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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Nov 13. 2021

오래된 책과 헌책에 대한 단상

출판문화와 독서문화 사이의 엇갈린 역할

1. 내가 오래된 책을 만나는 법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차라리 욕심이 눈을 가려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라면 좋겠다.

게으름이 낳은 어리석음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 자체에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1995년에 출간된 윤대녕의 <옛날영화를 보러 갔다>를 다시 읽고 싶었을 때, 참 막막했다.이 오래된 소설이 도서관 서가엔들 남아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2008년에 복간되었고 심지어 전자책도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대출해서 다시 읽었다. 어떻게든 읽었으니 그만이었다. 오래된 책을 만나는 법에 대한 고민은 거기까지였다.

2014년에 출간된 <책의 탄생>을 도서관에서 빌려본 뒤, 마찬가지로 이 옛날 책을 어디서 구해야 하나 막막했다. 구입을 하고 싶었기에 전전긍긍하다가, 알라딘 중고 서점을 통해 찾아냈다. 알라딘 중고 서점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첨단의 아재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다. 사고 나서야 알았다, 2021년에 3쇄가 증쇄됐다는 걸. 첨단은커녕 낫 놓고 기역자도 못알아본 꼰대였을 뿐이었다. 

교보문고에서 검색만 해봤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2016년에 출간된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으냐고 묻는다면?>과 2017년에 출간된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는 동네책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세 번째와 네 번째 서점에서는 열람용 비매품으로 비치돼 있는 걸 보게 됐다. 

점점 속이 타들어 갔다. 안 되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우선 교보문고에서 검색을 해봤다. 없다. 절판이다. 중고를 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찾아보자! 있다. 한 권은 영등포에, 한 권은 합정에 있었다. 뿌듯한 마음에 책을 사러 갔다. 

택배비 몇 푼이나 한다고 그걸 직접 사러 가냐고 타박하던 회사 대표가 이내 수긍했다. “하긴 넌 서점 직접 가는 걸 좋아하지...” 

그 날 저녁에 들은 강의에서 알게 됐다, 이 시리즈들이 알라딘에서 여전히 판매중이란 것을. 이번에도 낫 놓고 기역자도 못 알아 본 꼰대가 됐다. 

심지어 사흘 뒤에 찾아간 동네책방에서... 팔고 있었다. 한 달 전에 근처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선 게 못내 아쉬워졌다. 의미없는 후회다.

“책이라면 일단 교보문고”라고 생각하는 꼰대, “책은 오프라인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꼰대는 풀이 죽고 말았다. 금요일 저녁에는 이런 저런 것들을 블로그에 포스팅하자 싶었던 아재는 그냥 술이나 마시고 일찍 잤다고 한다.

올해 유난히 미술관을 자주 갔다. 아무래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소수만 입장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쯤에선 한국현대미술사에 대한 간단한 공부가 필요해졌다.

동네 도서관에서 오광수의 <한국현대미술사: 1900년대 도입과 정착에서 온르의 단면과 상황까지>를 대출했다. 1979년에 초판이 발간되고, 1995년에 개정판,  2000년에 개정2판, 2010년에 증보판, 2021년에 증보2판이 나온 책이다. 저자 오광수 선생이 세월이 지나면서 새롭게 추가될 수밖에 없는 시계열적인 연구서의 내용을 충실히도 보충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2021년에도 따끈따끈한 책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을 테다. 

이렇게 개정판이 거듭되는 책들도 꽤 된다. 이렇게 수명을 갱신해 나아가는 책들을 보면 내 것이 아님에도 흐뭇해지기도 한다.



2. 헌책에 대해 다시 고민한다.


어제 저녁, 고대하던 “니은서점의 하이엔드 북토크”를 인스타 라이브로 시청했다. 

공교롭게도 헌책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헌책방 주인을 모셔놨으니, 헌책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테다. 몹시나 호의적인 태도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헌책은 출판산업의 기본구조에서 비켜나와 있다. 

저자-출판사-유통사-소매서점-독자에 이르는 생태계와는 확연히 다른 생태계를 형성한다. 

헌책이 백 번, 천 번 팔린다고 해서 저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1도 없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매도인-헌책방-매수인의 경제적 이해 관계 내에서만 작동하게 된다.

물론 독서 문화 진작에서는 지대한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적지 않은 문화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책을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거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 책이나 읽으라는 것도 아니다. 


양서(진정성만큼이나 모호하고 상대적인 개념이긴 하다)가 널리 읽혀서, 시민 사회의 교양(마찬가지로 모호한 개념이다)을 고양하자는 근대적 계몽이론에서 멀지 않은 기본 개념에서 출발한 독서 문화 때문이다.

양서라는 것들은 주로 고전(classic)이란 이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긍정적인 평가가 누적되면 어느새 고전이란 이름이 붙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란 이름만큼이나 스테디셀러라는 이름 역시 양서를 구분하는 표지가 된다.

단기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어도, 스테디셀러로 가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1>은 2020년 11월에만 해도 베스트셀러였지만, 스테디셀러에 들어갈 수는 없다. 1년 후엔 <트렌드 코리아 2022>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또 <트렌드 코리아 2022>는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2021>은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다. 꽤 극단적인 예이기 때문에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순 없다. 다만 시기적(timely) 베스트셀러가 양서가 되기 쉽지 않다는 반증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 보니 헌책방을 통해서도 유통될 수 있는 책들은 비교적 양서에 가까워질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복해서 재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을 정도로 평가받고 있는 책이라면, 읽어서 나쁠 것도 없다. 

게다가 소량 출판하고 절판된 양서가 일반적인 출판유통구조에서 쉽게 구축(驅逐)되는 반면, 헌책 유통구조에서는 상당한 지위를 구축(構築)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좋은 책이 또 다른 독자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헌책 예찬’까진 못하더라도 백안시 하긴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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