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오사 Jan 16. 2020

풋살하는 여자  #1

풋살 10분에 황천길 구경하다



나는 일년 반동안  '7시 출근'을 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하루 종일 버티는데 에너지를 소진했다. 남들보다 이른 퇴근 후에는 회사 근처 코워킹스페이스에서 공부를 했다. 언론고시 공부를. 그리고 주말이 다가오는 금요일이면 다짐을 했다. '격렬하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그러나 주말마저도 스터디, 약속으로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일 년 반을 그렇게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작 결과도 좋지 않아서 몸도 마음도 상하고 말았는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일찍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다. 


그리고 지난해 말. 퇴사와 함께 풋살을 시작했다. 아는 오빠와 EPL의 현재와 레알 마드리드의 미래 따위를 걱정하는데 종종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오빠는 어느 날 내게 ‘풋살 한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내가 은연중에 해축러의 동지애 같은 걸 느꼈는지, 아니면 그를 진정한 축구 스승으로 여겼는지 모르겠다. 조기 축구회와 풋살 동호회는 물론 철마다 운동복을 구입하는 그를 실망시키기 싫었다. 내가 좋아할 거라 확신하는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알아보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보란듯이 검색을 했었다


당시에는 풋살 경기장에 가본 적도 없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사진 몇 장을 보니 왠지 축구보다 멋있어 보였다. 별 고민 없이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서 운동하는 팀으로 골랐다. 

'참석가능할까요?' 하는 첫 카톡을 보낸 순간, 학창 시절 뛰어놀던 운동장이 눈앞에 스쳤다왕년에 공 좀 차지 않았나. 너무 옛날이긴 하지만. 아무튼 스터디 아니면 집, 카페가 일상인 백조에게 활력을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시 취직을 하게 되면 곧 그만두게 될 거라 잠시 고민도 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나는 여전히 매주 동호회에 참석하고 있다. (울음) 


누구나 '팀 스포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일단 내가 기대하던 풋살 동호회는 아주 구체적이었다. 아침 일찍 모여 파이팅 넘치게 달린 후에 샤워를 마치고 우르르 돼지국밥이나 감자탕을 먹는 일요일. 그 감자탕 혹은 국밥이 얼마나 달까, 거기에 간혹 낮술이라도 하게 되면 분위기에 휩쓸려 과음하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는 술반땀반 바이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주객전도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나름의 다짐도 했다. 일단 1군 선수가 돼야 했다. 연락한 팀에서는 다섯 경기를 2달 안에 나오면 정회원으로 승급되는 조건이 있었다. 


첫날부터 삐걱댔다. 비가 와서 실내구장으로 장소가 변경됐는데, 시간을 잘못 보고 간 거다. 긴장한 탓에 잠을 설쳐 아침도 거르고 두 시간을 대기하려니 배꼽시계가 요동쳤다. 홀리듯 편의점에 들어가 김밥을 한 줄 사 먹었는데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몸풀기 시작 후 15분. 

의욕과다로 멋모르고 뛰어다닌 것 + 운동 두 시간 전에 섭취한 김밥 + 커피 + 운동 중 마신 물이 합쳐져모든 장기들이 태풍전야처럼 소용돌이 쳤다. 무언가 속에서 역류 끊임없이 역류했고, 한 시간이 넘어가자 헛구역질이 났다. 앞이 하얗게 보이는 순간이 몇 번에, 입에서는 피없이 쇠맛이 났다. 


풋살 10분에 황천길 구경하는구나.  아이고 어머니. 


내 생애 첫 풋살 경기가 끝나고 정확히 3일 동안 나는 걸을 수도, 계단을 오를 수도 없었다. 

(2편에 계속) 



#풋살 #여자 #여자풋살 #축구하는여자 #풋살동호회 #월요병 #글쓰기 #1일1글쓰기 #글 #책 



사진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au/photo/women-football-training-indoors-gm1124986970-29555487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