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로스 킹. 피렌체 서점 이야기. 책과함께. 2023.
600페이지가 넘는 이 벽돌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꽤나 오래 고민했습니다.
우선 ‘서점 이야기’란 점에서 꽤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최전성기에 해당하는 콰트로첸토(quatrocento, 400이라는 이탈리아어로 1400년대, 그러니까 15세기를 이르는 말)의 피렌체를 배경으로 필사본을 다루는 서적상 이야기이기도 하니, 별의별 생각을 다해 보기도 했습니다.
다만 겁이 좀 났습니다. 책이 이렇게 ‘벽돌’이 됐을 때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할 말 못 할 말 구분 못하고 마구 질렀을 때 책이 두꺼워집니다. 이런 벽돌들은 읽다 보면 짜증이 폭발합니다. 나름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당대의 사정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루하고 불필요하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습니다. 둘째는 풀어놓다 보니 더 줄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방대한 주제를 다룬 경우입니다. 흔치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앞엣 것이 이유가 될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한 말을 또 하고,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다는 것이 그렇게 산으로 가곤 합니다. 벽돌이 두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충족되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렇게 딴 길로 샜다가도 금방 다시 본줄기로 돌아오니,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가끔 책을 판단하는 평가적 어휘로 “책이 좋은가 나쁜가” 또는 “책이 재미있는가 재미없는가” 아니면 “책이 쉽고 편하게 읽히는가 어렵고 불편하게 읽히는가”를 가져오곤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긍정적인 어휘들끼리만 묶이는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어휘의 평가라고 해서 그 평가가 부정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우선 책의 내용에 대한 가치 평가, 그러니까 ‘좋은가 나쁜가’를 평가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가치체계에 달려 있습니다. 소위 철학이라고도 부르는 개인의 가치체계에 부합할 경우에 ‘좋다’는 평가를 내리곤 합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입장에 근거해, 나의 가치체계에 부합하면 좋다고 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쁘다고 말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좋다/나쁘다’는 북리뷰에서 써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다’던가 ‘쉽고 편하다’는 건 어느 정도 객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교육 수준에 따른 문해력과 배경지식의 유무로 개인차는 발생하기에 아주 객관적이라 할 순 없습니다만, 그래도 ‘대체로 그런 편’이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쉽고 편하게 읽히지는 않지만 재미있습니다.
아무래도 다루는 내용이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서적상과 그와 관련된 지식세계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다 보니, 쉽고 편하게 읽힐 리가 없습니다. 필사본(manuscript)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활자인쇄(movable type printing)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먹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5세기에 국한하지 않고 역사 시대를 통튼 서양세계의 지성사에 대한 지식도 선행하지 않는다면, 그저 헛웃음이나 내뿜다가 책을 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용적으로 익숙지 않으니 편하게 읽힐 리가 없습니다. 그나마 영어권 연구자들의 학술적인 문체를 벗어났다는 점(로스 킹의 문체가 원래 그런 건지, 번역자가 죽을 듯 고생한 것인지는 알지 못합니다.)이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재밌다고 말씀드리긴 했습니다만, 누구나 다 재밌게 읽힐 내용은 아닙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얼마나 흥미를 가지고 접근했느냐에 따라 재미는 달라질 듯합니다. 그러니까 제법 선행지식을 갖추고 있고, 이 책에서 ‘이런 의문점이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면 모를까, 그냥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책장을 편다면 괴로운 독서가 될 겁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날에 플라톤의 『국가/politheia』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사의 만화로 프리뷰를 한 플라톤의 책은 읽는 내내 짜증이 폭발했습니다. 벽돌책이 갖는 전형적인 문제를 고루 갖추었다는 점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플라톤의 철학이 제게는 감내하기 어려운 헛소리만 읽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작파하고 말았다는 리뷰를 앞서 쓰기도 했습니다.
