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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_대런 애쓰모글루 외

왜 국가가 실패하는지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책

by 안철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著/ 최완규 譯.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시공사. 2012.

Daron Acemoglu, James A. Robinson, 『Why Nations Fail』, Crown Publishing Group, 2013.



Все счастливые семьи похожи друг на друга, каждая несчастливая семья несчастлива по-своему.


레프 톨스토이 Лев Толстой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Анна Каренина』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로 시작합니다. 오만 데에서 즐겨 인용하는 문장이기도 한데요, 이 책에 대한 비판에도 유용할 듯합니다.


다론 아제모을루 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 James A.Robinson의 공저 『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는 2012년 펭귄랜덤하우스의 임프린트인 크라운커런시 Crown Currency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이 둘이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책의 인기도 급상승한 모양입니다.

머리말이 없는 책은 항상 불안함 속에서 읽어야 하는데요, 이 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을 다 읽어봐도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국가의 실패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며, 사회과학은커녕 인문학적 접근방식으로 국가의 실패를 대충 얼렁뚱땅 자기 멋대로 정의한다고 해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단순화한 이유를 도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 이야기 histoire가 늘 그렇듯이'잘 끼워 맞춘' 역사적 사실들은 제법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경제사적 차원에서 풍부한 예증이 덧붙여지니 더할 나위 없이 재밌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와중에 이 책이 경제사에 근간한 역사서인지, 제도사에 근간한 경제학 서적인지, 경제사와의 관계에서 살펴본 정치학 서적인지 가늠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연구방법론 자체만 살펴보자면 지극히 인문학적이어서 역사사가 되어야 할 테지만, 저자들은 ‘경제학자 ecomomist’로 불리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경제사 차원에서 분석된 가설을 증명해 이론으로 정립하기에는 사회과학 방법론이 적용된 것이 아니라서 짜증이 크게 일어납니다.

무엇보다 성공한 국가의 제도를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결정론적 오류는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저자들은 역사적으로 번영한 국가들이 포용적 제도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전후인과의 오류 post hoc fallacy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정 국가가 발전한 후 그 국가의 제도를 포용적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는 순환논법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 지나친 단순화와 이분법적 체계의 자의성이 명확한 경계를 구분 짓지도 못합니다.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는 그 구체적인 내용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를지 몰라도 국가가 실패하는 근본 원인일 수밖에 없다(528쪽)”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이론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생각에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라고 선언적으로 정리하고 있지만 “너무 많은 구체적인 내용에 집착하다 보면 모호함에 빠져들 위험이 있으므로 그런 이론에서 출발한다면 유사한 사례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606쪽) 치고는 너무 단순화했고 이분법에 매몰됐기 때문입니다.

머리말을 통해 정리하고 시작했으면 좋았을 말이 권말에서야 드러납니다. 600페이지의 대장정이 끝나갈 즈음인데도,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기는커녕 콧방귀를 뀌게 됩니다.

우리 이론의 요체는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와 번영의 관계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며, 신기술과 기능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포용적 경제제도는 소수가 다수로부터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고안되고, 사유재산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거나 경제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하는 착취적 경제제도에 비해 경제성장에 훨씬 더 유리하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포용적 정치제도에서 힘을 얻으며, 결국 서로 지탱해 준다. 포용적 정치제도에서 힘을 얻으며, 결국 서로 지탱해 준다. 포용적 정치제도는 다원주의적 정치권력을 고루 분배하고 법과 질서를 확립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중앙집권화를 달성하며 안정적인 사유재산권의 토대를 마련하고 포용적 시장 경제를 뿌리내리게 한다. -607쪽



그렇다면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포용적 경제제도 inclusive economic institutions가 포용적이라는 것은 사유재산이 확고히 보장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공평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또한 새로운 기업의 참여를 허용하고 개인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119쪽
착취적 경제제도 extractive economic institutions를 착취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 계층의 소득과 부를 착취해 다른 계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 121쪽
우리는 충분히 중앙집권화되고 다원적인 정치제도를 포용적 정치제도 inclusive political institutions라고 부를 것이다. 두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착취적 정치제도라 할 만하다. - 126쪽

개념의 정의에 동원된 추상성들을 살펴보자면 우선 한숨부터 나오게 됩니다. ‘사유재산이 확고히 보장’이나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 ‘공평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사회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현재 미국 사회조차도 이런 개념을 적용한다면 해당 없음이란 판결을 내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책 두 권이면 반증이 가능할 듯합니다.

서구, 그러니까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포용적 경제제도의 허구성도 쉽게 드러납니다. 17세기와 18세기 서구의 경제는 지극히 착취적인 제도에 근간하기 때문입니다. 식민본국의 착취적 경제구조는 그대로 식민지의 경제구조로 이어집니다. 그에 따른 경로의존성과 제도적 부동은 심각한 영향을 끼칩니다. 헬레나 로젠블렛의 책이나 토마 피케티의 책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착취적 경제제도 내에서의 가설 외적인 성장을 보였던, 소련과 중국 그리고 남한의 케이스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의 해석이 존재합니다. 위엔위엔 앙의 분석을 통해 접근해 본다면, 저자들의 해석 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국제정치학에 따른 억압적 구조 역시 내재적 제도의 문제와는 별개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루퍼트 러셀의 지적을 참고하면 좋을 듯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참 그럴듯한 개념들이 세 가지 등장합니다.

경로의존성 path dependence, 결정적 분기점 critical juncture, 제도적 부동 institutional drift으로, 모두 역사제도주의 Historical Institutionalism 내에서 제도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들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개념은 제도의 지속성 및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각각은 변화의 메커니즘과 속도에서 중요한 차이점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 책만으로는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역사제도주의라는 흥미로운 관점을 발견한 것만큼은 수확이 크다고 봅니다.

우선 경로의존성이란 ‘어떤 선택이나 사건이 과거의 결정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으며, 한 번 특정 경로로 진입하면 쉽게 변화하기 어렵다’는 개념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자기 강화 Self-reinforcing나 락인 효과 Lock-in Effect도 적용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의 경로가 더 강화되어 대체가 어려워진다고 봅니다. 여기에 기존 시스템을 변경하는 데 큰 비용이 드는 경우도 많아서, 쉽사리 고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한 국가에서 대통령제나 내각제를 한 번 결정하고 나면 변경이 어려운 점이라던가, 시장에서 특정 기업의 기술이 표준이 되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게 된다던가, 우측통행에 따른 좌핸들(그 반대로 좌측통행에 따른 우핸들)과 같은 특정한 사회적 관습이 유지되는 이유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결정적 분기점이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 선택이 이후 장기간 동안 경로의존성을 형성하여 사회·경제·정치적 결과를 결정짓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시모어 마틴 립셋 Seymour Martin Lipset의 근대화 이론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 개념은 역사적 사건이 단순히 순간적인 변화가 아니라 장기적 경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요, 특히 제도적 변화의 비가역성과 장기적 영향력을 강조하는 연구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흑사병과 명예혁명을 중점적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1789년 프랑스혁명이나, 1917년 러시아혁명도 결정적 분기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도적 부동이란, ‘공식적인 제도가 크게 변화하지 않더라도, 사회·경제·정치적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기존 제도의 기능과 의미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제도가 표면적으로 유지되지만,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장기적으로 누적된 차이가 커지고 특정한 결정적 분기점에서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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