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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Jun 01. 2024

신간 서적 선택법 2: 이제야 책이 나왔다.

[북리뷰] 브루스 딕슨 著/박우 譯. 당과 인민. 사계절. 2024.

1. 이제야 책이 나오면, 신간 서적을 읽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저는 한 리뷰에서 신간 서적 선택법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은 크게 ‘지식 습득 목적’, ‘지식 확인 목적’, ‘문학적 목적’의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어떤 분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책을 펼쳐드는 게 첫 번째 ‘지식 습득 목적’에 해당"한다고 말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장 싸고, 가장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책을 읽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죠. 그래서 신간 서적의 선택법 중에 또 한 가지가 이렇게 밝혀집니다. 궁금한 것을 해결하려면 책을 찾아 읽을 수밖에 없고, 기존에 출간된 책을 찾아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와 관련한 제대로 된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신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요. 

 간간히 최근에서야 개념이 정립되거나 현상을 조망할 수 있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이를테면 북큐레이션의 개념이라던가, UI디자인에서의 다크패턴 같은 것들 말입니다. 중국의 현 상황도 마찬가지의 경우겠네요. 그렇다 보니 이런 것들이 궁금해지면, 이제야 나온 책을 찾아볼 수밖에 없겠지요. 

 


2. 기승 전시진핑: 새로운 시황제의 중국 공산당과 인민


 지난 20년간 제가 바라본 중국은 늘 예상을 벗어나 있었습니다. 레닌주의적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몹시 권위주의적입니다. 권위주의적 국가이면서도 경제는 빠르게 성장합니다. 공산주의 국가면서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해서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그로 인한 빈부격차는 한국사회의 그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게다가 부패는 또 어마어마합니다. 그 부패 속에서 또 경제는 성장합니다. 이건 뭐, 상식을 벗어나는 게 한둘이 아니다 보니,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에 대한 좋은 설명서가 필요했던 참인데요,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2021년 프린스턴대학출판부에서 출간한 책 『The Party and the People: Chinese Politics in the 21st Century』를 번역한 이 책은 좀 늦은 감이 있습니다. 2년 전쯤에 만났었더라면 좀 더 좋았을 듯싶어 아쉽습니다. 

 작년 이맘때 위엔위엔앙의  『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를 읽었습니다. 이 책만큼은 아니었지만, 중국 경제 성장의 한 단면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그래서 다음 기회에는 중국 공산당과 정치체제에 대한 책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요, 그게 이 책으로 충족됐습니다.

  책의 표지는 참 강렬합니다. 인민무장경찰부대의 경비병이 천안문 광장에 서 있는 사진에 베이징 스카이라인을 합성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형압 처리해서 눈에 확 띕니다. 거기에 중국 관련 도서다운 붉은색의 컬러 아이덴티티가 성립했다고나 할까요. 여러 모로 흥미를 끌었습니다.     


 제목만 보면 당과 인민의 상호관계 속에서 21세기 중국정치를 조망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만,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정리하다 보니 시진핑으로 시작해서 시진핑으로 끝나더군요. 시진핑 정권은 어떻게 해서 태어났고, 지금에 이르렀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금의 시진핑 정권이 처한 위치를 저 한 문장이 극단적으로 설명하는 듯했습니다. 

 시진핑은 당의 노선에 대한 그 누구의 비판도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도-용납하지 않는다.    


 1장은 <당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까?>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니다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새로운 시황제’ 탄생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보여줍니다.

 10년 전쯤, 그러니까 시진핑 집권 초기에 전해 들은 바로는 중국의 정치권력은 집단지도체제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 집단지도체제는 마오쩌둥 사망 이후 덩샤오핑이 복권되면서 정착되었고, 10년 단위의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통해 안정적인 공산당 통치제제가 ‘완성’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짱 헛소리였던 겁니다.

