곁으로 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초등 4학년 때였습니다. 저수지에서 친구들과 멱을 감고 있는데 동네 형들이 더 깊은 곳으로 들어오라고 괜찮다고 유혹하는 바람에  죽을 뻔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간신히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저수지 곁을 지나가는 것조차도 무서웠습니다. 저수지 근처를 지기만도 현기증이 생기도 구역질이 났습니다.  비 의식 속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저장되어 있어서 저수지를 보는 순간 몸이 반응한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고통스러운 감정들은 즉시 해결되거나 처리되지 않고 우리의 비 의식 속에 차곡차곡 저장됩니다. 특히 억울함, 분노, 불안감, 두려움, 수치심, 고독, 열등감, 죄책감 같은 것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감정들이 비 의식 속에서 내재되어 있다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이런 어두운 기억들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그리고 정신분열증을 일으킵니다.      


우리의 삶은 알게 모르게 의식보다는 비 의식의 지배를 훨씬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비 의식의 세계를 살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 의식의 세계는 철저하게 비합리적입니다. 시간의 개념도 없고 현실성도 전혀 없습니다. 비 의식의 세계에는 울고 있는 아이, 욕구불만이 가득 찬 아이, 두려움에 떠는 아이, 짜증으로 가득 차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의식세계에 영향을 미처 감정을 요동치게 하고 변덕스럽게 합니다. 평온한 마음을 갖기 원한다면 마음을 깊이 살피고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장영희 전 서강대학교 교수님은 생후 1개월 만에 소아마비 1급 장애인으로 혼자서 서서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었지만 걸을 수가 없어서 집안에서만 지내게 되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엄마가 어린 영희를 길가와 연결된 집 대문 앞에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 앉혀 놓았다고 한다. 그러면 친구들이 와서 영희와 함께 놀기도 하고 영희가 함께 할 수 없는 놀이를 할 때는 가방을 지키게 한다든지 놀이의 심판을 맡아 달라고 하면서 꼭 함께 놀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문밖에 앉아서 친구들을 기다리며 놀고 있는데 엿장수 한 분이 지나가면서 어린 영희를 쳐다보더니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엿 두 개를 영희의 손에 쥐여 주면서 “괜찮아”라는 말을 남기고는 가위질을 하면서 골목길로 사라졌단다. 그때 교수님은 엿을 그냥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소아마비로 인해 걷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엿장수가 해줬던 “괜찮아”라는 말이 “길 없음”을 만나 힘들어할 때마다 큰 힘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장영희 교수가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원서를 넣고 면접시험을 치르러 갔는데, 면접관 한 분이 우리 학교는 장애인은 뽑지 않는데 왜 지원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그때 장애를 가진 것만으로도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그 면접관의 말을 듣자 설움이 복받쳐 와서 견디기 힘들었는데 어린 시절 엿장수가 엿을 손에 쥐어주면서 “괜찮아”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단다. 다시 용기를 내어 토플을 공부하고 미국 뉴욕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접수했는데, 4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고 박사학위를 받아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박찬선  「살아가는 기쁨」 행복에너지 21쪽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항상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다면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깊은 고요함 마음의 소리를 듣게합니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때 비 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감정을 읽을 수 있고 그 감정을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충남 서산에서 부성 염전이라는 소금밭을 가꾸는 강경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두 손이 없는 1급 장애인입니다. 이 분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산 벌말 해변에서 놀다가 그곳에서 깡통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에 달린 나비처럼 달린 철사를 떼서 가지고 놀려고 돌로 깡통을 내리쳤습니다. 그 순간 앞이 번쩍하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6.25 때 설치해 두었던 대인 지뢰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강경환 씨는 두 손을 잃게 되었습니다. 폭발음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그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손목 아래 두 손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노래를 잘해서 가수를 꿈꾸었던 소년의 인생이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양 손목 아래가 없어진 강경환은 중학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3년 동안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밥 먹여 주고 대소변 받아주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어머니께서 친정에 가셨는데 도무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굶어 죽지 않으려고 혼자서 개처럼 밥을 먹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살기 위해 석 달 동안 숟가락질 연습을 했습니다. 그 뒤로는 혼자서 밥을 떠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혼자 밥을 먹을 수는 있게 되었지만 양손이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린 그에게 너무 힘든 삶의 무게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이 학교 가는 그 시간에 근처 술집에 가서 하루 종일 술만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나이 21세가 되던 1980년 2월에 그의 삶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술에 찌든 채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책상 위에 “그루터기”라는 신앙 잡지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뒤적거리다가 두 팔과 다리 하나가 없는 정근 자라는 분이 어느 교회에 와서 간증 집회를 한다는 광고를 읽게 되었습니다.   두 팔과 다리 하나가 없으면 자기보다 더한 처지일 텐데 어떤 사람이기에 하는 생각으로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정근자를 씨를 보고 “야 저런 사람도 저렇게 잘 사는데 나 같은 사람이 왜 못 살겠는가!”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비록 두 손은 없어도 두 팔도 있고 두 다리는 멀쩡하지 않은가?”     


