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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y 05. 2024

고전을 읽는 이유 2 : 기원을 알고 싶다

[북리뷰] 아라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윤리학. 도서출판숲. 2013.

1. 자명한 것의 기원이 궁금해지다.


 작년에 네이버 밴드를 통해 고전 읽기에 도전해 본 적이 있는데요, 주니어김영사의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 고전 60선'의 리스트를 따라 읽었습니다. 첫 번째 순서였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합류가 늦어져 건너뛰고, 두 번째 책부터 11번째인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까지 함께 했습니다. 이 맥락 없는 독서에 지쳐가다가, 결국 『리바이어던』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새로이 맥락을 갖춘 독서목록을 고민하다가, 교황청 금서목록 Index Librorum Prohibitorum에 눈길이 갔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눈뜨게 했던 책들은 대부분 금서목록에 올랐던지라 좋은 목록이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교황청 금서목록 이전의 고전들도 따로 고민해야만 할 듯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급한 대로 나이절 워버턴의 『철학의 역사』를 좀 활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마키아벨리에서부터는 금서목록과도 궤를 같이 하더군요. 그렇다면 당분간은 대충 이 목록으로 읽어 나아가자 싶어 졌습니다. 


  제가 고전을 읽는 제1원칙은 "아는 척이 하고 싶다"는 것인데요, 아는 척을 하려다 보니, 지식의 계보를 따라잡아서 그 맥락을 이해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더군요. 그렇다 보니 고전을 읽는 제2원칙은 아마도 "기원을 찾아 계보를 이해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치철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윤리학의 기초가 갖춰져야 하고, 윤리학의 기초를 갖추려면 역시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아주 자명한 지식이 제게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을 시작으로 대학의 교양수업 그리고 여러 책들을 통해서 강화된 것이겠죠.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이 책이 윤리학의 기초를 다진 책이란 '사실'을 아주 자명한 것으로 주입했던 겁니다. 이런 식으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명한 지식이 그 근본 없음을 드러내는 순간을 자주 경험하곤 합니다. 그러니 이 전도된 지식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겠고, 결국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싶었습니다. 



2. 규범윤리학을 고민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정수이면서, 윤리학의 기초라고 일컬어집니다. 읽기 전에는 왜 그렇게 불리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요, 막상 읽고 나니 '어, 그런 이유인 건가?'싶어 지는 면이 있습니다.

 철학은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윤리학), 논리학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그 갈래에서 가치론은 다시 규범윤리학, 메타윤리학, 응용윤리학 등으로 나뉘고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하여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논하게 되는 것이 규범윤리학인데요. 미덕(arete)을 행함으로써 행복(eudaimonia)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선(to ariston)이라는 소위 '덕윤리학'이 그 아래에 위치한다고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토대를 만든 이후 2000년간 서양세계는 덕윤리학을 단단하게 만드는 철학세계를 축조했네요. 그렇다 보니, 규범윤리학에서 새로운 견해는 18세기 칸트나 벤덤에 이르기까지 찾아보기 어려웠던 거고요.


 저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으면서, 형법총론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읽을 때는 시민법(civil law)과 관련해 민법(civil act) 총론이 떠올랐었는데요, 이 책에서는 특히나 형법상 책임 조각 사유와 고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옳고 그름을 문제를 개인에게 귀속시킬 때, 그 사람이 그 행위에 책임이 있느냐를 따지기 위해 형법에서는 책임능력을 살펴보게 됩니다. 강요된 행위나 정당방위 그리고 긴급피난과 자구행위 등에 대해서는 벌하지 않는데요, 어쩔 수 없었으니 봐준다는 겁니다. 제3권 <도덕적인 책임>에서 시작해서 제7권 <자제력과 자제력 없음, 쾌락>에 이르기까지 줄곧 책임과 고의에 대한 고찰이 이어집니다. 그리하여 규범윤리학과 법률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더군요.

 불의한 행위(adikema)는 불의한 것(adikon)과 다르고, 옳은 행의(dikaioma)는 옳은 것(dikaion)과 다르다. 불의한 것은 자연적으로 그렇거나 법규에 의해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단 행해지면 불의한 행위지만, 그러기 전에는 비록 불의하기는 해도 불의한 행위는 아니다. 이 점은 옳은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의로운 행동(dikaiopragema)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는 반면 옳은 행위(dikaioma)는 불의를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 201쪽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정한다는 것, 그리하여 누가 심판이 되어 규칙을 정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입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지더군요. 마침내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마지막 문장도 그곳에 다다릅니다.

우리는 어떤 정체가 최선이며, 각 정체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며, 어떤 법률과 관습을 채택해야 하는지 더 포괄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들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하자. - 417쪽

천병희 선생은 마지막 문장의 주석을 "정치학을 논하기로 하자는 뜻"이라고 다셨습니다.



3. 말이 말 같아야 말인데,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말을 꼬아서, 참 알아먹기 힘든 말이 됐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딱 이 소제목과 같은 문장들이 자주 나옵니다.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확정하려다 보니 그런 듯합니다.

 유덕한 행위들은 고상하며, 고상하기에 행해진다. 따라서 후한 사람도 그러는 것이 고상하기에 올바른 방법으로 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당연히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당연히 주어야 할 만큼 당연히 주어야 할 때에 줄 것이고, 그 밖에도 올바로 주는 것에 필요한 다른 조건들을 충족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일을 하며 즐거워하거나, 적어도 괴로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덕한 행위는 즐겁거나, 고통이 수반되지 않기에 괴롭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 138쪽

왜냐하면이란 부사가 전혀 그 의미를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하나마나한 것 같은 언술들이 이어집니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죠. 이럴 때는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조금 도움이 되더군요. '아, 그래, 그렇지. 그런 의미였구나'라면서 이해를 했다가도, 이내 그 의미에 또 의문을 품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이 어렵다거나 난해하다거나 골 때리다던가 헛갈린다고들 평가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또한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즐거운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삶은 확정되고, 확정된 것은 좋음의 본성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본성적으로 좋은 것은 훌륭한 사람에게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삶은 누구에게나 즐거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사악하고 타락한 삶 또는 고통 속에서 보낸 삶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삶은 그 속성들이 그러하듯 불확정적이기 때문이다. - 368쪽

 이런 식으로 동어반복인 듯하면서 순환논리에 빠지는 게 아닌가 싶은데, 또 찬찬히 뜯어보면 확실히 필요한 구분이 지어지는 언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환장하게 만들죠.



4.  번역은 언제나 중요하다

고전을 읽을 때는 번역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대그리스의 고전, 그러니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희랍어를 번역한 책은 독본으로 삼고 싶습니다. 그렇다 보니 천병희 선생의 역본을 찾게 되는 듯합니다. 그리스와 라틴어 원전을 번역하는 데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천병희 선생은 꽤 높이 평가받고 있더군요.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 기대가 큽니다. 이 책 역시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번역하려 노력했다"는 천병희 선생의 배려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고 사변적이어서 그렇지, 번역 문장은 무척 깔끔해서 읽기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10권(book)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단순히 숫자로만 나뉜 각 장에 중간 제목을 붙여준 것이 참 좋았습니다. 목차만 보는 것만으로도 내용이 요약되기 때문입니다.

천병희 선생의 그리스어 역본이라서 번역된 용어의 원어가 주석으로 달린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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