 마오쩌둥에 의한 1인 독재로 인해 험난한 세월을 보내야 했던 덩샤오핑 등의 정치세력은 상호견제를 위해 집단지도체제를 만들었고, 이들이 죽을 때까지 후견인이 되어줄 차세대 지도자로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사전에 낙점했을 뿐이란 거죠. 그리하여 덩샤오핑의 그림자 속에서 약화되어 왔던 집단지도체제는 결국 새로운 마오쩌둥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진핑이 집권 후에 벌인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진핑은 이러한 추세를 뒤바꿨다. 그는 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관리들의 부패를 근절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광범위한 반부패운동을 시작하고 이를 널리 홍보했다. 2017년까지 35만 명 이상의 지방 당 및 정부 관리들이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또한 전직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위원, 장쩌민과 후진타오 계열, 은퇴한 군 지도자 등 자신의 진영에 속하지 않은 고위 공직자도 표적으로 삼았다. 이는 정치국에 속한 사람(및 그 가족)은 부패 척결의 성역이라는 불문율을 깬 것이다. 이로써 당, 정부, 군부를 막론하고 누구도 시진핑에 반기를 들 수 없게 되었다. - 46쪽 
 시진핑은 이들 모두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첫 번째 당 지도자 임기가 끝나자마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당장에 삽입되었다. 시진핑의 이름이-마오쩌둥과 덩샤오핑처럼-명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 전임자와 달리 그의 기여는 “이론”보다 더 중요한 “사상”으로 적시되었다. - 47쪽
 2018년 개정된 중국 헌법은 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을 삭제했다. 덩샤오핑이 시작하고 후임 지도자들이 유지해 온 5년 중임 제한은 마오쩌둥의 예와 같은 지도자의 무기한 재임을 방지하고 지도자를 정기 교체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헌법에서 임기 제한을 삭제함으로써 중국의 지도자 자리를 무기한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 48쪽

 이미 존재하는 경쟁자는 제거하고, 앞으로 생길 수 있는 경쟁자를 견제하면서, 10년만 버티면 된다는 가능성을 말살해 버림으로써 희망까지도 제거했습니다. 여기에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반열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우상화 작업도 병행했습니다. 철저한 마키아벨리즘의 행보를 보여줍니다. 1인 독재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을 카드를 전부 갖춘 거죠.    

  

2장 <지도자를 어떻게 선발할까?>에서도 중국의 정치 구조가 시진핑 1인 체제 강화에 복무하는지 보여줍니다. 1990년대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를 따랐던 권위주의 정권들이 줄줄이 무너질 때, 중국 역시 천안문사태(六四天安門事件)를 경험하면서 민주화가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봤었습니다. 하지만 35년이나 지난 지금도 중국은 민주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레닌주의적 권위주의 국가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덩샤오핑 체제가 만들어낸 집단지도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겠지요. 

 사실 연령 및 임기 제한에 따른 지도부 교체는 2007년(시진핑이 후계자로 확정된 시기)과 2012년(시진핑이 총서기에 취임한 시기)에만 지켜졌다. 후진타오는 규칙을 완전히 준수한 유일한 지도자였다. 후진타오 주석이 중국 최고 지도자 중 가장 약한 인물로 평가받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 85쪽     