그는 집회가 끝나고 정근 자라는 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잘 살 수 있나요?”      


얼마 후에 답장이 왔습니다.      

“당신도 나처럼 잘 살 수 있습니다.”     


그 후부터 강경환 씨는 그 길로 술을 끊고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손이 없지만 어렵게 삽질하는 것을 익혔습니다. 또 오른쪽 손목에 낫을 테이프로 감고 낫질을 하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87년도에는 교회에서 만난 정순희 씨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아버지 친구의 주선으로 염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염전에서 쓰는 큰 삽은 농사일을 할 때 사용하는 삽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지만 그는 연습에 연습을 통해 그 삽을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손 몽둥이 삽질’이 그것입니다. 손가락이 없이 몽당 한 왼팔로 중심을 잡고 손 없는 오른팔을 삽의 세모진 곳에 넣어서 소금을 퍼 담는 식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보다 일의 속도가 많이 느렸습니다. 남들이 다섯 번 삽을 뜨면 겨우 한번 정도 뜰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는 더 일을 했습니다.      


매일 밤 9시까지 염전에 물을 대고 새벽까지 소금을 퍼 날랐습니다. 잠은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인내라고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염전에서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해냈습니다. 물을 대고 소금을 긁어모으고 삽으로 소금을 퍼내서 수레에 담아 소금창고로 이동하는 일.......     


그의 소금 창고에는 작은 숙소가 있는데 거기에는 손때 묻은 성경책이 펼쳐져 있습니다. 펼쳐진 곳에 몽둥이 손으로 비뚤비뚤 그은 빨간색 밑줄이 쳐진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손을 게으르게 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 한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서 6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분은 소금 한 가마니를 팔 때마다 천 원씩 따로 떼서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매년마다 소록도에 김장용 소금을 30포대 보냅니다. 연말이 되면 서산 일대에 독거노인들이 사는 수십 채의 집에 30킬로그램 소금 1포대씩을 보내 줍니다. 벌써 15년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분의 선행은 몇 년 동안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매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네 분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자라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강경환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겁니다. 소금 한 포대 팔아서 1000원 떼면, 5000포 대면 500만 원  이잖아요, 하지만 세상 이치라는 게 하나를 주면 그게 두 개가 돼서 돌아오고, 다시 두 개를 나누면 그게 네 개가 되어서 또 나눠져요, 연결에 연결, 그게 사는 원리지요.”


강경환씨는 두 손이 없이 소금을 만들어 소금으로 세상에 사랑을 베풀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내면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술꾼으로 인생을 마칠 뻔했던 사람이지만 “야 저런 사람도 저렇게 잘 사는데 나 같은 사람이 왜 못 살겠는가!”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을 때 삶에 용기를 얻고 자신의 삶을 가꿀 뿐만 아니라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까지 돌아보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신비롭습니다. 마음을 살피고 가꾸어가면 삶이 풍성해지고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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