『국가/politheia』의 리뷰에서도 밝혔듯이, 역본을 선택하기 위한 사전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몇몇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 좀 더 견고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플라톤은 중세 내내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존재감이 미미하고 눈에 띄지 않았다. 비록 그는 36편의 대화편을 남겼지만 1100년대까지 서방에 알려진 유일한 (그것도 단편적 형태로만) 저작은 《티마이오스》였다. - 101쪽
지성사가 제임스 핸킨스와 에이다 파머는 15세기 학문 연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은 플라톤 저작들의 점진적 복구와 라틴어 번역”이었다고 단언한다. - 525쪽
리폴리 출판사에서 나온 피치노의 플라톤 번역서 1025부는 르네상스 연구자 파울 오스카르 크리슈텔러에 따르면 “서양사 역사상 중대한 사건”이었다. 피렌체에서 시작된 플라톤 부흥의 물결과 파도는 이내 유럽의 지적 풍경을 휩쓸고 가는 홍수가 됐다. 플라톤은 다음 5세기 동안 서양 철학 전통을 철저하게 지배해 1927년 영국 철학자 A. N. 화이트헤드는 에든버러의 유명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할 수 있었다. “유럽 철학 전통에 대한 가장 안전한 일반화는 그것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526쪽
피치노의 번역은 수 세기 동안 유럽 전역의 독자들이 플라톤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1513년에 이르러서야 출판된 그리스어 원문보다는 피치노와 리폴리판을 통해서 플라톤 철학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플라톤이 마침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같은 언어로 등장했을 때 번역가들은 그리스어 원문 대신 피치노의 라틴어 번역본을 이용했다. -527쪽
이 책을 읽으면서 ‘재밌다’고 생각한 건 대체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무엇 때문에 가능했는지를 새삼스레 알 수 있었다는 것과 둘째는 15세기 후반에 등장한 활자인쇄술이 생각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선 첫 번째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자본주의’가 추동했다는 것, 그러니까 잉여자본이 ‘아름답지만 무용한 것’들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에 집중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이 향상되어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고 그 결과 르네상스가 추동되었다고 생각해 왔던 지금까지의 가정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융을 통한 잉여자본의 형성이 피렌체 경제를 활성화했고, 그 잉여자본들이 단순한 생필품 이상의 상품에 대한 욕망(want)을 자극했기 때문에, 지적 예술적 상품에 대한 소구(needs)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영국이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던 금융자본주의의 어마어마한 포식력은 15세기 이탈리아 북부에서도 여지없이 그 저력을 발휘한 것이었겠지요. 겨우 서점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이 배경으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고가의 예술품에 필적하는 ‘아름답지만 무용한 필사본(manuscript)’을 주로 다루는 피렌체의 서적상이 그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경제적 배경은 그렇게 설명됩니다.
둘째는 활자인쇄술(movable type printing)에 대한 과도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구텐베르크가 활자인쇄를 시작하자마자, 마치 민중들에게 책이 쥐어지고, 문해력은 폭발적으로 상승해서, 지식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오해하곤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종이값이 싸지 않았습니다. 양피지에 비하면 1/6 가격으로 조달이 가능했습니다만, 섬유소로 만드는 종이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합니다. 물레방아를 통한 수력으로 셀룰로스를 만들어내고 다시 그것들을 형틀에 부어 건조하는 과정은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쳤습니다. 양, 염소, 송아지의 가죽으로 만드는 양피지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섬유질 소재는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닥나무로 만드는 한지 역시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비쌀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 비싼 종이로 책을 만든다는 건 15세기 피렌체나 조선이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필사에서 인쇄로의 점진적인 전환은 1400년부터 1500년 사이에 책값이 3분의 2만큼 하락했음을 의미했다. 15세기 후반기에 이르면 인쇄본은 리폴리 출판사의 책을 구입한 벽돌공이나 대장장이 같은 필사본이라면 엄두를 못 냈을 독자들의 손에 도달했다. 그렇더라도 모든 사람이 인쇄본에 쉽게 접근하거나 입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인쇄술의 사회적·정치적 결과는 과장되기 쉽다. 문구상과 서적상들은 인쇄술이 도래하기 한참 전부터 입문서와 문법서를 풍부히 공급해 왔다. 여기서 2세기를 건너뛰어 인쇄의 시대에 진입하면 이야기는 달라지는데, 증거에 따르면 16세기를 거치면서 토스카나 지방의 문자해득률은 사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피렌체시의 “잊힌 세기들”에 토스카나 대공들이 주관한 억압적 조치들과 경제적 쇠락의 시기 동안 인쇄술이 해낼 수 있었던 것보다 14세기와 15세기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가 피렌체의 문해력에 더 기여한 셈이다.
흔히 대규모 ‘미디어 캠페인’의 산물이자 하나의 ‘출판 사건print event’으로 그려지는 종교개혁에 대한 인쇄기의 영향도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6세기 첫 몇십 년 동안 독일어권 도시와 소읍에서는 세 명 중 한 명만 글을 읽을 줄 알았다. 인쇄기 덕분에 모든 사람이 책을 소장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니다. 루터의 1534년판 독일어 성서 가격은 미숙련 노동자의 한 달 임금에 맞먹었다. - 541쪽
5.
책을 읽다 보면, 다음에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꼬리에 꼬리를 무슨 경우가 생깁니다. 이번에는 사놓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벽돌책을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전에 대충 발췌독만 했던 다른 책도 한 권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