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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Nov 24. 2021

동네책방에서 음료를 판다는 것

팔 수 있을 때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만 봐도 이렇게 할 일이 태산 같은데 가페 운영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아메리카노는 어떻게 만들어야 좋을지 커피 머신은 어떤 제품이 좋은지 커피 원두는 어떤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카페 운영에 필요한 것은 어떤 것들인지,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조차 전혀 없던 터라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덤벼야 할 상황이었다.
49쪽. 김진양. 『술 먹는 책방』. 경기도 고양:나무+나무. 2015. 



1. 잘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우리 회사 대표의 컨설팅 철학이다.

맨땅에 헤딩하지 말고, 해 봤던 일 중에서 잘 하던 걸로 사업을 하라고 말이다.

예비창업패키지나 청년창업사관학교와 같은 창업 프로그램의 멘토링에서 재빠른 피보팅을 권유할 때도 마찬가지의 원칙은 적용된다. 가지고 있는 기술의 토대 위에서, STP를 다시 정립하건 4P를 다시 잡던가 하는 것이지, 아예 새로운 BM을 잡으라고 하진 않는다. 


그런데 다양한 멘토링 사업에 참가하다 보면, 한숨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카페하다 자꾸 망해서 옷가게를 해보고 싶다는 경우나, 유망한 업종을 추천해달라는 경우가 그렇다.

망하는 건 유망하지 않아서가 아니란 점을 본인들도 알고 있다. 그저 방어기제에 따라 작동한 귀인오류에 빠진 것뿐이다. 내 탓이 아니라고 현실을 부정하는 타조증후군일 뿐이다.

환경이 완전히 변해버려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실패에서 배우고 그나마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에서 재도전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


일주일 전쯤의 일이었다. 

주말이었고, 대충이라도 훑어보고 반납해야 할 책이 있었고, 짬뽕 국물에 소주 한 잔도 하고 싶었다.  

자잘한 욕구는 충족시켜주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그렇다 보니 살짝 오른 취기에도 책을 훑어볼 만한 카페를 찾았다.

10년 전쯤에 신림사거리에 자리를 잡은 카페를 찾았는데, 이용과정이 조금은 빡빡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소수 인원으로 운영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조금 취기가 오른 아재에겐 꽤나 큰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그런 이유로 장난기가 뻗쳐서, “오늘은 어떤 커피가 맛있는지 추천 좀 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메뉴판의 첫 페이지를 펴면서 두 종류의 원두를 추천해주는 것이었다.

한 잔에 8천 원 하는 것은 원산지가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산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술김에 주문한 한 잔에 만 원짜리 에티오피아 시다모산의 커피는 맛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언술에 의해 지배되는 감각이었다.

서빙된 커피와 함께 제공된 메모에는 “꿀에 절인 레몬 같은 새콤달콤한 산미와 단맛”이라던가, “애프터까지 지속되는 조청 같은 단맛”은 꽤나 적절한 맛표현이었다. 

요리를 못하는 편도 아니고,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지만, 구르메라 자칭할 정도의 혀는 가지고 있진 못하다. 오히려 ‘고향의 맛’을 사랑하는 꼰대의 입맛을 가졌을 뿐이라서 맛에 민감한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는 맛있었고, 소믈리에의 닭살 돋는 맛표현만큼이나 민망한 메모의 문장은 혀끝의 감각을 조종했다. 이런 커피라면 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커피를 팔 거면, 이 정도의 제대로 된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살짝 반전이 되는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한 잔에 만 원짜리 커피를 팔 생각이라면 신림사거리부터 벗어나라"는 것이 우리 회사 대표의 견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 수 있을 때 팔아야 한다.


커피를 음미하던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내려진 숱한 아메리카노의 특징 없는 맛이었다.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과하지 않게 로스팅하고, 잘 구운 여러 원두를 블렌딩해서, 좋은 여과지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하게 드립한 커피가 주는 산미와 감미의 미묘한 조합이란 그저 황송할 뿐이다. 미맹을 벗어난 수준의 아재에게 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프랜차이즈의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추출하는 아메리카노에선 기대할 수 없다. 기대 없이 그냥 마실 뿐이다. 언젠가 찾아갔던 책방에서 내려준 티백 스타일의 디카페인 커피나, 커피메이커로 한소끔 끓여내 두고두고 마시는 커피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책방에 대해 컨설팅을 한다면 책으로 다양한 구색을 갖추기 보다는, 차라리 커피머신을 들여놓으라고 할 듯싶다. 책으로 구색을 맞추는 건, 지금 그 작은 영업공간으로 이미 실패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북카페’로 콘셉트를 잡은 곳이라면 모를까, 동네책방에서 깜짝 놀랄 수준의 드립 커피를 찾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자리값 정도라 생각하고, 과하지 않은 가격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맛이 아니라면, 다들 잘 사먹는다. 

무엇보다 책방을 찾아오는 고객들은 몰상식하지 않은 편이라서,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에 매몰되지도 않는 편이다. 돈 푼이 아쉬웠다면 책방을 찾지 않고 인터넷 서점과 도서관을 이용했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책을 구입하는 허영’을 드러내야 하는 장소에선 지갑을 여는 마음이 꽤나 너그러워진다.

방과후 동네문방구만큼 붐비는 경주의 ‘어서어서’와 같은 동네서점은 몹시 드물다. 대부분의 시간이 한두 명의 내객이 있을 만큼 한가로운 공간을 음료 한 잔 죽때리고 앉아 있게 만든다고 해서 크게 손해볼 것도 아니다. 테이블당 회원율을 고민해야 하는 카페가 아니라서 말이다. 오히려 아무도 없는 공간보다는 누구라도 하나 있는 게 나은 공간이 서점과 같은 곳인지라 모객에 불리할 것도 없다.


문제는 품질 관리다. 기본적으로 품질 관리는 규모의 경제와 연결된다.

좋은 원두는 비싼데, 이걸 소량으로 구매하면 더 비싸진다. 이문이 참 박해지기 때문에, ‘내가 이걸 뭐하러 팔고 있나’하는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수가 있다.

그렇다고 대량으로 구입해서 쟁여놓고 쓸 수도 없다. 로스팅한 원두는 말할 것도 없이, 갈아버린 녀석은 더 쉽게 산화한다. 비싼 값을 못하게 된다. 그러니 비싸게 산 좋은 원두는 후딱 많이 팔아야만 제값을 하게 된다. 답이 안 나온다.

그나마 해결방법이라곤 개점동선내에 있는 준수한 카페와의 제휴 정도겠다. 적당량의 원두를 소량 공급받을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보는 정도가 될 테다. 

생과일주스나 에이드를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과일은 원두보다 재고관리가 더 아찔하다. 게다가 맛을 내는 건 더 어렵다. 우리에게 익숙한 에스프레소 머신의 개성 없는 아메리카노보다 맛이 훨씬 더 쉽게 드러난다. ‘이 정도면 팔아도 되겠지’가 아니라 ‘와!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는데!’의 수준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다 보니, 이쯤 되면 내가 책방을 하자는 건지, 카페를 하자는 건지 헛갈리게 된다. 차라리 책방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자는 회의도 들게 된다. 일은 두 배로 늘지만, 수입은 두 배가 아니라 1.5배에서 1.2배 정도밖에는 늘지 않는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 수 있을 때 팔자. 이도 저도 안 될 정도로 몰렸을 때 시작하게 되면, 스텝은 더 꼬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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