 3장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에서도 시진핑 체제가 강화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중국 국가는 통합된 행위자가 아니며, 정치권력이 분절되어 있다”라고 설명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영도 소조와 노멘클라투라 제도를 통해 중국의 분절된 권위주의를 통합하고 이해관계의 충돌을 방지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4장 <중국에도 시민사회가 있을까?>에서 제가 주목했던 건 외국대리인법의 적용이었습니다.  ‘9호 문건’ 이후, 중국에서는 2017년 1월부터 외국대리인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NGO가 중국 내 후원 기관을 찾고 공안국에 등록하는 법”이란 겁니다. 최근 조지아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던 이 법은 러시아의 외국대리인법을 닮아 있다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조지아, 러시아, 중국의 외국대리인법의 모태가 된 건 미국에서 1937년에 제정된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근거했던 겁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외국대리인법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이쯤 하면 맥이 빠지게 됩니다. 그저 “국가로부터 완전히 자율적이지 않고 정치적 반대와 항의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는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관찰자들의 시각에 동의하는 수준에서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5장 <시위가 정치적 안정을 위협할까?>에서는 “1989년 시위는 앞으로 일어날 대규모 시위의 전조가 아니”었으며, “이후 30년이 넘도록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대중운동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력 사용, 고문, 투옥, 가택연금과 강경 진압이 일상적이며, 被請喝茶(줄여서 喝茶, 차마시기를 권유하다는 말이지만 공안의 사정청취를 빙자한 심문을 일컫는 말), ‘관계를 이용한 진압(시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큰 사람에게 시위를 멈추게 하는 임무를 맡긴다. 실패하면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전보될 수 있다.)’을 활용하기에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방역체계에서 활용되었던 안면 인식과 휴대폰 추적 기술을 활용한 ‘社會信用體系’도 구축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에 시위를 ‘안정’에 대한 위협에서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성격 규정을 변경하면서 더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6장 <당은 왜 종교를 두려워할까?>를 읽고 보니, 중국 공산당은 종교를 두려워하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중국 정부는 불교와 도교, 개신교, 천주교, 그리고 이슬람교까지 다섯 종교만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조직화된 종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종교적 실천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러는 것처럼, 점, 풍수지리, 향 피우기, 종이돈 태우기나 조상 숭배 같은 걸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딕슨은 ”중국은 구석구석마다 사찰이 있는데 신은 없는 나라“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음과 같은 규칙을 따르는 한 종교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봤습니다.

 첫째, 정치활동은 금지한다. 둘째,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셋째, 중국 내 다른 교회나 외국의 종교 단체와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 266쪽     


7장 <민족주의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을까?>에서는 좀 의외의 내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정부가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고, 이에 젊은 세대들의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했다고 언론은 보도해 왔습니다.

 2000년대 중국에서는 반일 감정이 매우 강했다. 지방 정부가 미디어와 교육 과정을 통해 일본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지방의 민간 활동가들도 강력한 반일 메시지를 전파했다. 지방 차원의 행동은 중앙의 승인은 물론 지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반일 역사 활동가들은 애국주의 교육운동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저지른 잔혹 행위를 알렸다. 이들은 새로운 연구를 수행하고, 책과 논문을 출판했으며,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박물관을 열기도 했다. - 319쪽

 하지만 현재는 ”민족주의의 수준은 계속 증가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민족주의적이지 않다 “고 봤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애국주의 교육은 매우 엇갈린 결과를 낳았으며, 티베트와 신장에서는 역효과를 낸 것으로도 봤습니. 따라서 대중 민족주의는 단순히 중국 공산당의 동원에 대한 반응이 아닌 자체 역학으로 작동한다고 봤습니다.     


8장 <그래서 중국이 민주화될까?>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이 단호합니다.

이들이 레닌주의 정당으로서 70년 이상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있다. 정부, 입법부, 언론에 대한 통제, 모든 수준의 당과 정부 지도자 임명, 감시 기술과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사회의 전 영역을 감시하는 당 지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 조직에 대한 독점적 지위 등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당분간은 중국 공산당이 권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 369쪽     

 딕슨은 동유럽과 구소련에 있던 29개 공산주의 국가 중 10개 국가만 민주주의 국가가 됐고, 나머지는 개인 독재 정권이나 기껏해야 혼합 정권으로 바뀌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랍의 봄은 새로운 권위주의 정권으로 이어졌을 뿐, 2011년에 격변을 겪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17개국 중 단 한 나라, 튀니지만 민주화되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중국인은 마오쩌둥 이후 중국은 점점 더 민주화되고 있으며 이미 비교적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믿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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