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휴고 그로티우스/정문수·이수열. 자유해. 선인. 2023.
휘호 흐로티위스(Hugo Grotius)는 네덜란드인으로, 하위흐 더그로트(Huig de Groot)라는 네덜란드어 이름보다는 당대 유행한 라틴어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라틴어 이름까지 굳이 네덜란드어 표기법에 따라야 하는지 의문스럽지만, 국립국어원에서는 용례를 내놓은 상태인지라, 후고 그로티우스 대신 휘호 흐로티위스를 사용할 참입니다.
휘호 흐로티위스는 자연법과 국제법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존재합니다. 토머스 홉스보다 조금 앞서서 자연법의 여러 원칙들을 정리했고, 그 자연법의 원칙을 통해 포르투갈과의 국제적 갈등 그리고 영국과의 갈등에 적용할 원칙들을 정리함으로써 일종의 국제법과 국제해양법의 원칙들을 수립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제 고전 독서목록인 ‘교황청 금서목록 Index Librorum Prohibitorum’에서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머스 홉스로 이어지는 자연법의 계보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단지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휘호 흐로티위스를 읽고자 했던 건 아닙니다.
철학은 윤리학으로, 윤리학은 정치학으로, 다시 정치학은 법학에 크게 의존합니다. 그렇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을 쓰기 위해 니코마코스 윤리학으로 시작했고, 토머스 홉스의 왕권신수설도 자연법과 그 이전의 윤리학에서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러니까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은 그 기준점이 되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그것에 가장 근접하는 것이 법의 연원(淵源)이라 할 수 있는 자연법이 될 테고요. 그렇게 자연법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의 기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철학의 계보에서 휘호 흐로티위스의 족적을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을 듯했습니다.
이렇게 명성이 높은 휘호 흐로티위스이지만, 국내에 번역된 책은 『자유해 Mare Liberum』이 유일했습니다. 이미 정립되어 있는 국제법의 원칙이 있고, 그것에 기반해 출판된 국제법 해설서가 수백 권인지라, 그 원시적인 형태인 흐로티위스의 저작까지 찬찬히 살펴볼 이유가 없었나 봅니다. 무엇보다 중역을 피하기 위해 라틴어 원본을 번역할 만한 관련 학계의 학자도 없었던 듯합니다. 2018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고서야 나온 역서이니 말입니다.
이름마저 라틴어로 바꾼 사람이 책을 네덜란드어로 썼을 리는 없습니다. 『Mare Liberum, sive de jure quod Batavis competit ad Indicana commercia dissertatio』은 1609년에 라틴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이는 앞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요청으로 1605년에 저술한 『포획법 De Jure Praedae』의 연장선상에 있는 법률적 검토였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동인도제도에서 깡패짓을 시작하는 신호탄으로, 1603년 말라카 해협에서 포르투갈의 산타카타리나호를 나포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화물들을 꿀꺽 집어삼키고는 이에 대한 오리발을 내밀 필요가 생기자, 휘호 흐로티위스에게 합리화를 위한 법률적 조언을 부탁한 것이었죠. 『포획법 De Jure Praedae』에서는 주로 자연법의 원칙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번역서가 없으니 제가 읽어봤을 리는 없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홍기원의 『자연법 이성 그리고 권리』(터닝포인트, 2022)를 살펴본 덕에 얻을 수 있는 정보입니다. “구경도 해보지 못한 책을 비판한 2차 저작물”부터 읽었다며 구시렁댔었습니다만, 또 이렇게 보은을 하게 되는군요. 여하튼 휘호 흐로티위스의 자연법 체계만으로는 이 분란을 해결하긴 어려웠나 봅니다. 구체적으로 포르투갈의 주장을 분쇄할 만한 법률적 검토가 필요했는지, 이 책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제17조에서도 규정하고 있는 영해 안에서의 무해통항권은 자연법으로 보장된 권리라는 점, 둘째는 교역의 자유 역시 자연법적인 권리라는 점, 셋째 교황의 칙령은 국제법적으로 효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불법이라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네덜란드인들의 시도는 공통의 권리에 근거하고 있다. 바다를 항행하는 일은, 어떤 나라의 군주로부터도 심지어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만인에게 허용된다는 점은 보편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 65쪽
교역의 자유는 폐지될 수 없고, 만민의 동의 없이는 어떤 경우에도 폐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두 국가의 국민들이 상호 간의 독점적인 계약을 맺고자 하는 것을, 두 국가 이외의 어떤 국가의 국민이 어떤 식으로든 정당하게 방해할 수 있다는 (포르투갈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 88쪽
개인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전쟁이 정당한 것처럼, 자연법에 의해 만인의 공유물이어야만 하는 사물의 사용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도된 전쟁도, 그에 못지않게 정당하다. 그러므로 도로를 봉쇄하거나 상품 운송을 방해하는 자에 대해서는 공적인 권위자의 지침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법행을 근거로(via facti) 그렇게 행하는 것을 금해야만 한다. - 105쪽
이 책에서 구구절절 포르투갈의 부당함을 비판하면서 교황의 칙령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이러니 교황청 금서목록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 정도까지 교황의 권위에 정면도전했는데, 파문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 듯합니다.
교황이전 세계의 세족적 지배자가 아닌 이상, 전 세계의 통상의 권리도 자신의 권리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없다. 식자들은 교황이 전 세계의 세속적 지배자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 91쪽
교황은 크리스트교도이든 비 크리스트교도이든, (동인도제도 사람들 이외의) 모든 사람에 대해 불법을 행하였다. 교황은 공적인 심리(공청회, 재판) 없이 진술한 권리를 박탈할 수 없기 때문이다. - 92쪽
이 책은 몹시 짧은 글입니다. 이렇게 짧은 글을 가지고 책을 만들 때엔 보통 원고의 반분(半分) 정도의 부록이 덧붙여지곤 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부록들을 엄청 싫어했는데요, 쓸데없이 자기 글을 끼워넣기해서 분량만 늘린다며 타박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서는 마음이 좀 넓어진 걸까요,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앞선 『군주론』에서도 그렇지만, 부록으로 실린 약간의 해설들이 책에 대한 배경지식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읽기 전에 한 번 읽고, 읽고 나서 또 읽으면 그 부록에 대한 이해 자체도 갱신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이 책의 부록에서는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두 가지였습니다. 왜 휘호 흐로티위스는 교황에 대해 맹비난을 퍼부었는가에 대한 이유가 설명되었으며, 그 맹비난의 대상이었던 교황의 칙령이 어떤 형태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서 포르투갈 측의 주장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자유해 담론 이후에 현재의 영해 12해리, 접속수역 12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200해리까지 어떤 담론이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어서, 따로 찾아볼 수고를 덜어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