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남무성. 페인트 잇 록. 안나푸르나. 2014.
만화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함께 사용하여 복잡한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인간은 시각 정보를 텍스트 정보보다 더 쉽게 기억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만화는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활용해 정보의 직관성을 높여 기억력과 이해도를 높입니다. 특히 어려운 개념이나 추상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몹시 큰 도움이 됩니다. 텍스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을 이미지와 비유를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에 접했던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나 박흥용의 『학습만화 한국사』를 시작으로, 1990년에는 박흥용의 여러 권의 반공만화에 매료되었더랬습니다. 동독의 엑소더스를 다룬 만화는 열네 살 소년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을 무척 쉽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낼모레면 오십 줄에 들어가는 요즘에도, 여전히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과 같은 만화를 해당 도서를 읽기 전에 프리뷰 하기 위해 읽곤 합니다.
제가 이 만화를 펼쳐본 이유 역시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최근에 90년대 J-pop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다가,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의 팝을 다룬 유튜브 콘텐츠들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팝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저인데도 꽤나 많은 곡들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더군요. 무척 신기했습니다.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를 시작으로 ‘이수만의 팝스투나잇’(후속 프로그램이 배철수의 음악캠프),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까지 팝을 다루는 꽤나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귀동냥했던 음악들이 기억에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와중에 꽤나 많은 록그룹들이 제 기억과 다른 연혁들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죠.
그러다가 최근 선배 한 분의 우연찮은 권유가 또 겹쳤습니다. 제가 읽고 있던 『일러스트로 보는 조선의 무비 군사복식편』을 살펴보던 선배가 직접 책을 검색하며, 자기는 3권 전질의 페이퍼백으로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러다가 40대 후반의 아재와 50대 초반의 꼰대 둘은 한참을 1980년대에 대해 수다를 이었습니다. 역시나 수다는 아재들의 ‘라떼이즈홀스’를 이길 게 없습니다. 결국 그 덕에 이 책을 집어 들고 ‘록의 역사’를 ‘대충 훑어보고’ 100곡 남짓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목적에 만화로 된 책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척 베리Chuck Berry의 ‘메이블리Maybelle’로 시작해서 콜드플레이Coldplay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로 끝나는 128곡의 리스트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리스트를 만들어 가면서, “아~ 이 곡!”이라며 탄성을 내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 밴드가 이렇게 오래된 밴드였나?”하는 각성과 “이것도 록이야?”라는 반감도 숱하게 교차했습니다. 두서없던 록에 대한 지식이 체계를 갖추며 갱신되는 경험은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구성에 대해서는 불만이 컸습니다.
의외로 만화가 만화답지 않았습니다. 만화는 만화의 문법이 있습니다. 텍스트는 그림을 보조하며 은근하게 녹아들어야, 비로소 만화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반대였습니다. 준비한 텍스트를 그림이 보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시각 정보가 줄 수 있는 묵직한 정보 하중은 경험하기 힘들었습니다. 되레 앨범 재킷 이미지의 저작권 문제를 넘어가기 위해 만화를 활용했나 싶어질 정도로 무의미한 컷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반면에 텍스트는 너무 빼곡했고요.
이런 경우는 학습만화류에서 자주 보이게 되는데요, 텍스트 작가와 그림 작가가 따로 작업을 할 때 그러니까 텍스트 작가가 먼저 원고를 정리해서 넘겨주면 거기에 그림 작가가 일러스트를 넣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할 때 자주 일어나더군요. 글과 그림이 물과 기름처럼 잘 어울리지 못할 때 느껴지는 위화감이었습니다.
그다음의 이외는... 작가 남무성이 직접 만화를 그렸다는 겁니다. 음악칼럼니스트인 줄로만 알았던 작가가 2003년 대한민국 만화대상에서 『Jazz It Up』으로 특별상, 신인상을 받은 만화가이기도 했더군요. 그렇다고 한다면, 신인작가의 서툼이 그 위화감의 정체라고 이해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의외는 또 이어졌습니다. 일본에도 판권이 수출될 정도로 록음악씬에서는 꽤 유명한 ‘교과서’가 되어 있었더란 점입니다.
유이 쇼이치의 『재즈의 역사』란 책이 떠올를 만큼, 쉰내 풀풀 나는 1980년대 아저씨 스타일의 내용 구성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자주 들었던 ‘아티스트 계보학’으로 이어지는 구성의 올드함에 지루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록의 역사를 다룬 책치곤 이만한 것도 없었나 봅니다. 호평 일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